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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제목 |
민주당, 죽거나 혹은 바꾸거나…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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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무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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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 시각 |
2002-07-01 07:47:20 from 211.193 조회수 17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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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죽거나 혹은 바꾸거나…
[유시민의 정세분석] 3김 이후 정치적 리더십과 개혁세력 임무
오마이뉴스 기자 ohmynews@ohmynews.com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지난 6월 28일 오후 3시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시사평론가 유시민 씨를 초청, '3김 이후의 정치적 리더십과 개혁세력의 임무'라는 주제의 특강 모임을 가졌다. 이날 모임은 민주당 내 개혁성향의 의원들이 개혁노선의 중심을 세운다는 취지로 마련했다.
유 씨의 발표문은 최근 정국 상황, 민주당의 현실과 개혁방향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참석자들은 이날 유씨의 분석에 대해 대체로 동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은 7월 1일 모임을 갖고, 2일 정식 모임을 발족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임에는 간사인 이해찬 의원을 비롯해 이상수·김희선·함승희·박인상·김영환·김태홍·김성호 의원 등 17명이 참석했다. <오마이뉴스>는 주제 발표자인 유시민 씨의 양해를 얻어 발표문을 게재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발표문이 다소 길지만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 지난 5월 28일 김민석 후보 명동 거리유세에 참석한 노무현 후보가 청중들에게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002년 대통령선거를 통해 우리 국민은 '3김 이후' 한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정치 지도력을 수립한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과연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에 쏠려 있다. 노무현과 이회창의 여론조사 지지율 역전과 월드컵 열기로 인한 정몽준의 대중적 호감도 상승, 박근혜의 출마 여부와 이인제의 거취 등이 맞물리면서 대선 게임은 점차 흥미를 더해 가는 중이다.
그러나 금년 대선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변함이 없다. 첫째, 2003년 새로 출범할 정부를 기다리는 시대적 과제는 무엇인가? 둘째,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성격의 정치 지도력이 필요한가? 셋째, 이 지도력은 어떤 유권자 집단의 힘과 지지를 기반으로 자기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민주당 개혁세력의 과제는 무엇인가. 이 글은 이 세 가지 의문을 해명해 보려는 시도이다.
2002년 대선의 정치사적 의미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정치사는 한 마디로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향한 대장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제헌헌법은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고 당시까지 서구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이룩한 최고의 문명적 성취를 받아들인 민주공화국 헌법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막 벗어난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은 헌법의 지배를 실현할 역량이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가부장적 독재와 5·16 군사 쿠데타, 유신과 5.18 군사쿠데타 등을 거치면서 민주공화국 헌법은 종이쪽지와 다름없는 지위에 놓이거나 아예 폐기되는 비운을 맞아야 했다.
1960년 4·19혁명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규정하는 공화국 헌법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복원하기 위한 대중적 투쟁이었다. 그리고 군부독재 체제를 폐기한 1987년 6월항쟁 이후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세 차례의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현실에 대한 헌법의 지배력을 높여 왔다.
1987년 대선은 민주세력의 분열로 인해 헌정질서를 유린했던 5공정권을 합법적으로 연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국민의 선택에 의해 권력이 탄생하는 시대의 도래를 확인하는 의미를 가진다. 민주화 세력 리더로서 집권당의 후보가 된 김영삼이 승리한 1992년 대선에서는 그가 집권세력 내의 소수파였다는 점에서 '1/3 정권교체'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김영삼은 군부 사조직 하나회를 정리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군부 쿠데타의 공포에서 해방시켰다. 1997년 김대중은 '유신본당' 김종필을 주니어 파트너로 끌어안고 승리를 거둠으로써 '절반의' 또는 '2/3 정권교체'를 성취했다.
