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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사설'의 치명적 유해성은 왜곡된 논리 전개로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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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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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 시각 |
2002-04-07 02:32:28 from 211.203 조회수 30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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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 한겨레>의 문성 기자가 <조선일보> 사설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만약에 ---이 사실이라면”의 통사구조를 가진 조건절 문장을 `라면사설'이라고 이름 붙여 화제가 되었다. 수구언론들 중 특히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계에서 사실로 검증되지 않은 정치꾼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가정법의 논리의 일부로 이용하여 자사의 정치적 입지와 특정 정당의 편을 들기 위해 일방적이고 왜곡된 논리 전개를 해온 점에 대해 비판이 많았었다. 그러나 `라면사설'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이제 `라면사설'에 대한 문법적 분석에 기초하여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 조건절 문장이 왜곡된 논리 전개에 이용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조건절 어미 `---이라면'은 `---이라고 하면'의 축약형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 형태는 `말하다'라는 뜻의 `하다' 동사에 조건절 어미 `-면'이 붙은 것이고 연결어미 `-라고'는 어떤 이의 말을 인용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 특성 때문에 이 조건절 문장은 상대방이나 제3자의 주장을 단순히 그대로 인용하여 가정할 수 있는 통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이 구문은 화자가 어떤 주장의 사실 여부에 대해 자신의 판단을 배제한 채 남의 판단을 단순히 상정하여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의미구조적 편리성을 갖고 있다.
조건절 어미 '---이라면'의 통사구조와 의미적 특성을 염두에 두고 이번에 문제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불거져 나온 `음모론'에 관한 조선일보의 사설들을 다시 읽어보자.
(1) “우선 `김심'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김 대통령이 `정치초연'의 약속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와대는 `근거없는 말'이란 소극적 해명에서 나아가 “왜 근거가 없는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자세가 필요하다...."([사설] `음모론' 무엇이 진실인가, 2002.3.25)
(2) “소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음모설은 지금 선두인 이인제씨 측이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물론 그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음모설이 사실이라면 이번 경선은 스스로 의미를 상실한다...."([사설] 민주경선 이렇게 幕 내리나, 2002.3.27)
한겨레의 비판은 조선일보 `라면사설'의 유해성이 `....라면'이 가정하는 `미확인 사실 혹은 의혹 수준에 머물고 있는 주장'을 통한 논증 자체에 있음을 부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신문의 사설이나 기사가 반드시 사실로 확인된 것만을 논리 전개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조건절 문장을 이용하여 어떤 상황을 가정한 상태에서 자사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미국 신문에서도 신문 기사나 사설에서 “If what he/she allegedly said is true' (그가/그녀가 주장한 것이 사실이라면)” 같은 문장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떤 독자가 지적한 것처럼 한겨레의 사설에서도 얼마든지 조건절 어미 `---이라면'의 사용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인터넷한겨레의 구본권 뉴스부장의 지적처럼 한겨레 사설의 경우에는 검찰 같은 구체적인 정보 소스에 의존하여 가정의 논리를 전개하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사실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의혹 주장에 대해 얼마든지 가정의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고 볼 때 조선일보에서 `---이라면'의 조건절 문장을 이용하여 논리를 전개한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내가 개탄하는 것은 자신들 스스로가 제기한 의혹을 이 조건절 문장을 교묘히 이용하여 남이 의혹을 퍼뜨린 것처럼 왜곡하는 비겁함이다. 보도를 통해 내가 알게 된 바로는 어느 정치적 조찬모임에서 김대중 조선일보 편집인이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후보 가운데 노무현 후보를 도와주는 것 같다”고 언급한 것이 `김심 음모론'의 시발점이 되었고, 이를 전해 들은 이인제 후보가 상대방 노무현 후보의 인기 상승을 저지하기 위해 음모론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는 (1)에서 조건절 어미 `---이라면'의 구조적 특성을 이용하여 자신이 스스로 제기한 의혹 주장을 마치 누군가가 은근히 제기한 것처럼 피해 가고 있다. 또한 (2)에서는 이인제 후보가 이 의혹을 강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근거로 남에게 의혹의 근원을 덮어씌우고 있다. 책임 있는 화자는 자신이 믿고 주장하는 것을 비겁하게 남의 것으로 돌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논리를 주장한다. `라면사설'은 조선일보 스스로 그들이 얼마나 비겁한 신문인가를 드러내고 있다.
`라면사설'의 치명적 유해성은 왜곡된 논리 전개로 일반 독자와 사회 구성원들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데에 있다. 조건절을 이용하여 책임 있고 진실된 논리 전개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X' 혹은 `not X'의 개연성이 있을 때 양쪽의 개연성을 모두 인정하고 균형된 논리를 전개해야 한다. 조선일보와 이인제 후보가 제기한 음모론은 분명 아직 의혹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 측에서는 사실일 가능성에 기초한 가정 논리만을 전개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책임 있는 신문이라면 아래의 (3)에서처럼 이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과 사실이 아닐 가능성에 모두 입각하여 가정 논리를 균형 있게 전개하여 독자들에게 각 상황의 정치적 의미와 파장에 대해 균형 있게 알리고 그들의 성숙한 판단을 유도했어야 한다.
(3) `김심'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김 대통령이 `정치초연'의 약속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고 이번 경선은 진정한 정치적 의의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김심' 개입이 사실이 아니라면 은근히 이 의혹을 시작한 우리 조선일보와 그것을 정치적으로 적극 이용한 이인제 후보 모두 비난받아 마땅하다. 조선일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언론이 아니라 스스로가 정치권력화된 언론 정치꾼임을 더욱 추하게 드러내게 되는 꼴이 될 것이다. 이인제 후보는 정치발전과 국민을 위해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혈안이 된 정치꾼임을 인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의혹만이 난무하고 무엇이 사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유권자의 냉철하고 성숙한 판단이 더욱 요구된다고 하겠다.
과연 `할 말은 하는' 조선일보가 위와 같이 자신을 당당히 비판하고 진정으로 할 말을 하는 신문이 될 수 있을까?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언어문화학부 교수
출처 : 대한매일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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