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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탐험] 기자 김훈 구획화된 사회적 경계를 가르는‘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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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노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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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 시각 |
2002-07-11 07:00:47 from 61.76.9 조회수 17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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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기자
사진 박여선 기자
언론사 세무조사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 14일 새벽, 밤샘 작업 중이던 기자는 인터넷의 한 뉴스 사이트에서 충격적인 기사를 읽었다. 『동아일보』 김병관 명예회장의 부인 안경희 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불경함을 무릅쓰고 솔직히 말하자면, 기자는 그 순간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죽음의 정치적 효과를 계산했다. 새벽 거리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이로부터 10개월여가 흐른 지난 5월 말 기자는 김훈의 글 모음집인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를 읽다가 까맣게 몰랐던 ‘팩트’를 알게 되었다. 당시 호우로 “대피하던 시민 21명이 물 속으로 흘러나온 전기에 감전되어 숨졌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안 여사의 침묵은 그 알 수 없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정치언어로 조문되고 있다. 감전사한 사람들의 죽음은 그 명백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침묵 속에 잠겨간다.”
정치성이 선명하게 부여됐던 죽음과 그렇지 않았던 죽음들. 당시 어느 쪽에 섰던가에 상관없이, 각양각색의 ‘정치기계’들은 안 여사의 죽음과 정치적 파급효과에 주목하면서 이를 그들의 현실로 삼았다. 사고사 ‘따위’는 기사가치도 없거니와, 신경도 쓰지 않고 그냥 망각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김훈은 오히려 21명의 감전사를 생생한 현실로 부각시키며 이에 새로운 정치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기자를 포함한 ‘정치기계’들과 그는 각각 다른 현실과 부닥쳤던 셈이다. 그는 색다른 리얼리스트다.
돈과 밥의 리얼리즘
『한겨레21』의 「쾌도난담」에서 그는 충분히 ‘뻔뻔’스러웠다.
“난 남녀가 평등하다고 생각 안 해.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여자를 보호하고 예뻐하고 그러지.”
“우리 딸? 그런 못된 사조(페미니즘)에 물들지 않았어요.”
김훈. 경력 30년의 고참 기자. 1980년대 『한국일보』의 문학기사를 ‘문학’ 수준으로 치올렸던 사람. 『시사저널』 편집국장. 지난해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현재 『한겨레신문』 부국장 대우 사회부 기자.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그가 했던 종류의 발언을 절대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내뱉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실천’하거나, 술자리에서 주절댈 뿐이다. 이 발언들이 물의를 일으키자 그는 만만찮은 권좌인 『시사저널』 편집국장직을 휴지 버리듯 때려치우고 농촌으로 들어가 『칼의 노래』를 썼다. 그리고 이 소설로 ‘『조선일보』의 문학권력 장악 기도’란 혐의를 받고 있는 동인문학상을 기꺼이 받는가 했더니 다시 『한겨레신문』에, 그것도 사건기자로 입사했다. 김훈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구획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경계들을 발칙하게 느껴질 정도로 난폭하게 헤집고 다녔다.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난폭한 보폭에 대한 지식인 사회의 관대한 태도다. 기자가 아는, 한 페미니스트는 『한겨레21』에서의 무지막지한 ‘울트라 마초’적 발언을 듣고도 김훈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 ‘진심이 아니거나 다른 맥락에서 그런 소리를 했으리라’는 것이었다. ‘진보언론’으로 코드화되어 있는 『한겨레신문』이 그를 스카우트했고 이에 대한 독자들의 반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우리 지식인 사회에서 그와 비슷한 대접을 받았던 인물은 경허 스님이나 중광 스님 정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의외로 쉽게 인터뷰를 허용해준 김훈을 만나러 경향신문사 옆의 한 카페로 가면서도 기자는 왠지 섬뜩했다.
한국-폴란드전 다음 날인 6월 5일이었다. 그는 이날 새벽 3시까지 광화문 등지에서 진행된 응원전을 취재했다고 했다. 그래서 사건기자 노릇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어요. 벌어먹고 사는 것이 요구하는 만큼의 힘이 드는 거지.”
‘벌어먹고 사는 것’, 그리고 ‘힘’(노동)이야말로 김훈이 거의 유일하게, 그러나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가치가 아닐까. 그는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중략) 돈이 있어야 밥을 벌 수 있다. (중략)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인 것이다.”
