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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제목 |
정운찬예비총장, 서울대 개조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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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경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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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 시각 |
2002-07-12 08:02:43 from 210.126 조회수 16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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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와 한국 축구는 닮은꼴이다. 선장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서울대의 현재 모습은 4강 신화를 이루기 전, 아시아의 변방에 머물던 한국 축구대표팀의 모습과 공통점이 많다. 둘 다 대한민국의 국가대표이고, 묘하게도 최근 국제 성적도 똑같았다. 한국 축구의 FIFA랭킹이 40위일 때, 학문의 국제적 수준을 가늠하는 서울대 '국제과학논문인용색인'(SCI) 지수의 성적 역시 세계 40위였다.
겉모습뿐이 아니다. 제대로 된 감독을 만나지 못한 한국 대표팀이 강팀을 만나 고전하고 있을 때, 서울대 또한 총장들의 잇따른 낙마로 외화내빈(外華內貧)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국 축구가 극도의 부진에 허덕이며 국민의 원성을 듣고 있을 때, 서울대 역시 폐교론까지 거론되며 안팎으로 비판의 화살을 맞았다.
위기의 한국 축구는 거스 히딩크 감독에 의해 구출됐다. 그렇다면 늪에 빠진 서울대를 구원할 '히딩크 총장'은 누구인가. 서울대 교수들에 의해 1순위로 지목된 이는 정운찬 교수(56-경제학부). 그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진보 지식인이면서도 입각 주문이 끊이지 않는 드문 학자다. 그는 과연 서울대의 히딩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허약해진 기초 체력을 다져 서울대를 세계 '학문 4강'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5명 출마 선거전 무난히 과반수 획득
정 교수의 총장 취임은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그는 지난 6월 20일 이기준 전 총장의 불명예 퇴진으로 공석이 된 후임총장 후보 선거에서 총 투표 수 1,210표 중 667표(득표율 55.1%)를 얻어 최다 득표를 기록했다. 5명이 출마해 혼전이 예상된 선거였지만 그는 무난히 과반수를 득표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는 현재 554표를 얻어 2위를 기록한 송상현 교수(60, 법학과)와 함께 총장 후보로 추천돼 있다.
절차상 남은 것은 대통령의 낙점뿐. 최다 득표자를 총장으로 임명한 전례에 비춰 정 교수가 '정 총장'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는 과연 앞으로 서울대를 어떻게 개조할 것인가. 히딩크처럼 그도 위기의 서울대를 구할 어떤 비책을 준비 중일까.
이기준 전 총장이 불명예 퇴진한 며칠 뒤인 지난 5월 중순 그를 만났다. 당시 그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총장 후보 출마 때문이었다. 사회대학장이 된 지 3개월, 일천한 행정 경험 때문에 출마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망설일수록 주위의 출마 권고는 거세졌다. 좀더 시간을 달라는 요청에 친분이 두터운 교수들은 "자신의 안위만 챙기겠다는 것이냐"며 거의 협박까지 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그 역시 모교인 서울대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현재 서울대는 큰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 원인은 도덕성 추락 때문입니다. 국립 서울대는 일반 사립대와는 차별화된, 다른 국립대와도 구별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지성의 상징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너무 돈을 밝혀 도덕성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학 발전을 위해 재원은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지성의 권위를 손상시켜서는 곤란합니다."
다분히 전임 이기준 총장을 겨냥한 지적이었다. 이는 곧 이 전 총장과 차별화되는 정 교수의 강점이기도 했다. 진보적 지식인으로 활동해온 그는 학계에서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 주위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총장 선거 출마를 권고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서 서울대가 겪고 있는 현실적 위기의 징조를 조목조목 짚어냈다.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을 전수하는 장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대학은 지식을 창출하는 마당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연 서울대가 이 역할 변화에 충실한지 자문할 때 쉽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대학의 지식 창출의 임무는 교수들이 맡고 있고, 교수들이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보상을 전제해야 합니다. 서울대 교수들은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대학에 비하면 금전적 보상이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고심 끝에 그는 총장 출마를 결심했다. 경제수석-한국은행 총재 등 큰 감투를 제안하는 정권의 '러브콜'을 연거푸 거부하며 "학자의 길을 가겠다"고 고집한 그의 소신은 모교의 위기 앞에 꺾였다.
출마하면서 그가 내세운 서울대 개혁의 좌표는 '지성의 권위 회복'이었다.
"한없이 추락한 서울대와 서울대인의 자존심을 다시금 회복해야 할 시점입니다. 서울대의 위상 회복은 단순히 서울대인의 자존심을 되찾는 문제를 넘어 우리의 교육과 문화를 개혁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서울대 총장은 단순히 서울대 행정수반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지성과 교육을 상징하는 자리입니다."
"교수 임무 완수 위해선 충분한 보상 필요"
원칙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선비의 권위를 지니면서도, 변화한 시대에 필요한 개혁적 리더십을 갖춘 총장, 그가 지향하는 대학 수장의 모습이다. 이는 곧 얼룩진 전임 총장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소신 피력이기도 하다. 그의 소신은 "서울대의 미래는 서울대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 총장은 힘 있는 총장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음 지적에서 힘있는 총장을 지향하는 그의 소신을 읽을 수 있다.
