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나 내일 모레 경향에 실릴 예정인 진중권씨 글입니다.
제가 반공 냉전 수구 논리에 세뇌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민노당 논평보다는 진중권씨 의견에 더 공감이 갑니다.
Kids BBS에 올라온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꽃게잡이 어선때문에 젊은이들이 죽었다'고 하는 어민도 있던데 모든걸 다 떠나서 북한이 만일 선제 공격을 한 것이라면 이유야 어찌되었건 북한이 잘한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원죄론으로 따지자면 분단이나 NLL이 원죄를 지고 있겠지만 그 상황이 과연 사격을 가해야하는 상황이었는지 의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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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이 안타깝다?
진중권
얼마 전 지방선거에서 일약 제3당으로 부상한 민주노동당에서 서해교전에 대해 논평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당장 논평을 내라는 당원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이리 빼고 저리 빼다가 숨진 병사들의 장례가 치러지는 날에야 비로소 마지못해 내놓은 논평이라는 것이 읽어보니 가관이다. 내 비록 개인적으로 그 당에 속해 있지만, 민주노동당이 제3당으로 비약한 이상, 앞으로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라는 의미에서 한 마디 해야겠다. 민주노동당의 논평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남북간의 서로 다른 주장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 부분 거짓말이며, 그것도 뻔뻔한 거짓말이다.
남북간에 설사 NLL에 대해 이견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이견을 제시하는 방식이 무장을 하고 내려와 같은 민족에게 다짜고짜 총질을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NLL이 존재해도 거기에서 무력도발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NLL이 자동적으로 무력도발로 이어질 필연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논평은 마치 이번 무력도발이 NLL의 책임인 양 호도하고 있다. 이런 논법에서 스리슬쩍 사라져 버리는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발포를 하여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의 윤리적 책임이다. NLL이 갑자기 인간으로 둔갑하여 고속정을 타고 남한측 경비정에 포격을 가했다는 얘기일까?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서로 이견이 있는 NLL에 대해서 남북이 대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남측의 함정에 다짜고짜 기습공격을 한 북한의 책임을 덜어주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 민주노동당은 미군의 전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에 관한 논평을 발표하는 가운데 "죽은 사람은 있는데 책임자는 없다"고 목청 높여 비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죽은 사람은 있는데" 왜 갑자기 "책임자"는 없애버리는 걸까? 왜 젊은 병사들의 죽음의 책임을 무심한 NLL에 넘기는가? 정말로 이번 사태의 원인이 NLL에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가?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서해로 가서 재주껏 NLL이라는 놈한테 사과와 재발방지의 약속을 받아오기 바란다.
그러더니 한술 더 뜬다. "이번 사건은 남북의 분단에 기인한 가슴아픈 사건이다." 이번에는 범인이 "분단"이라는 놈이란다. 이제는 휴전선을 통째로 체포해야 할까 보다. 동독과 서독은 분단이 되어 있었어도 서로 이런 식의 무력도발을 하지는 않았다. 분단이 곧바로 무력도발로 이어질 필연성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한번 거짓말을 반복하더니 이어서 논평은 마침내 망언까지 하고야 만다. "분단이 종식되지 않은 이상 이와 유사한 사건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로써 앞으로 북한이 저지를지 모르는 모든 유사사태가 죄사함을 받고 깨끗해진다. 물론 이 성스런 제단에 바쳐진 희생양은 "분단"이라는 이름의 정체불명의 생물체다.
이렇게 얼렁뚱땅 얼버무리더니 금방 사태의 수습에 들어간다. "이번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남북간의 대결을 부추기는 것은 민족의 이익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남북간의 대결을 누가 부추겼다는 말인가? 북한이 부추긴 거 아닌가. 이 사건에 대해 "안타까운" 느낌만 가져야 하며 분노를 표명하면 안 된다는 말일까? 게다가 민주노동당의 눈에는 다섯 명의 병사가 참혹하게 희생당하고 수십 명이 희생당한 이번 사건의 중요성이 "침소(針小)", 그러니까 바늘 끝 크기 밖에 안 되는 모양이다. 덩치는 자그마한 당이 간덩이 하나는 정말 크다.
그러더니 낯짝은 있는지 제법 애도하는 척도 한다. "이번 일로 희생당한 분들과 그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지금 누구 약올리자는 건가? "분단이 종식되지 않는 이상 이와 유사한 사건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 "분단이 종식되지 않는 이상" 민주노동당은 앞으로 이와 유사한 낯 간지런 애도를 계속 반복해야 할 것이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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