'민주 대 독재'의 대결은 시효가 만료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겨우 세 차례의 '혼탁한 자유선거'를 치렀을 뿐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일천하다. 국민들은 사상의 다양성과 집단적 이해관계의 대립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민주적 절차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군사적 대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만큼, 공동체의 안전 보장을 명분으로 시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국가주의적 공안통치가 다시 고개를 들 위험성이 상존한다. 민주 대 독재의 가시적 전선은 크게 완화되었지만 그와 같은 정치적 경향성의 대립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15년의 정치사적 흐름에 비추어 보면 16대 대선이 국가주의적 공안통치로의 회귀 가능성에 종지부를 찍는 선거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해야 임계점에 도달한 한반도의 냉전구조와 한국 사회 내부의 이데올로기적 긴장상태를 해체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고히 다질 수 있다. 한나라당은 대통령 후보나 당 대표, 소속 의원들의 면면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냉전적 대결주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은 박정희식 성장모델과 냉혹한 신자유주의 쪽으로 쏠려 있다.
▲ 지난 4월 18일 한나라당 울산경선장에서 보도진에 둘러싸인 이회창 후보.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이 될 경우 대화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절충하기보다는 모든 '불법 집단행동을 엄단'한다는 편협한 법치주의를 밀고 나갈 가능성이 높다. 법률적 정당성은 갖추었으나 도덕적 우위는 확보하지 못한 권력집단이 이념과 이해관계에 입각한 각계각층의 집단적 저항을 공권력으로 억누르려고 할 때 공안통치로의 복귀는 필연적이다. 아직 기반이 취약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당의 집권이 역사의 순리라는 말이 아니다. 김대중의 당적이탈과 정치적 추락은 그가 이끌었던 민주당의 정치적 종말을 의미한다. 16대 대선은 '김대중의 민주당'과는 전혀 다른 정치세력의 등장을 요구한다. 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에서 거세게 불었던 노무현 바람은 민심의 요구가 폭발 직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어설픈 집단지도체제나 당명을 바꾸는 신장개업만으로는 이 요구를 감당할 수 없다.
대통령 후보의 리더십, 당의 정책과 운영방식, 공직선거 후보의 선정 절차, 당의 기초인 당원의 인적 구성이 바뀌어야 한다. 차기 정부의 시대적 과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 과제에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처해야 하며, 과거와는 다른 유권자 집단을 확고한 지지기반으로 획득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헌법이 규정한 민주공화국의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제기되는 정책적 과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조건을 확보하지 못하면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요행히 집권하는 경우에도 성공하는 정부가 되기는 어렵다.
차기 정부의 시대적 과제
큰 틀에서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 또는 목표는 이미 주어져 있다. 헌법이 규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차기 정부는 현정부가 만들어 놓은 바로 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상황에서 출발한다. 그 현실에 입각해서 어떤 헌법적 가치의 실현을 우선적인 정치적 과제로 설정하며 이를 위해 어떤 정책수단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차기 정부가 어떤 정치적 과제를 떠맡게 될 것인지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에서 나온 '노무현의 10대 국가경영비전'과 '노무현의 정책방향 30'을 보면 노 후보는 민주당 정책노선의 기반 위에서 차기 정부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큰 틀에서 보면 노 후보가 설정한 차기 정부의 과제는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지역분열의 극복과 국민통합
② 남북한의 신뢰 구축을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과 새로운 동북아 질서 수립
③ 투명하고 자율적인 시장경제체제와 지식정보화 촉진을 통한 국제경쟁력 강화
④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생산적 복지의 강화
⑤ 권위주의 정치문화 청산과 과감한 분권화를 통한 정치개혁과 부패 근절
차기 정부의 이러한 과제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도 거의 동일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정책수단을 선택하는 문제에 이르면 그러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자기의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과제를 다르게 해석하며 같은 정책수단에 대해서도 다른 태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를 가진 유권자 집단을 주요기반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정당들은 상이한 정책수단을 선택하게 되며, 정당들의 차이는 구체적 정책수단의 선택을 통해 드러난다.