소박하지만 냉엄한, 반박할 수 없는 진리. 밥과 이를 벌기 위한 노동은 누구에게나 ‘물질’적으로 확실하다. 밥을 넘기는 목구멍과 위장의 기쁨, 이를 얻기 위한 근육과 신경의 소모, 굴욕감과 눈물만큼 사무치게 확실한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국가든 이데올로기든 ‘밥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세뇌당하며 성장한다. 그래서 ‘밥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 한다’는 ‘반윤리적’ 명제를 공공연히 떠들어대는 김훈은 우리 사회에서는 분명히 이단자다. 다른 지식인들은 묵묵히 실천할 뿐이니까.
이처럼 부인할 수 없는, 가장 생생한 체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여기에서 자신의 독특한 윤리를 사회적 맥락에 거리낌 없이 이끌어내는 솜씨는 그의 미덕이자 한계이다.
“전번에 어떤 인터넷 매체에 근무하는 기자가 찾아와서 ‘왜 하필 한겨레에 들어갔냐’고 물어요.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그 수많은 매체 중 하필 그곳에 들어갔냐고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하겠냐’고 반문했지. 그러니 안 되겠다 하고 그냥 가더군.”
김훈에게는 불쾌한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기자도 먹고살려고 그랬던 것 아니겠냐”고 했더니 한 걸음 물러섰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됐지.”
그에게 밥은 이토록 존엄한 것이다. ‘나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언어는 순결할 수 있나
그는 기자들에게 가혹한 기자다.
“「쾌도난담」 나간 뒤 찾아온 기자가 한 30명 됐어요. 그보다 더 센세이셔널한 발언을 내가 해주길 바라면서. 가엾어 보이대. 젊은이들이 그런 천한 직종에 종사하지 말라고 그랬어. 그런 언어를 인터넷 같은 곳에 올려 세상을 와글와글하게 해놓고 접속 수가 많은 것을 과시하면서…. 멀대 같은 놈들이 그런 걸 증폭시켜서 매체의 위상을 유지하려는 것 아냐.”
기자는 당시 그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나치게 혹독한 욕설이었던 것이다. ‘가엾다’니…. 그러나 그 기자들, 과연 김훈이 보고 싶어서 갔겠는가. 데스크가 ‘오더’를 때렸겠지. 한편 김훈은 엄연한 공인이기도 했다. 그의 ‘튀는’ 발언을 취재해서 게재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우리 언론의 존재양식에 비춰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기자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인터뷰 기사는 가급적 안 쓰려고 그랬어. 인터뷰할 땐 모두들 거짓말만 한다고. 지금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이지만 그걸 반성하고 있어. 내가 진심을 말하고 있는가.”
- 기자라는 직업과 글쓰기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젊어서 기자가 될 때 거창하게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길바닥을 헤매다가 밥을 벌어먹겠다는 일념으로 신문사에 들어가 본 거예요. 지금 젊은이들 말하는 것처럼 사회를 선도하겠다는 생각 따윈 없었지. 1973년에 기자가 되었는데 당시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했고 한 20년 갔잖소. 네 청춘은 거기서 완전히 썩어 문드러진 거지. 기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고통스럽지….”
- 기자들은 나름대로 ‘진실을 쓴다’는 자의식을 깔고 기사를 씁니다. 그런데 부국장님은 이 부분에서마저도 내면적 갈등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쓰는 기사가 진실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기자가 반영해야 할 현실의 정체라는 것은 참 모호한 것이지요.”
- 그렇다면 부국장님이 지금까지 써온 것과 쓰고 있는 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이 세계의 사소한 한 측면에 불과한 거지. 이 세계가 갖는 수많은 얼굴 중에서 아주 사소한 한 측면을 말하는 거지. 그거라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거지.”
사회적으로 기사는 사실의 동의어로 간주된다. 독자들은 기사를 통해 현실을 접하면서 자신의 의식 속에 현실을 재구성한다. 그러나 김훈은 기사라는 것의 한계를 이미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기사는 현실의 일부를 반영할 뿐이며 기자의 편견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모든 종류의 언어에 적용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이득에 바탕한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현실의 다양한 측면 중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뽑아내 강조하면서 권력을 쟁취하거나 강화하는 도구로 삼는다. 언어는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한다. 김훈은 이를 ‘무지몽매’라고 부르면서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서 직접 이해해야 하고, 사물과 인식 사이에 잡것이 끼어들지 않도록 늘 경계하라”고 경고한다. 이 같은 김훈의 언어관은 과학과 이론, ‘국가제도화된 과학이론’인 사회정책에 대한 적대감으로 확대된다. 과학은 추상적이고 획일적인 언어로서 언제나 ‘개별적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거나 천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언어와 과학, 그리고 이것들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를 조롱한다.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개인주의를 보호하는 것 정도다.
