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기억력과 酒席
"5면과 1면 톱기사의 차이는?"
노무현 후보가 최근 문제가 된 발언을 할 당시 자리에는 모두 다섯 명의 기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신문 3사와 방송 2사의 기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논란이 일자 그 중 신문3사의 기자들이 당시의 기억을 살려 기사화했다.
4월 5일자 문화일보(천영식 기자), 4월 6일 대한매일(이종락 기자) 그리고 한겨레신문(임석규 기자)의 실명기사가 게재된 것이다.
문화일보 천 기자의 경우는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기사화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① 당시 노무현의 발언이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데스크보고도 하지 않았다
② 당시 기사화하지 않은 이유로는 '비보도'를 전제로 한 만남이었다. (기자들이) 노무현으로 하여금 문제의 발언을 유도하는 분위기였다. 발언을 한 노무현이 진심으로 했다면 말실수라며 기사화할 수도 있었겠지만 진담이냐는 확인질문에 농담으로 웃어넘겼다.
한겨레신문 임석규 기자 역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① 국유화 발언은 있지도 않았다.
② 동아폐간 발언은 들었지만 진심이냐고 물으니 농담으로 웃어넘겼다.
대한매일 이종락 기자의 기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① 8개월 전의 일이다. 기자들이 제대로 기억하질 못하고 있다.
② 국유화 이야긴 없었고 동아일보 폐간으로 이해될 취지의 발언은 들은 것 같다.
그 장소에 참석했던 기자들이 자신의 실명을 달고 기사를 썼다. 세 사람의 주장 모두 비슷했다. 국유화발언은 없었고, 동아일보와 관련된 발언은 위에 설명한 그대로다. 가장 이들이 주장하고 싶었던 대목은 '비보도를 전제로 한 만남'이었다는 것이었고 노무현 후보의 발언이 취중과장된 것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또 8개월 전의 일을 어떻게 제대로 기억할 수 있으냐는 대목도 지적했다.
-"특정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는 말이 많았는데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다(문화 천영식 기자)
-"식사를 같이 했던 기자들은 8개월 전의 일이라 노 후보의 발언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몇 가지 부분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대한매일 이종락 기자)"
유력지들의 보도태도가 의미하는 것은
당시의 자리에는 조선·동아·중앙일보의 기자는 없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가장 매달리는 언론은 바로 이들 삼사다. 4월 6일자 가판과 배달판을 보면 편집국에서 어느 정도로 매달리는 지 한눈에 알게 된다. 가판의 1면 기사는 '메이저신문 국유화와 관련 2야 국회서 진상규명'이었다. 물론 이인제 후보측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고 실은 기사였다. 노무현 후보가 전국민이 시청하는 자리에서 '결코 그런 말 하지 않았다'고 공언했지만 믿질 않았다.
한겨레신문과 대한매일의 가판에 당시 참석기자들의 기사가 나란히 실리자 이들 언론의 1면 기사가 바뀐다. "동아 폐간 발언했었다"(조선), "동아 폐간 발언은 사실"(중앙). 물론 이들의 보도는 한겨레와 대한매일 신문을 인용하고 있다.
이 논란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취재원은 누가 뭐라해도 노무현 후보가 아닐 수 없다. 그 발언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위 조·중·동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이에 대해 한 말 "머릿속에 국유화란 개념자체가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동아폐간 주장을 했을 리 없다.... 설령 폐간 얘기를 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질 않는가란 뜻"이라고 노무현 후보가 TV토론에서 공개적으로 주장했지만 관심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대목을 주시하노라면 조중동이 이 파문을 통해서 노리는 것은 진실규명이라기 보다는 노무현 후보에 대한 정치적 타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인다. 심지어 (동아폐간 발언과 관련해 진심이냐고 묻자 웃어넘겼다는 한겨레 기사와 관련해서는) '농담이라고 말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해당 기자 혼자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중앙일보)고 적어놓을 정도다.
노무현 후보는 인천경선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어느 언론사를 폐간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국유화, 폐간은 어떤 대통령도 할 수 없는 얘기인데 감히 제가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치에 닿지도 않는 얘기입니다."
조선, 동아, 중앙에서 각기 인용해 1면 톱기사로 올렸던 한겨레신문과 대한매일의 기사는 해당신문에서는 각기 5면에 게재됐다. 편집은 해당 언론사의 고유 권한에 소속된 행위이지만 쉽게 납득하긴 어렵다. 당시의 정황을 밝히는 기자들은 노무현의 발언이 취중발언이었고 '비보도'를 전제로 한 상황이었기에 중요치 않게 의미부여를 했는데 그것을 인용하는 조중동의 기자들은 무척 중요하다고 하니 갈등도 이 정도면 대단하다 하겠다.
작년 8월의 노무현 후보의 발언을 다룬 모든 언론을 살펴보았다. 모두 문화, 한겨레, 대한매일 기자들의 기사를 중요한 '팩트'로 보도하고 있었다.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문화, 한겨레, 대한매일 기자는 기사에서 '8개월 전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술자리였으며 발언을 하는 노무현 후보의 태도도 의미를 부여할만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8개월 전의 일에 대해 명확히 기억하는 동석 기자가 없다? 조중동이 1면을 통해 기사를 키울 수 있는 든든한 근거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어떠한 기사를 게재한다고 해도, 그 때문에 설령 공방이 가열돼 법정에 간다 해도 판명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부담이 크지 않은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보도가 조중동 지면에 등장하고 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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