경제사회정책 e아카데미의 연구기획실장 정상호 박사는 노무현 현상을 '합리적 개혁세력의 정치적 성장의 반영이자 결집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여기서 '합리적 개혁세력'은 특정 정치인이나 연대나 쇄신파, 소장파 등의 의원집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좌우의 이념적 편향에 따라 구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문제가 개혁의 과잉이 아니라 진정한 개혁의 결핍이라고 믿는', 그래서 '개혁의 중단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와 보다 효율적인 개혁을 기대하는 시민들의 집합'을 말한다.(정상호, '노무현 현상에 대한 정치학적 분석', www.knowhow, 베스트뷰, 글번호 53821)
▲ 한화갑 민주당 대표와 김태랑 최고위원, 김원길 사무총장이 6월 13일 오후 6시께 6.13 지방선거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만약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가 이러한 '합리적 개혁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삼아 집권을 추진한다면 정 박사가 세 가지로 압축한 그들의 '보편적 정서와 기대'를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① 성공한 개혁의 계승: 햇볕·복지·벤처·여성정책
② 실패한 개혁의 극복: 인사(지역)정책과 교육·경제의 시장편향정책
③ 미완성 개혁의 발전: 언론개혁, 정치개혁
무엇을 성공, 실패, 미완성 개혁정책으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예컨대 한나라당은 정박사가 성공한 정책으로 분류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복지정책을 '대북 퍼주기'와 '사회주의적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정 박사는 교육과 경제 분야의 시장편향정책을 실패한 개혁으로 ^^만 교육 분야에 실질적인 경쟁의 원리가 도입된 실적은 별로 없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한 고용 불안정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기업 금융 구조조정은 국내외에서 많은 성과를 거둔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정박사가 미완성 개혁으로 규정한 언론개혁 역시 한나라당은 정치권력의 언론탄압으로 규정한 바 있다.
김대중 정부의 정책 가운데 어느 것을 계승하고 어느 것을 수정 극복하며 어떤 정책을 새롭게 도입할 것인지는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가 더 검토할 문제이다. 현시점에서 확인해야 하는 것은 '합리적 개혁세력'이 ①부터 ③까지를 얻을 수 있는 전제조건은 민주당의 집권이라는 사실이다. 개혁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데 있어서 '합리적 개혁세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이회창 후보가 집권할 경우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버린 "이인제 대세론의 근본적 한계는 필패론에 있던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는 ②와 ③을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다는 합리적 개혁세력 내부의 공유된 믿음에 있었던 것이다." (정상호, '노무현 현상에 대한 정치학적 분석', www.knowhow, 베스트뷰, 글번호 53821)
포스트 3김 리더십의 조건
3김의 리더십은 박정희 시대의 산물이다. 김종필은 군사독재정권의 제2인자로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그에 도전하는 민주세력의 리더로서 정치적 지도력을 획득했다. 그들은 길게 보면 1971년 대통령선거 이후 30여 년, 짧게 보아도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15년 동안 한국 정치를 전적으로 지배했다. 합리적 개혁세력이 관심을 가지는 지도자는 김영삼과 김대중이다.
정치지도자의 리더십과 역할은 그 시대의 역사적, 정치사회적 조건과 상호작용하면서 구현된다.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이 시대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구심점이 되는가 하면, 그 시대의 구조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무력해지거나 오히려 정치사회의 발전에 질곡이 되기도 한다. (김만흠, '지역독점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못 벗어나', 프레시안, 2002. 5. 21)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양김의 리더십은 빛과 어둠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빛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시절에 화려하게 부각되었으며, 어둠은 그들이 권력을 차지한 이후에야 짙게 드러났다.
우선 양김의 리더십은 역사적 정통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희생한 산업화, 계몽 없는 산업화가 이루어진 1970-80년대에 공화정의 기본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다. 두 사람이 대통령을 지낸 10여 년 동안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이 사라졌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시민적 기본권이 신장되었으며 언론에 대한 통제와 언론자유에 대한 탄압이 사라졌고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 자주적 노동운동에 합법적 공간이 열렸다. 적어도 정치적 민주화에 관한 한 그들의 리더십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의 진전을 기대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았다.
양김은 또한 강력한 개인적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였다. 이것 역시 크게 보면 탄압을 견디며 정치를 해야 했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같은 시절을 살았던 수많은 정치인 가운데 오직 그 두 사람만이 이러한 카리스마를 획득했으며, 이것은 양김이 출중한 개인적 능력의 소유자임을 입증한다.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전광석화 같은 결단력, 민심의 흐름을 읽고 대안을 조직하는 능력에서 양김은 다른 모든 경쟁자를 압도했다.
