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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희를 통해 본 이회창의 아킬레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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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0 03:59:48 from 211.104 조회수 72 추천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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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희씨 체포기
지난 2월19일과 26일에는 뜻하지 않게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에 있는 미 연방지법에 다녀왔습니다. 이석희 전 국세청차장의 재판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지요.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됐습니다만, 이 전 차장은 지난15일(미국 시간) 랜싱 인근의 오케모스에서 FBI요원들에 의해 검거됐습니다
그가 지난 98년 8월 세풍사건 수사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한 지 3년반이 지났습니다만, 이 전 차장에 대한 정치권이나 국민들의 관심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대부분의 중앙지나 방송사들이 이씨 취재를 위해 미국 특파원들을 파견한 것도 그 때문 아니겠습니까?
마침 한겨레와 대한매일은 랜싱에서 연수 중인 기자들이 있어 특파원 대신 차출이 됐지요. 미국 중북부의 작은 도시에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한국 취재진이 몰려든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나라가 각종 `게이트'들로 시끄럽고 국민들도 이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은 터에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못마땅해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주목을 받는 것은 정작 이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어른거리는 얼굴은 그가 아니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이번 사건이 주목을 받는 진짜 이유는 1년도 채 남겨놓지 않은 다음 대통령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 때문 아니겠습니까?
야당이 즉각 이씨 체포에 정부기관이 관여됐다는 체포기획설, 여권 주변인사를 통해 이씨의 조기귀국을 종용했다는 회유설 등을 주장하고 나서고, 여당에서는 야당이 이씨의 귀국지연을 꾀하고 있다고 맞받아치는 등 정치권이 공방전에 들어간 것도 모두 그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이렇듯 이씨를 둘러싸고 긴장감이 돌고 있지만 정작 이씨에 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그 동안 이씨의 미국 내 행적이라든가 체포됐을 당시의 상황이라든가 하는 기본적인 것들 말이지요. 한국 정부에서 조차 기자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고요. 그래서 지난 2월19일 첫 심리 이후 추가로 확인된 내용들과 최근 미시간주 언론에 보도된 것들을 종합해서 전해드려 독자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리고자 합니다.
FBI 요원과 격투
이씨가 `스티브 리'라는 가명으로 랜싱 인근 오케모스시의 왈든 폰드 콘도미니엄에 살고 있다는 정보가 FBI에 접수된 것은 체포되기 직전이었다고 합니다. FBI요원들이 이씨 집의 문을 노크해 문이 열린 뒤 곧 격투가 벌어졌습니다.
FBI요원들이 수갑을 채우려고 하자 이씨가 강하게 저항했기 때문이지요. 이씨의 완력도 5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비해서는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FBI요원 4명이 그와 격투 끝에 힘겹게 제압했다니 말입니다.(요원 중 일부는 대학재학 중 레슬링 선수였다고 합니다.)
랜싱 주재 FBI 요원인 리히트는 "솔직히 신고를 받고 갔지만, 이씨가 집에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씨 검거 사실은 다음날 즉각 한국 법무부와 FBI본부에 통고됐고, 한·중·일 3개국 순방을 앞둔 부시 미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고 합니다.
FBI는 지난 99년에도 이씨가 그의 형이 살고 있는 뉴욕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또 1년 전에는 이씨가 오케모스의 메리디안 타운십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 덮쳤지만 검거에는 실패했습니다. 메리디안 타운십 아파트는 왈든 폰드 콘도미니엄과는 자동차로 15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곳입니다. FBI요원은 그 뒤 이씨가 미국을 떠났다고 생각했다지만, 오판을 한 셈입니다. 이씨는 왈든 폰드 콘도미니엄에서 6개월 정도 살았다고 합니다.
