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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풍이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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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6 09:13:13 from 210.126 조회수 54 추천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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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2002/07/06 오전 2:04:21
이번 선거 패배 이후 나도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노풍의 실체는 뭐였으며 왜 그렇게 큰 차이로 져야만 했는지.
지금까지의 결론은 단 하나, 이미지 싸움에서 졌다는 것이다.
깨끗한 이미지, 소신있는 모습, DJ의 치적을 이어받으려는 의지. 그게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미국의 대선을 떠올려보자. 위와 같은 이미지는 이미 고어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광의 아들인 부시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결과를 보자. 부시가 이겼다. 위의 좋은 이미지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면 고어가 압도적인 차이로 이겼어야 했다. 그러나 우습게도 부시가 이겼다. 그쪽 민주당으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겠다.
미국사람들이 고어가 더 깨끗하고, 능력있고, 머리 좋다는 걸 몰라서가 결코 아니었다. 사람들은 고어의 이미지보다는 부시의 그것을 택했다.
그들이 보기에 부시의 이미지는 익숙하고 편했다. 그러나 고어는 잘난 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 지방선거 패배 이후, 노무현이 03 등을 찾아가 표를 구걸하는 등의 행태가 없었다면 노풍이 지속되었을 거라는 추측을 해 봤었다. DJ와도 확실히 선을 긋고.
그러나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혹시 더 크게 졌을지 모른다. 진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사람들은 노무현의 이미지에서 이제는 약간의 위화감과 껄끄러움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회창측이 썩었다는 것, 나라 말아먹던 놈들 통속이라는 것, 아들 군대 안 가고 며느리 미국가서 애 낳은 것, 서민처럼 보이려고 쌩쑈 하는 것 모르는 국민 단 한 명도 없다. 그걸 몰라서 이회창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이 보기에 오히려 그런 때 묻은 모습,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청소부 옷 입고 난생 처음 빗짜루질 하는 그 모습이 약간 "못난 놈" 같았고, 그게 오히려 통했다. 정이 갔다. 어설픈 못난 놈 이미지 - 혼자 잘난 것 처럼 보이는 놈을 싫어하는 보통 사람들의 심리가 부시를 대통령 만들 듯, 이회창을 그렇게 만들 것이다.
너무 옳은 말만 하는 놈은 싫은 법이다. 신혼 때 아내가 나를 싫어한 가장 큰 이유다.
노무현은 "불편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네티즌이 아닌 (아직까지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말이 불안하다. 그 안에서 뭔가 젊은 것들의 꿍꿍이가 진행되는 것 같다. 여기 보이는 데에서 말 좀 하지, 지네들끼리 컴퓨터 안에서 뭔가를 해댄다. 알 수 없는 일들이 그 안에 있다. 불안하다.
노사모가 아닌 사람들은 그 알 수 없는 실체가 무섭다. 도대체 그게 뭐 하자는 것인가? 선거운동을 하나? 그렇다면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노무현은 막걸리라도 받아주나? 아니면 뭔가? ... 뭘 위해서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뛰고 있나? 대표로 나왔다는 이들을 보자. 명계남, 문성근...... 낯설다. 최불암이나 강부자 하다못해 차인표, 최수종이라도 되면 뭔가 알 것 같은데... 낯선 그 실체가 불안하다. (물론 이런 '비교주의'적인 이미지 창출에는 수구언론이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말이 안 된다고 보나?
과거 핵심운동권이 아니었던 사람들이여. 생각해보자. 운동권애들 한다는 모습들이 다 좋아보였는지. 그들은 마치 사회의 모든 정의를 그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듯이 행동한다. 그 행동 방식도 일부러 보통 학생들과 틀리게 하려고 한다. 멀쩡한 옷 놔두고 괜히 검정두루마기 같은 거 입고 다니는 것도 꼴 같지 않다. 그리고, 상식과 같은 그 '정의'를 누가 모르나? 왜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려는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나?
바로 많은 국민들이 한편으로 노무현 지지자들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 너희 잘났다. 뭐 그리 대단한 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잘났다. 말처럼 쉽지 않을껄!"
하나 더 있다. 내, 과거 운동권이라는 작자가 자가용을 타고 학교에 나오는 것을 보고 경악한 일이 있었다. 생각해 보자. 지 혼자 정의롭다고 목소리 높임으로써 우리나라 사람 모두 더럽다고 하던 그들이 똑같은 비리를 저지른다. 정쟁을 하고 뇌물을 먹는다. 혐오감이 극에 달한다.
운동권놈이 프라이드를 모는 건, 압구정동 야타족들이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것보다 더 혐오스럽다.
정리하자.
노무현이 구수한 서민 이미지이고 이회창이 귀족 이미지라고 해서 서민에 서민이 동조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절대 잘못 생각한 전략이다. 이미지 싸움의 실패다. 결과는 그 반대로 나왔다. 이회창 식의 때묻은 모습, 대충 해대는 것, 언론과 내통하는 것이 오히려 다수 국민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과거 늘 정치가들이 해 왔던 그런 것들은 쉽게 알 것 같은데...
노무현은 낯설다. 낯섦은 곧 불안을 뜻한다.
이제는 좌익과 우익의 구별도 무의미하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들이 그런 이념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익숙함"의 차이를 말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 대다수의 국민은 "보수"인 셈이다. 익숙한 걸 좋아한다는 의미에서.
보수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만 덧붙이면,
착하기만 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작은 죄책감들이 있다. 자신들이 했던 작은 잘못, 운영하는 구멍가게에서 쓰고 있는 이중장부, 회사사람들이랑 회식한 것 영수증 끊어 갖다낸 것, 어릴 때 옆집 친구 장난감 훔쳐온 것...
이것들 다 청산해내겠다고 누군가 말한다고 해 보자. 싫다. 무섭다. 그런 정의, 나중에 누군가가 이루라. 나는 그냥 좀 더러운 놈 찍을테니. 하던 대로 좀 하고 살자.
이것 또한 위에서 말한 그 "보수"인 셈이다.
그렇다면 -
세 아들 비리를 지닌 DJ와 결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자질구레한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
노무현은 익숙한 이미지로 다가와야 한다. 네티즌의 힘이나 노사모의 그것을 빌어서는 안 된다. 너무 정의, 개혁, 진보 운운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언론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도 낯설다. 물론 말도 순화해야 한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 지 모른다. 한번 박힌 이미지가 어디 가나? 그리고 낯선 방식을 익숙한 방식으로 만든다는 자체가 어려운 주문이라 생각된다. 구체적인 방법은 나도 아직 모르겠다. 그리고 익숙함으로 다시 승부할 때, 낯섦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꼈던 변화의 세대들이 등을 돌릴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득이 실보다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뛰라. 생각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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