“시카고에 갔더니 미시간 호반에 카섹스하는 차가 발정기의 물개 새끼들처럼 3백 대 가량 몰려 있더군. 장관이지. 경찰은 카섹스 끝내고 가는 놈들이 경적 울리고 라이터를 키며 다른 사람들 방해하는 것만 단속해. 조용히 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교통정리해서 차나 빼주고. 물론 거의 불륜이지. 그러나 자동차 안은 개인의 문제고 경찰은 라이터 비추고 하는 놈들만 단속하는 거야. 시민들은 세금 낼 맛 나는 거지.”
경제이론이 아니라 버섯을 봐야 현실을 안다
김훈은 역시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중략)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 천정이 꿰여져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는 밥과 함께 그 속에 숨어 있는 낚싯바늘까지 긍정한다. 그것이 밥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에도 그 나름대로의 낚싯바늘과 숙명은 존재한다. 김훈의 어법을 빌리면 자신과 타인의 언어가 권력과 욕망이라는 낚싯바늘에 꿰여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긍정하는 것 또한 ‘사내의 길’ 아닐까. 이득과 욕망, 권력투쟁으로 직조되지 않은 언어와 사회가 존재하긴 한단 말인가. 한편 전체에 대한 분석과 추상을 태생적 본성으로 하는 과학에 대해 ‘구체적 삶을 포용하지 못한다’고 질타하는 것은 과학으로서도 억울한 일이다.
‘밥’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한 그가 ‘언어와 사회’엔 왜 이토록 ‘결벽’한가. 아무튼 김훈은 ‘어설픈’ 사회과학이 아니라 스스로 부인할 수 없는 직접적인 체험과 직관만을 무기로 세계와 혈투를 벌이고, 그 결과를 사회적 맥락에 상관없이 당당히 선포하고 싶은 인간이다. 그가 지난해 머물렀던 농촌에서 체험과 직관으로 캐낸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 농업의 역사가 한 1억 년 되잖아. 그 1억 년이 끝난 거예요. 마야, 잉카처럼 가고 있는 거라고. 마을에 개 발자국만 있고, 빈집에 들어가 보면 그곳에 살던 아이의 일기장만 남아 있어. 우물에는 염소가 빠져 죽어서 버섯이 자라고. 더 이상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마을이 된 거지. 개들이 말이야, 주인이 밥을 안 주니까 쓰레기통 뒤지며 사는데 나 같은 외지인이 오면 짖어야 아름다운 거잖아. 그것이 삶의 모습이지. 그런데 꼬리를 치더군. 개가 개 같지 않으니까 이게 큰일난 거지. 김영삼 말기부터 이 짓을 한 거야. 무역개방만이 살 길이다. WTO만이 살 길이다 그랬지. 무역개방이 국부를 늘린 것은 사실일 거야. 그런데 이것을 위해 1억 년이 넘은 사회계층을 쓰레기통에 몰아넣은 거라고.”
그 흔한 ‘신자유주의’ 등의 사회과학적 용어 하나 안 썼다. 그러나 한국 농촌의 비극은 그의 언어 속에서 개와 버섯, 우물과 일기장만으로도 너무나 선명했다.
“기가 막혔어. 난 경제이론 보면서 감동받은 적 없었어. 그런데 버섯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알아. 우물에서 버섯이 자라는데 이것을 보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잖아. 버섯을 보면 딱 알지. 책을 봐야 알겠어? 개들이 막 돌아다니는데.”
경제이론이 아니라 버섯을 봐야 한국 농촌의 현실을 알 수 있다! 죽비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어서 감탄스러워했더니 그가 모처럼 겸손한 척했다.
“내겐 감성과 열정만 있잖아.”
연장자가 자신을 비하할 때는 ‘무슨 말씀을…’이라고 받는 것이 기자의 습관이다. 그러나 이번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당신의 힘인 것 같습니다."
제 193 호 2002 년 7 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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