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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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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올리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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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 시각 |
2002-04-07 10:44:27 from 151.24. 조회수 109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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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는 그날 죽지 않았다. 아니 죽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그를 들이받은 기차는 수백미터 그의 뒷덜미를 잡아 끌고가다 무심히 던져놓고 가버렸다. 기적이라는 말밖엔. 정신을 잃은 채 얼마나 누워있던 걸까. 기찻길 너머로 동이 트고 있었다.
절룩이며 서울로 돌아온 영호의 일념은 오직 하나. 어서 비닐하우스로 돌아가 탁자 뒤에 숨겨놓은 피스톨로 "확실히" 관자놀이를 관통시키리라고.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피식, 서러운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주머니를 털어보니 몇푼의 돈이 남아있다. 뚝방으로 내려가는 길 어귀, 선술집 문을 연다.
소주를 목에 털어넣자 등줄을 타고 내리던 고통이 조금 물러간다. 기차로부터 얻은 충격 탓이다. 서너잔을 연거푸 부어넣었다. 다시 눈물이 흘러나왔다. 눈물이 연신 소줏잔 위로 낙숫물처럼 떨어졌다. 그때 옆 좌석의 일군의 사람들에게서 "노무현"이란 말이 먹먹한 그에게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저기... 저기... 여보슈들... 노.. 무.. 혀... 언... 그 작자가 대체 누구...누구요?"
개새끼들, 또 정치 타령이군. 썩어빠진 정치인 개자식들! 절망의 화신들! 그는 구토같은 욕지기가 나오는 걸 겨우 참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단 한장의 행복 카드. 자기로 향해 불을 뿜을 총구만이 영호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는 비닐하우스로 허위허위 걸음을 재촉했다.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역설적이게도 마음이 자꾸 들떴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뒤에서 달려와 영호에게 속삭이듯 그러면서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술집에서 그에게 노무현 인가에 대해 설명하려 애쓰던 그 자였다. 그는 자신을 노사모라고 했다.
"형씨, 그는 아닙니다! 다릅니다! 나도 당신만큼 절망적였소만... 형씨, 그를 조금만 알아보세요. 부탁합니다! 형씨!" 절규에 가까운 그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그는 내쳐 걸어내려 갔다. 죽음을 향해...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4월27일 아침이다. 김영호는 아직 살아있다. 비닐하우스로 따스한 봄햇살이 무장하게 쏟아져 들고 있었다. 자켓을 입으며 그는 소풍날 어린아이처럼 서두른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쓰인 손수건을 챙겨 넣는 손이 가늘게 떤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누추한 비닐하우스는 제법 깨끗히 정돈되어 있고 권총이 놓였던 자리엔, 책 한권이 눈에 띈다. "상식, 혹은 희망 노무현 - 행복한책읽기"
국민경선 최후의 심판! 서울대회전을 앞둔 체육관 주변은 벌써부터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다른 노사모들과 서로 눈인사를 나누기가 바쁘게 그는 큰 소리로 입장하는 선거인단에게 외쳤다. 아니 그건 그냥 외침이 아니었다. 아픈 과거, 굴곡진 삶, 피투성이인 생과의 처절한 화해와 극복의 몸부림이었으리라. 그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연신 외쳤다. 눈물범벅 땀범벅이 되어 그는 외치고 또 외쳤다.
"노무현을 찍어주세요. 노무현을 도와주세요. 그만이 희망입니다!"
체육관 석벽에 기대어 영호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 등이 따스하다. 실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 정말이지 찬연한 봄이다. 살랑이는 바람 한줄이 그의 젖은 눈시울을 살며시 말려준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일군의 노사모들이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틈에...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화들짝 놀란다. 혹시? 순임이? 순임씨와 꼭 닮은 여인 하나가 영호를 바라보며 웃고있다. 환영이다. 이건. 아, 요새 너무 무리한 게야. 아,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영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만세!
일제히 폭죽처럼 환호성이 터졌나왔다. 와! 노무현 승리! 노사모들이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카메라 후레시가 일제히 노무현 후보를 향해 터지고 있었다. 수많은 기자들의 인터뷰를 뒤로 하고 그는 성큼성큼 노사모들에게로 왔다. 환희의 폭포수다!
영호는 그 쪽으로 다가가려 했으나 다리가 후들거려 걸을 수 조차 없다. 그는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영호는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주술처럼 혼잣말로 고맙다고... 영호는 쓰러지듯 벽에 기대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밝고 청명한 봄햇살 사이로 누군가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순임씨... 순임씨...
순임이 무릎을 굽혀 따스하게 그를 안는다. 영호는 순임의 품에 안겨 운다. 어린아이처럼 운다. 환호성은 끝도 없이 울려퍼지고 있다. 미안해요, 순임씨. 아니예요. 영호씨. 다 악몽 탓이예요. 영호씨. 이제 끝났어요. 이젠 끝났다구요. 노무현! 노무현! 천지를 진동시키 듯 멀리멀리 퍼져나가고 있고 영호는 순임의 품에 안겨 울고만 있다.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 그래그래 괜찮다. 끄덕이며 끄덕이며... 푸른 하늘로 희망의 새 한마리 날아간다.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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