양김은 역사적 정통성과 개인적 능력을 겸비한 카리스마적 리더로서 결국 자기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그들도 자기 자신과 자기의 시대를 넘어선 초인은 아니었다. 양김의 리더십은 사회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변화를 수용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대신 낡은 방식으로 그 위기에 대처함으로써 지도력의 위기를 심화시켰고 끝내는 정치적 몰락의 길을 걸었다. 많은 성공한 사람이 그런 것처럼 그들도 '자기 성공의 희생자'가 된 것이며, 1987년 이후의 정치사는 양김이 역사적 정통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역사이기도 하다.
▲ 지난 5월 3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신의 팬클럽 YS사사모 회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그러나 양김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스스로 역사적 정통성을 훼손했다. 1987년의 분열, 3당합당, DJP연합이 그것이다. 집권을 위한 분열과 무원칙한 타협 때문에 부분적으로 훼손된 정통성은 그들이 집권세력으로서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많은 민주적 과제를 방기'했다는 비판을 받음으로써 더 심각하게 훼손되었다.(정대화, '개방적 민주정치로의 과도기', 프레시안, 2002. 5. 6)
양김의 역사적 정통성을 결정적으로 파괴한 것은 그들의 절대적 카리스마였다. 양김은 권위주의 정권과의 전선에서는 '민주주의 지도자'였지만 그들 자신이 이끈 정당 안에서는 '가부장적 독재자'였다. 1987년 민주개혁세력의 분열로 야기된 리더십의 위기를 그들은 지역적 결속력으로 보완했다. 그 결과는 다음 평가처럼 참담한 것이었다.
3김시대를 특징짓는 것은 지역감정의 자극을 통한 3김의 지역할거, 이를 기반으로 한 봉건적 사당정치의 확립, 이들 간의 정략적 담합에 의한 정권창출, 그리고 창출된 권력의 전근대적 사유화 및 농단 등 부정적 요소들이다. 그 결과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는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고, 수많은 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통해 쟁취한 민주주의는 채 꽃도 피우기 전에 빈사상태에 빠져버렸다.
결국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3김정치의 압도적인 힘이 한국 민주주의를 짓눌러 왔던 것이다. 3김의 권력욕, 이들을 추종하고 이들에 의지해서 표를 얻고 권력자원을 배분 받으려는 정상배들, 그리고 이들의 볼모가 된 유권자들의 지역주의적 투표행태가 3김정치를 견고하게 지탱해 온 세 축이었다. (김수진, '양김에 의한 민주세력 배제의 역사', 프레시안, 2002. 5. 7)
경험적, 이론적으로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오래갈 수 없다. 특별한 인간처럼 보이는 사람도 일상적 경험을 오래 하다 보면, 그냥 보통 사람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미 87년 대선 이후로 양김의 카리스마는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호남의 한을 바탕으로 지역주의적 카리스마를 지속할 수 있었고, 카리스마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김영삼은 반DJ에 의존한 지역주의적 리더십을 기초로 집권했다.(김만흠, '지역독점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못 벗어나', 프레시안, 2002. 5. 21)
민주화 투쟁에서는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대통령의 개인적 카리스마가 남용되면 집권세력과 정부 전체가 권위주의의 지배 아래 들어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는 인격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민주적 제도에 기초를 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나 양김은 인격적 카리스마를 거의 유일한 무기로 삼아 집권당과 국회와 정부를 지배하려 했다. 5년 시차를 두고 반복된 대통령 아들과 주변인물들의 구속 사태는 그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양김의 정치적 리더십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재의 명분으로 삼았던 산업화가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한국사회는 박정희와 같은 지도자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마찬가지 이치에서 양김의 시대가 진척시켰던 민주화는 인격적 카리스마에 근거를 둔 가부장적 지도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2002년의 한국사회는 양김이 리더십을 구축했던 시대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우리는 지금 다양성의 시대, 탈권위주의 시대, 디지털의 시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를 살고 있다. 70대 정치인들에게 이러한 변화에 발맞출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이런 면에서 보면 양김의 리더십이 무너진 것은 불가피한 사태다. '양김 이후' 정치적 리더십의 구축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구조, 주체, 그리고 매체의 변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홍성태, '노풍의 사회문화적 분석', www.knowhow, 베스트뷰, 글번호 54091)
'양김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국사회는 급속한 구조적 변화를 겪었으며 그 변화의 핵심은 '다양화'로 요약할 수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양김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처음 격돌했던 1971년 한국의 1인당 명목 GDP는 286달러였다. 양김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준비하다 5.18을 맞았던 1980년에는 1,598달러, 13대 대선을 치른 1987년은 3,201달러, 양김이 두 번째로 본선에서 맞붙은 1992년은 7,138달러, 그리고 김대중이 이회창을 눌렀던 1997년은 무려 10,315달러였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위기와 환율 변화로 2001년에는 8,900달러를 기록했다.
