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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이창동 감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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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조로2세 (piedra6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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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 시각 |
2002-04-07 12:01:55 from 211.217 조회수 115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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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감독의 변
나의 첫 영화 <초록 물고기>는 공간에 대한 영화였다.
일산이라는 서울 변두리의 농촌지역이 거대한 신도시로 변해 가는 모습을 통해 한국사회의변화와 발전 속에 내재된 폭력성이라는 잔혹하고 비열한 게임의 법칙을 드러내고자 했다.
나의 두 번째 작품 <박하사탕>은 시간에 관한 영화다.
새로운 천 년이 눈 앞에 다가와 있다지만, 나는 그것이 어떤 세상이 될지 알지 못한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에는 어쩌면 내가 너무 늙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시간여행은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가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나는 시간의 물결을 역류해서 과거로, 과거로 가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나는 시간의 물결을 역류해서 과거로, 과거로 돌아간다. 나는, 그리고 한국인들은 어떤 시간을 거쳐 왔던가.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으며,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던가. 시간이 만들어준 껍질을 벗고, 오탁(汚濁)의 때를 벗겨 내면서 나는 스무살의 젊음을 찾아간다.
영화는 시간이 거꾸로 진행되는 기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1999년 현재의 시점에서 20여 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 가는 것이다. 왜 거꾸로 가는가. 출발점으로 다시 가고 싶어서다. 출발점은 20여년 전인 자가 죽어 1979년 말. 그해 나는 대학생이었고, 20대의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 해 한국을 오래 지배해오던 독재자가 죽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도 같았다. 그 뒤 20년 동안 너무나 많은 변화가 닥쳤다. 학살, 열정, 저항, 분신, 변절, 쾌락, 축제, 권태가 숨가쁘게 이어졌다. 많은 게 변했는데, 아직 우린 행복하지 못하다.
기묘하게도, 나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나의 변화가 일치한다고 느낀다. 20대에 난 쉽게 꿈꾸고 쉽게 절망했지만 옳은 것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뭐가 뭔지 나도 모른다. 이기적 욕구만 항상 앞선다. 그러다 보니 세기말이다. 영화 속에서라도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나는 영화의 본질이란 결국 시간이라 생각한다. 현실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만들어 100분의 시간 속에 압축하는 것이다. 내가 '박하사탕'에서 보여주려는 시간은 끝없이 만나고 충돌한다. 한국의 현대사는 개인사를 개인의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끊임없이 교란시켜 시대의 전장으로 끌고 들어온다.
과거로 거슬러간다고 해서 결코 회고취향이거나 현재보다 과거를 더 중시한다고 보지 말아달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보여지는 20대 젊은이들의 순수한 모습은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현재성으로 다가갈 것이다. 과거가 현재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면 왜 과거를 이야기할 것인가. 눈앞에 와 있는 새 천년. 그 새로운 출발을 위해 나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99년 4월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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