누군가 이씨를 비지팅 스칼라로 추천
이런 FBI 요원의 설명은 이씨의 변호인이나 이씨 형이 밝힌 그의 행적과도 대략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이씨의 변호인은 지난 19일 법원 심리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이씨가 미국 안에서 합법적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이씨는 랜싱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마운트 프래즌트에 소재한 센트럴 미시간대의 비지팅 스칼라(교환교수) 신분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씨는 98년 미국으로 처음 피해왔을 때는 6개월짜리 관광비자를 갖고 있었으나 곧 센트럴 미시간대의 승인을 얻어 2년 기한의 J1비자(비지팅 스칼라에게 나오는 비자)를 얻었고 기한이 만료되자 다시 지난해 초 비자를 1년반 더 연장했다고 합니다.
센트럴 미시간대의 한 한국인 교수는 이씨가 처음에는 대학 세미나에도 참석하는 등 나름대로 활동을 했지만, 비자가 연장된 뒤에는 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씨가 지난 3년반 동안 미시간주를 중심으로 도피생활을 해온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처음 이씨가 센트럴 미시간대에 비지팅 스칼라를 신청할 때 누군가 중간에서 추천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대학쪽은 그가 누구인지 밝히는 것은 거부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누군가 이씨의 도피를 도왔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야당은 펄쩍 뛰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누군가가 이씨의 미국 내 정착과 합법적 신분 획득을 뒤에서 도운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동기에서 이씨를 도왔는지 나중에 밝혀질 날이 오겠지요.
도망자의 취미생활
도피기간 중 이씨는 개인적인 취미생활로 낙을 삼았던 것같습니다. 왈든 폰드 콘도미니엄의 직원은 이씨가 거의 말이 없었고, 다른 사람이 말을 붙여야 겨우 대꾸를 하는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씨의 형인 명희(61·뉴욕 거주·의사)씨는 동생이 사진을 찍고 도자기를 굽는 활동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이씨에 대해 `도망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도망자'하면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도피생활을 하는 `리처드 킴블'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실제 이씨의 생활은 그리 험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마음은 편치 않았겠지요.
제가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싶은 대목은 이씨가 검거된 시점입니다. 앞서 FBI 요원의 말대로라면 FBI는 이씨를 잡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씨가 수년 간이나 대학의 비지팅 스칼라로 합법적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는 데도 미국 수사당국이 이씨를 잡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알고서도 묵인하고 있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갑자기 잡을 필요성이 생긴 게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 부분은 가설의 영역입니만, 비자신청을 하면 미 이민국의 심사를 거치도록 돼있는 점을 감안하면 미 정부가 이씨 소재를 전혀 몰랐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노림수와 국익
어쨌든 미국정부로 볼 때는 참으로 자신들에게 유용한 시점에 이씨의 신병을 확보하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미국으로서는 자신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불과 10개월 정도 앞둔 시점에서 현 집권세력이나 차기 집권 유망세력과 모두 거래를 할 수 있는 큰 `대어'를 낚은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여권이 이씨를 선거전에 활용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씨를 빨리 보내달라고 미국에 아쉬운 소리를 할 것이고, 반대로 한나라당이 이를 막으려 한다면 역시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지 않겠습니까?
개인 생각입니다만, 만약 이씨가 이 총재에게 치명적인 내용을 미국 수사당국에 밝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씨는 미국에서 계속 시간끌기 작전을 쓸 것이 아니라 조기귀국을 택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왜냐고요?
만약 이 총재가 대통령이 됐을 때 미국이 그의 숨겨진 약점을 이용해 고약한 짓을 하려 한다면 국가적으로 너무나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대통령이 되기 전에 약점이 노출돼 버리는 것이 국익을 위해 낫겠지요. 공개된 비밀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익을 그럴듯하게 앞세워 이 총재를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하려는 생각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설령 추가적인 약점이 노출된다 하더라도 이 총재가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 정치풍토나 국민정서를 감안하면 제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5년 전 우리 국민은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저버리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사람을 자기 손으로 뽑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설령 이 총재가 5년 전 대통령이 되기 위해 고교후배인 국세청 차장을 앞세워 기업들로부터 선거자금을 모으는 불법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 와서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제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나라의 세금을 거두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국세청의 부책임자를 지낸 사람이, 그런 불법을 저지르고도 법정에서 마치 `양심범’인 양하는 모습을 보고서도 제 정신일 수 있겠습니까?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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