경제성장은 분업의 발달과 직업의 다양화를 수반한다. 성장이 빠를수록 변화도 급속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뒤떨어지지만 1980년대 약 1만여 종이었던 직업의 수가 1990년대에는 두 배로 늘어났다. 2002년 현재에는 4-5만 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증가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유복할수록 사람들은 다양한 욕망을 추구하게 되며, 그에 발맞추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개발되고 직업의 종류도 증가며 개별적 집단적 이해관계도 다양해지는 것이다.
지역 연고라는 원시적 유대를 토대로 한 가부장적 리더십은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를 이끌 수 없다. 정치자금과 공천권을 장악한 지도자가 전략과 대안을 제시하고 국회의원과 당원들이 그것을 추종하게 만드는 '패거리 정치'의 '수직적 리더십'도 이런 사회와는 양립하지 못한다. 전두환과 같은 야심적인 장군에게 정권을 맡아달라고 요청한다고 할지라도 군대식 리더십으로는 관리할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정치 리더십의 교체는 필연적이다.
▲ 통계청의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02년의 전체 유권자는 약 3444만 명이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권우성
두 번째는 유권자 집단의 변화다. 통계청의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02년의 전체 유권자는 약 3444만 명이다. 20대 유권자는 806만으로 전체의 23.4%, 30대 유권자는 856만 명으로 전체의 24.9%, 40대는 760만 명으로 전체의 22.1%를 차지한다. 50세 이상 유권자는 다 합쳐도 1021만 명으로 전체의 26.6%에 불과하다. 유권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20대와 30대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것이 1963년 태어난 39세 유권자다. 그들은 1970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며 1982년에 대학에 진학했다. 전두환 정권 아래서 청년기를 보냈고 6월 민주항쟁을 직접 체험했다.
20대와 30대는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반(反)권위주의적 탈(脫)권위주의적인 세대이며 앞선 세대보다 높은 교육을 받았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대학과 전문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진학자의 수가 10만 명을 처음 넘어선 것이 1977년이다. 그런데 불과 6년 후인 1983년에 30만을 돌파했다. 10여 년 동안 30만 명 대를 유지하며 완만하게 증가하던 대학 진학자 수는 1993년에는 40만을 넘어서더니 다시 빠르게 증가해 불과 5년만인 1998년에 60만을 돌파했다. 실로 눈부신 성장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참여의 중요성을 이론적 실천적으로 체득한 세대이다. 정치적 무관심과 저조한 투표 참여율은 그들은 기성 정치권의 낡은 정치행태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한다. 이 세대는 노무현 바람의 진원지이다. 노무현 후보가 20대와 30대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그들이 형식과 내용, 지도력 등 모든 면에서 정치의 혁신을 바란다는 것을 입증한다. 패거리 정치와 권위주의적 리더십으로 젊은 고학력 유권자 집단을 사로잡기는 불가능하다. 유권자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면 리더십이 바뀌어야 한다.
세 번째는 인터넷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초고속통신망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는 시골 읍소재지에도 ADSL이 깔리는 나라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http:www.nic.or.kr/index_kr.html) 자료에 따르면 최근 인터넷 사용인구는 눈부신 속도로 증가했다. 1997년 163만여 명에서 2001년 12월에는 2,438만여 명으로 15배나 늘었다. 2001년에만 470만 명이 늘었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12월 대선 때는 3,000만 명을 넘길 것이다. 7세 미만 어린 아이들과 80세 이상 노인층을 제외하고 따지면 전국민의 70%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셈이다.