"서울대의 위상 추락은 자율성 상실에 있습니다. 학사 정원 감축-모집 단위 광역화 등 서울대의 장래에 관한 정책들이 뚜렷한 비전과 철학 없이 교육부 요구에 따라 학내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추진된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서울대의 미래에 영향을 줄 주요 정책은 교육부가 아니라 서울대가 주체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교육부가 직원 인사권에서부터 예산 편성권까지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누가 총장이 되도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교육부의 통제에 주눅 든 서울대 교수들에게 그의 이 소신 발언은 먹혀들었고, 깨끗한 이미지와 결합돼 최다 득표로 이어졌다. 쟁쟁한 원로 교수를 제치고, 자존심 세기로 소문난 서울대 교수들로부터 1순위로 총장 후보로 추천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최다 득표는 분명 하나의 '사건'이었다. 출마자 중 가장 나이가 젊었고, 2~3년씩 학장을 거친 다른 출마자들에 비해 행정 경험도 일천했다.
문제는 그가 히딩크식 체력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대의 체질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이다. 예컨대 정운찬식 서울대 개조론의 정체이다. 개혁의 피로감을 씻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일까. 그의 프로그램은 일단 개혁보다는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 살을 도려내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책보다는 기초 체력 강화를 위한 각종 영양 보충책을 먼저 택한 것이다.
그는 먼저 '민주적 의사 소통 체계의 확립'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4년간 서울대가 겪은 온갖 내홍의 상당 부분은 교수의 권위와 대학의 자율성을 무시한 집행부의 독선적 의사결정 탓입니다. 저는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되, 개혁의 이름으로 교수의 권위와 지성을 훼손하지는 않겠습니다. 투명하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소외된 학문 분야 교수들의 행정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겠습니다. 교수들의 의견을 집단적으로 수렴해낼 수 있는 '교수의회'를 구성하겠습니다."
민주적 의사소통으로 온건 개혁할 듯
더디 가도 함께 가겠다는 온건개혁의 뜻을 밝힌 것이라 볼 수 있다.
총장 공관을 허물어 교수용 임대아파트를 짓겠다는 파격적인 교수 복지 지원책도 등장한다. "발전기금과는 별도로 자녀 학자금과 가족 의료비 지원을 위해 1천억원 규모의 교수복지기금을 조성하고, 현재 교수아파트 부지와 총장 공관 부지를 재개발해 200가구 이상의 교수용 장기 임대아파트를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총장이 되기 위한 그의 공약사항일 뿐이다. 서울대를 어떤 대학으로 키워갈 것인지 구체적인 마스터 플랜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이제부터 그가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할 부분도 이와 관련된다. 그가 밝힌 것처럼 "서울대 총장이 단순히 서울대를 대표하는 행정수반이 아니"듯이 서울대도 단순히 서울대인의 대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내에서는 합격점을 받았다. 문제는 밖에서도 합격점을 받는 것이다. 서울대 총장에서 우리나라 최고 지성을 대표하는 국민의 총장이 될 수 있고 없고는 앞으로 그가 보여줄 비전과 정책을 통해 검증될 것이다.
그는 신중한 사람이다. 총장 임명을 낙관한 기자의 거듭된 인터뷰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선택이 내려지기 전에 언론과 접촉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것일 뿐더러, 자신을 지지해준 교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처럼 그는 원칙론자다. 이 원칙론 때문에 거듭된 감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원칙과 소신이 서울대를 구할 수 있을지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안길찬 기자 chan@kyunghyang.com
정운찬은 누구인가?
진보적 지식인으로 통하는 경제학자
정운찬 교수는 학계에서 진보적-개혁적 지식인으로 통하는 경제학자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는 드물게 진보지식인 그룹을 대표하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회원이기도 하다. 그의 스승은 서울시장을 지낸 조순씨다. 조 전 시장이 가장 아끼는 애제자라고 할 만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76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서 1978년까지 컬럼비아 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귀국, 지금까지 서울대 교수직을 맡고 있다.
경제학자로서 정 교수는 강도 높은 재벌 개혁론자다. IMF 구제금융 체제가 시작된 이후 그는 줄곧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재벌 개혁을 현 정부에 주문했다. 이 때문에 진념 전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현 정부 경제팀과 잦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정 교수의 전공 분야는 거시경제학 내의 화폐금융론. 그의 제자인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그를 '개혁적 케인즈주의자'로 분류한다. "시장경제원리를 중시하면서도 정부의 역할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 것"이 경제학자 정운찬의 학문적 지형이란 설명이다.
각료로 입각해 관과 인연을 맺은 경력은 없지만 그의 사회적 활동은 활발했다.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한국금융연구원 자문위원-보건복지부 국민연금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다.
재계에서 정 교수는 마당발로 통한다. 특히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는 이는 김영삼 정부 때 경제수석을 지내고 현 정부 들어서도 경제 각료로 입각이 자주 거론돼온 김종인씨다. 자신의 입각은 한사코 고사하면서 그는 매번 김 전 수석을 추천해왔다는 후문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과는 서울대 동기동창이고,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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