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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과 노풍의 위기는 우리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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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풍은살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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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 시각 |
2002-07-16 11:05:17 from 211.210 조회수 35 추천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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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과 노풍의 위기는 우리의 위기다
-송복남 편집장 [people@zuri.co.kr]
'노무현 현상은 정치가 아니라 도덕이다’(본지 4월호)
'노무현의 승리는 역사의 승리다’(본지 5월호)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불과 한두 달 전이다. 두 달이나 연이어 본지 머릿기사의 제목으로 올린 게 노무현 기사였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한 달만큼의 역사가 지난 뒤, 이제 우리는 노풍은 여전히 역사인가,라는 자기 의혹에 빠진다. 얼마나 웃기고 허망한 일인가. 한 달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도대체 무슨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었길래 희망이 허망으로 둔갑하는 천재지변이 일어났을까. 아니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무슨 놈의‘도덕’이,‘역사’가 한 달 새에 아무 것도 아닌 게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목도하고 있잖은가.
“이제 400만 명이 축구에는 열광하지만 정치에는 열광하지 않는다. 90년대 서태지 돌풍과 노사모, 붉은 악마는 군사주의적 동원문화를 깨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야 한다. 학생들은 지금 낡은 정치가 싫은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싫어한다. 투표율 저하는 낡은 정치 탓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과거와는 달리 학생들은 선거에 대해 책임감마저도 갖고 있지 않다. 21세기 소비주의가 들어가 있을 뿐이다. 소비주의와 정치혐오적 정치가 끈끈하게 밀착돼 있다는 점에서 붉은 악마는 새로운 형태의 정경유착일 수 있다.” - 정대화(상지대 교수)
지난 6월 19일, ‘6·13 지방 선거의 의미와 평가’라는 주제로‘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전국교수노동조합’은 긴급 토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10여명의 진보지식인과 진보정당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희망과 허망의 차이
그랬었다. 모두 알고 있다. 그 한 달 새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월드컵이 있었고 선거가 있었다. 이 둘이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임에도 왜 월드컵만 남고 선거는 없는 것일까? 선거가 월드컵만 못해서인가. 그런가 보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월드컵은 선거를 앞선다. 선거가 월드컵보다 더욱 절실한 우리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는 월드컵만을 기억한다. 이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바로 이 현실이 우리의‘역사’와‘도덕’을 허망으로 돌변시킨 것이다.
‘역사’와‘도덕’으로 이름붙여진‘노풍’이라는 사회학적 용어를‘허망’으로 타락시킨 것의 배경에는 무수한 공범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단 말이다. 이것은 분명‘추락’이 아니라 ‘타락’이다. 최소한의 관심마저 없었으니까. 월드컵이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국민통합이 될 수 있을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비현실적인 말로 현실을 호도하는 배짱은 박정희 때 해먹던 수법이다. 정치에, 사회에 관심이 없던 우리가 월드컵을 통해 대오각성 했다고?
이런 우문도 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과 무엇이 다를까. 이것이 우문인 것은 자신의 현실마저 외면하는 우리 자신의 타락 때문이다. 이 타락은 부도덕의 소치이며 몰역사의 소산이다. 허망과 타락을 얘기해야하는 것은 노풍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사회. 정의와 역사에 대한 부채감과 우리 자신의 도덕적 이율에 분노하고 희망을 노래하게 하던 정신. 노풍은 그런 정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한두 달 전의 그 정신이 정녕 허망이었단 말인가. 어느 특정 당파를 지지하자는 정치적 꽁수가 아니라 진정 우리 삶의 생존을 위한 절규였단 말이다. 그런데 그게 허망이었다니.
6.13 지방선거의 결과를 요약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알아내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쉽다. 한나라당의 압승, 민주당의 참패, 민노당의 약진. 간단하다. 원인 역시 지역주의에 기반한 반DJ정서, 민주당의 삼홍 게이트, 정치적 무관심. 그랬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이다. 그 지긋지긋한 반DJ정서는 여전하고 정치적 냉소도 아닌 무관심은 거의 악마적 수준이다. 6.13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이를 반증하고도 남는다.
오죽하면 지방자치제 무용론까지 흘러나오겠는가. 이 정치적 무관심은 정대화 교수의 말처럼‘낡은 정치가 싫은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싫어한다’이다. 선거에 대한‘책임감’마저 없는 것. 이것이 도덕적 타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유와 자본은 선진국처럼 누리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를 위해 할 일은 외면하는 이 이율배반은 삶의 유기일 뿐이다.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월드컵의 광풍이 휩쓸고 간 후 남은 건 한나라당”이며“유신정권 이후 한 개 당이 이 정도로 전국을 휩쓴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런 현상은“전두환 군부 독재정권 시절에서도 없었던 기이한 결과”라고 말한다.
