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하철을 탔는데 우연히 이모부와 마주쳤다. 그 이모부는 안양에 거주하는 관계로 만날 일이 별로 없었기에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안부를 물었다. 요즘 무슨 국가시험을 준비하는데 나이 쉰이 넘어 공부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냥 서먹하게 인사나 하는 중간에 나는 신문을 꺼내 읽었다. 옆에서 보던 이모부 한 마디씩 거드는데.. 한나라당 경선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네 후보의 약력을 일일이 소리내서 읽어주는 이모부가 좀 거슬렸지만, 그냥 넘어갔다. 노무현이 대구에서 압승했다는 기사가 다음장에 있었다. 문제의 일이 시작됐다. 이런 애는 대통령감이 아니다라는 말부터 김영삼한테 버림받고 부산에서 삭삭 빌었다가 결국 떨어진 애라는 말부터 옛날에 운동권하던 애들이 밀어주는 것도 의심스럽다.. 기가 막힌 말들이 계속됐다. 이모부와 헤어지고 나서 그렇게 비합리적인 사고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이모부는 정치권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고 그렇다면 답은 하나 뿐이다. 아침마다 줄곧 배달되는 판매부수 1위의 신문과 그 신문이 만들어낸 고정관념 탓이다.
난 흐지부지하는 걸 싫어한다. 대충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것도 싫다. 그러면 그렇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난 작년까지 김근태를 지지했지만, 그가 후보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노무현은 차순위였는데 어찌됐든 단일후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이 그 때이다. 사실 내 영향력이 절대 미미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가만히 있는 것은 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노사모에 가입했다.
노무현이 대통령되는 것과 나 개인의 인생이 결코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회창이나 이인제가 대통령되는 것보다는 더 행복할 거라고 믿는다. 팔레스타인인이 단지 팔레스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만으로 자살테러를 감행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태어났기에 나는 2002년 대선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한다.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이번 대선이 노사모 대 조선일보의 싸움이라는 것인데, 말하자면 노사모로 대표되는 인터넷 세대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조폭언론이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음모론, 색깔론을 바탕으로 한 싸움이 개괄적인 전초전이었다면 오늘 조선일보가 임동원 특사의 선물보따리를 내팽개치고 톱리드로 뽑은 동아 폐간 발언 운운은 제1라운드가 될 것이다.
사실 정황을 보건데 노무현이 작년 8월에 기자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을 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문제는 그 정황을 기자 맘대로 지레짐작해서 유포했다는 것과 폭로가 비공식적인 경로로 이인제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언론 국유화'가 유언비어가 된 배경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노무현은 기자사원에게 주식을 분배하기 위해서는 기자들이 돈이 없으니까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고 술자리에서 이야기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언론사가 채권을 발행하고, 이것을 나중에 기자들이 갚아주는 방식이 바로 소유분배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채권을 발행한다'는 말을 한국은행이 국채를 찍어내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국유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놓고 보면 기자사원을 주주로 하는 언론사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운 게 못된다.
또다른 논점은 동아일보 폐간 이야기다. 물론 동아일보를 폐간시킬 수도 있다는 말을 술자리에서 한 것은 노무현 그 자신이 대권후보를 노리고 있다면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산가족 재상봉과 경의선 연결 등 역사적인 소식들을 뒤로 하고 전면적으로 부각되어야 할 만한 사항도 아니다.
나는 조선일보가 점점 미쳐가는 이유가 자신의 약발이 먹혀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이는 이제 독자 1000만명의 조중동보다 인터넷의 파급력이 더 커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중동의 힘이 워낙 막강하던 때는 유언비어의 '라면사설'을 담은 기침 한 번에 후보의 지지율이 2,30%씩 들락날락거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리고 달라져야 한다. 그 변화를 위해, 그들보다 앞으로 더 긴 인생을 살아갈 우리 20대를 위해 이번 대선의 승리는 아주 중요하다.
아마도 노무현과 김근태가 여,야 후보로 나와서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해야하는지 36시간으로 해야 하는지를 가지고 싸우는 시대가 온다면 선거는 아주 재미 없을 것이다. 누가 되어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에 대한 국민 관심도 줄어들 것이다. 신문의 정치면이 단신으로만 처리되는 데 그칠 것이다. 정치에 투자된 수많은 돈들이 더 경쟁력 있고 더 필요한 곳으로 옮겨갈 것이다. 그런 시대를 만들기 위해 점증적인 진보가 필요하다. 투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보다 우리 국민이 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에야 나의 이모부도 배경과 신상에 근거한 속물적이고 근거 없는 매도를 멈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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