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소위 노풍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었지만 이젠 아주 잠잠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또다시 노무현이 부상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럴 확률이 별로 없어 보이고 8월의 재보선 후에 민주당의 대권주자가 어떤 식으로 정리될 수 있을지 또 한번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노무현을 생각하면 현정부에서 환경부장관을 지냈던 손숙이 생각났다. 손숙은 연극배우이다. 영화나 연극 등에는 도무지 문외한인 내가 손숙이 어느 정도의 배우인지는 물론 모른다. 그가 출연한 연극은 고사하고 연극이란 걸 나는 지금까지 대학시절 어떤 동아리 모임에서 구경한 것 외에는 본적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대학시절부터 연극에 몰두해서 다니던 학교도 중도에 그만두고 평생 그 길로만 매진했다는 걸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장관으로 발탁되어 세인의 관심을 모았었다. 조직생활도 행정경험도 전무하고 환경분야에는 더더구나 아는 것이 전혀 없어보이는 연극배우를 김대중대통령은 환경부장관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우려의 시선을 보냈고 언론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정말 보기 민망한 일은 임명이 된 후에 나타났다. 손숙은 장관자리를 세컨드 잡이나 파트타임 잡 정도로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장관임명을 받은 후에도 연극무대에 올라갔고 급기야는 모스크바인가 어디인가에서 공연 중에 거기에 모인 한국 기업 측으로부터 무슨 예술후원금인가 하는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즉석에서 받았는데 그게 그만 말썽이 되어 장관임명 며칠만에 그만 자리를 내놓고 말았다. 모르긴 해도 아마도 최단명장관 가운데 한명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이 간다.
어쩌면 그는 애초에 장관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면들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인사에 대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였고 결국 며칠을 가지 못해 물러나는 그런 수난을 당한 것이다.
일반인들은 물론 손숙을 모르겠지만 임명권자나 주변인사들은 그를 잘 알고 있고 또 장관재목으로 보았으니까 장관자리까지 가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손숙파동(?)은 임명권자나 주변인들의 국정인식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노출시킨 사안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바로 이런 면들이 대통령이나 그 주변에서 국정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현실인식체계가 어쩌면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들의 그것들과는 좀 많이 다르지 않겠는가 짐작하게 하는 부분들이다. 김대중대통령의 집권이 지속되면서 갈수록 국정실패와 혼란에 대한 우려와, 비판과 실망과 절망과 한탄의 소리가 커져 가지만 대통령과 주변인사들이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어쩌면 이런 면들에서 기인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통령한테서 느낄 수 있는 가치관이나 현실인식체계가 어쩌면 민주당 쪽에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이 아닌가 느껴질 때가 있다. 김대통령과 민주당이 스스로 파멸되어 가는 것에 대해서 민주당의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박정희는 자신의 집권을 단단하게 하기 위하여 야당만 탄압한게 아니었다. 김종필도 여당의 2인자 이면서도 7차례나 가택수색을 당했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실제로 정보부에 끌려가서 묵사발나게 터진 사람들은 야당인사들 뿐만 아니라 여당 인사들 가운데도 꽤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 인사들을 보면 집권측의 명백한 과실이나 잘못을 보면서도 과거 박정희시절의 일부 공화당의원들이 보여주었던 저항이나 비판적인 자세를 찾아보기 어렵다. 박정희시절의 절대권력에 비하면 지금은 그야말로 손방망이 같은 권력이지만 내부에서 나오는 비판이나 저항의 강도는 훨씬 약한 것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민주당 인사들은 정서적으로 또는 이념적으로 대통령과 같은 가치관이나 인식체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아무리 비판적이라도 자기들이 보기에는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비판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이런 시각은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통령이 과거 손숙이라는 도무지 그림이 맞지않은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하여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게 한 것 처럼 민주당원들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한 노무현을 보면 아무리 보아도 대통령이란 그림하고는 잘 어울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물론 대선후보가 됨으로서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당 인사들은 허구헌날 같이 만나서 회의도 하고 토론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술도 같이 먹고 했을 것이고 노무현에 대해 평소부터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잘 아는 사람들이 후보로 내세운 사람인데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영 아니올시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지금와서 보기에는 차라리 이인제를 그대로 밀었더라면 이회창하고 어쩌면 볼만한 싸움이 되지 않았을까 보여진다.
민주당 사람들은 어떻게 노무현이 이회창을 이길 수 있는 카드로 본 것일까? 영남출신이라면 아무나 무조건하고 영남사람들이 따라갈 줄 알았던가? 노풍의 거품이 꺼져버린 것도 노무현이 대선후보로서 본격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그의 진면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회창은 헤비급인데 상대는 최경량급을 링위에 올려놓은 격이다.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엉뚱한 가치관이나 인식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권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을까? 이회창과 한나라당으로서는 행운일지 모르지만 국가적으로는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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