이재웅 민주노총 집행위원장도“붉은 악마의 확산에는 보수 수구세력의 계산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투표율이 낮아지면‘조직’선거가 힘을 얻게 되며 이는 곧 보수세력의 표 결집으로 이어지게 돼 있다. 젊은 사람들을 붉은 악마 등으로 혼을 빼놓고 악법을 통과시키는 이 현실을 우리는 바로 보아야 한다. 이 폐해는 이미 민주노총이 택시노조, 병원노조 탄압 사례 등에서 겪고 있다. 우리사회의 철학 부재,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붉은 악마가 언제 훌리건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노풍은 재미였나
6.13은 이렇게 말해야 할만큼 사회적 충격이고 위기다. 그러나 6.13을 통해 드러난 정치적 무관심을 월드컵과 붉은악마의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는 어느정도는 맞지만 전부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6.13 지방선거와 월드컵의 악연은 악연일뿐 월드컵 탓으로 돌리기에는 우리의 몸이 너무 왜소하다. 그 왜소한 몸에서 발견한 것은 아니, 확인한 것은 우리의 전근대적 습속이다. 2002 코리아 재팬 월드컵이라는 세기의 구호가 무색하게도 우리는 전근대적 수렁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압승이 정녕 한나라당이 잘해서인가. 민노당의 약진이 정녕 민노당이 잘해서인가. 아니다. 몸사리기에 들어갔다는 한나라당의 자세가 이를 말해준다.
6.13의 결과에는 입에 올리기에도 넌덜머리나는‘반DJ 정서’에 편승한 반사이익이 자리 잡고 있다. 지역주의다. 거기다 한나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삼홍게이트로 불리는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권력형 비리가 플러스 알파였다. 또 집권당의 무능과 월드컵이 그 뒤를 잇는다. 이중 으뜸은‘반DJ 정서’다. 정서와 감성에 좌우되는 우리의 습속. 이 습속은 자신의 주체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주체성의 이면에는 맹목적인 몰역사의식과 정치적 무관심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와 정치적 성과는 의무와 책임 그리고 희생의 댓가다. 그러나 우리의 습속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돌아간다.
“히딩크주의의 광란은 겨울연가 열풍과 비슷하다. 이는 전체주의에 가깝다고 본다. 개성을 잃어버리고 뚜렷한 철학도 없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서유럽에서는 공동체주의가 20대의 사회적 일탈을 막아주는 기능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 날아가 버리고 연고주의만 남아 있다. 이 정도의‘집단주의’는 언론이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인은 정치를 도구주의로만 받아들인다. 즉 경제적 부만 보장되면 정치는 필요없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 점은 미국과 너무 닮아 있다. 도구주의적 정치관을 깨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 정영태 교수(인하대 사회과학부)
정치 도구주의. 그랬다. 정치를 박정희 식으로 잘먹고 잘쓰는 도구 정도로만 생각할 줄 아는 철학과 이념의 부재의 정치의식. 그거였다. 우리는 정치가 우리에게‘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하는 삶의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시스템이란 어느 한쪽이 비어도 작동을 멈춘다. 잘먹고 잘 쓰는 것만이 정치가 아니란 얘기다. 그것처럼 월드컵은 삶이 아니라 하나의 이벤트다. 월드컵에 대한 지나친 열광은‘재밌으니까’였다. 그럼에도 거리응원을 애국심으로 치환하는 것은 오버이며 선동이다. 애국심은 재미로 생기는 게 아니다.
자신의 삶과 연관이 있을 때 애국심은 진정으로 우러난다. 재미로 뛰어나간 걸 두고 애국심이라고 우기지 말자. 그러나 사실 월드컵은 죄가 없다. 그 깊은 곳에는 철학과 이념의 부재 즉, 우리의 천박한 습속. 그게 죄였다. 월드컵만큼만 즐기는 여유와 방식이 우리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이는 당연하기도 하다. 우리의 주체성은 그만한 경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6.13과 노풍 그리고 월드컵의 위기이다. 이것은 우리 삶의 위기이기도 하다. 6.13과 월드컵은 우리의 습속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고 철학과 이념부재의 우리의 비주체성을 실천해 보여준 것에 다름 아니다. 6.13은 생존이었으나 우리 스스로 그 모든 것은 버렸다. 이제 진정 우리는 우리에게 노풍의 정신이 아직 살아있고 여전히 꿈꾸고 있는가를 내면 깊숙이 물어야 한다. 그대 꿈꾸고 있는지를 진정 물어야 한다. 노풍이 재미였는지. 축제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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