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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97) 일본소녀와 한국소녀의 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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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한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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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 시각 |
2002-07-13 11:30:32 from 211.42. 조회수 32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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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97) 일본소녀와 한국소녀의 차이
열 세 살의 고 신효순·심미선 두 소녀가 2002년 6월13일 탱크에 짓이겨진 뒤 22일만에 미군이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나섰습니다.
7월4일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육군이 이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미군의 이런 자세는 6월28일 미2사단 공보실장인 브라이언 메이커 소령의 "어느 누구의 과실도 없었다"는 오만한 주장을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왜 미군의 생각이 바뀐 것일까요. 과연 진솔한 반성에서 나온 것일까요. 여러 가지 정황은 그게 아님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유는 명백합니다.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나 '미군장갑차여중생살인사건범국민대책위원회' 등 뜻있는 사회단체들이 들고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을 때부터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원로'들이 나섰습니다.
여기에 일반 시민들이, 그리고 당신과 같은 젊은 벗들이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자 마침내 주한미군사령관이 '전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과연 된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아주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형사재판권을 한국에 넘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진상 규명이나 운전병·통제병·지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책임인정 발언은 확산되어 가는 비판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기만극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민족화해자주평화통일협의회가 "미군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라는 주한미군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진정한 사과 표시라기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우리 국민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피해가려는 교활한 술책에 불과한 것"이라는 비판한 성명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난 편지(탱크압살에 "게네 떡 됐어요?")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조지 부시의 사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당신께 제가 옹근 2년 전에 보내드린 연서(편지9. 성추행소녀의 행복?)의 한 대목을 다시 읽어드리지요.
"참담한 심정으로 당신에게 글을 씁니다. 일본의 열네 살 소녀 이야기가 저를 한없이 가라앉게 합니다. 지난 3일 열 아홉 살 된 미 해병대 병사가 술에 취해 일본 오키나와 시내 민가에 침입했습니다. 열 네 살 여중학생을 성추행 하려는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다. 소녀는 비명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에 의해 구조됐습니다.
문제의 미 해병대원은 소녀의 침대에서 잠자고 있다가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그 일본 소녀가 얼마나 놀랐을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소녀는 행복(?)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보세요. 사건이 일어나자 오키나와 주둔 미군 책임자인 얼 에일스턴 지역조정관과 로버트 루크 총영사가 즉각 오키나와 지사를 방문해 사죄했어요. 이어 오키나와 주둔 미군 2만6000명에 무기한 야간통행금지령이 내려 졌지요.
이에 따라 오키나와 주둔 미군은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기지 안에 머물러야 하며 이 시간 동안에는 기지 안이건 밖이건 술을 마시는 일도 금지됐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어요. 고노 요헤이 일본 외상은 제임스 폴리 주일 미국대사를 불러 미군의 기강을 철저히 세워주도록 요청했습니다. 나카가와 히데나오 관방장관도 이날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촉구했구요. 심지어 백악관까지 해명에 나섰습니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까지 사과했지요. 하지만 우린 어떤가요. 탱크로 두 소녀를 죽인 주한미군 제2사단은 소녀의 어머니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한다며 밤하늘에 축포를 쏘아댔습니다. 과연 그게 진솔한 반성일까요?
주한미군사령관의 발표 뒤에도 사고를 낸 마크 워커 병장과 페르난도 니노 병장은 기초적인 조사요구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또 어떤가요. 사고 난 뒤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은 <조선일보>는 뒤늦게 기사를 쓰기 시작하더니 주한미군사령관이 '모든 책임을 인정한다'는 기사를 가장 크게 2단으로 편집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분노케 하는 것은 <중앙일보>의 사설이었습니다.
사회단체의 운동을 제대로 보도조차 않던 이 신문은 갑자기 '미군 장갑차 사고 이성적 해결을'이라는 사설을 내놓았습니다. 사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감정적 접근은 금물이다. 흥분은 진상규명이나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감히 누구에게 어떤 훈계를 늘어놓는 걸까요. 썩 좋은 속담은 아니지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게 바로 이런 걸까요. 이런 신문들이 한국의 발행부수 1위와 2위를 다투는 한 절대로 조지 부시의 사과는 없겠지요.
하여 다시 언젠가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되겠지요. 앞서 일본 소녀에 대해 쓴 편지의 끝자락에서 당신께 드린 물음을 다시 옮겨봅니다. 참으로 참담한 심정으로.
"앞으로도 죽어갈 우리 겨레의 딸들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무엇인가 우리가 할 일이 있지 않을까요?"
논설위원 손석춘 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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