세대별 인터넷 사용자 비율은 연령에 반비례한다. 2001년 한 해 동안에만 20대는 71.6%에서 84.6%로, 30대는 44.2%에서 61.6%로, 40대는 25%에서 35.6%로 증가했다. 50대 이상은 6.1%에서 8.7%로 높아졌으나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인터넷 이용자 가운데 62.4%인 1,521만 명이 매일 인터넷을 이용하며 주 2회 이상 이용하는 사람은 2319만명으로 무려 93.1%나 된다. 학력별로 보면 대졸자의 인터넷 이용비율은 81%, 고졸자는 41.2%다. 직업별로 보면 전문관리직의 83.9%, 사무직의 83.3%가 인터넷을 이용한다.
인터넷은 정치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들어가는 비용을 사실상 제로로 만들었다. 조중동은 여전히 신문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인터넷은 조중동의 정치적 영향력을 상당 부분 무력화시킬 정도로 힘이 세다. 네티즌들은 조중동의 공격에 대응하는 정보와 논리와 자료를 즉각 생산 유통시킴으로써 메이저 신문들의 여론조작을 저지했다. 노무현 후보가 조중동의 집중공격을 받는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지지율을 올리고 국민경선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은 인터넷의 존재 덕분이었다. 젊은 유권자층과 화이트컬러, 고학력 계층에서 노무현 지지가 높은 것도 인터넷 사용과 관계가 있다. 인터넷은 정언유착의 시대에 조종을 울린 것이다.
인터넷은 신문이나 방송과는 다른 쌍방향 미디어다. 신문과 방송조차도 인터넷과 결합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신문 독자나 텔레비전 시청자와는 달리 인터넷은 능동적인 참여를 보장한다. 조작과 왜곡은 불가능하다. 수없이 많은 능동적 이용자들이 지배하는 인터넷의 세계에서는 스스로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리더십은 인정받지 못한다.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는 지도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네티즌과 호흡을 나누며 대화할 수 있는 정치인만이 지도력을 획득할 수 있다.
ⓒ 오마이뉴스 김충조
이러한 변화를 고려할 때 '양김 이후' 정치적 리더십이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이 무엇인지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첫째는 민주적 리더십이다.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올바른 방침을 제시하는 철인형(哲人型) 지도자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이 다양한 견해를 자유롭게 표출하도록 만들고 이견과 대립을 조정하고 절충하여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 인격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비전과 제도화된 절차를 통해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둘째는 수평적 리더십이다. 재정과 공천권, 인사권 등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모든 사람이 자기 앞에서 머리를 숙이게 만드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시대는 끝났다. 국회와 내각과 사법부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하고 분산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각급 지방자치단체와 장관과 행정부처에 넘김으로써 3권분립의 원칙을 존중하고 자율의 정신에 따라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리더십만이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셋째는 개방적인 네트워크형 리더십이다. 측근과 사조직, 돈으로 유지하는 리더십은 시효가 종료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지도자는 다양한 사회집단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 국민들과 멀리 떨어진 구중궁궐에 살면서 민심과 어긋나는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지도자가 아니라 참모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고 각계각층의 오피니언 리더는 물론이요 일반 유권자들과도 정서적 일체감을 형성해야 한다.
신주류의 등장
이회창 후보는 '주류'(主流, mainstream)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되찾겠다고 말했다가 호된 반격을 받았다. 그는 주류가 어떤 집단인지를 끝내 명료하게 밝히지 않았다. 여러 정치적 고려가 있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떳떳하게 내놓고 자랑할 만한 '주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한 '주류'는 명문대학을 나온 자칭 엘리트들과 대기업의 지배자들, 조중동을 비롯한 유력 언론사의 사주와 경영진,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사회의 모든 권력을 차지했던 영남세력이다.
그들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을 떠받쳐 온 '구주류'(舊主流)로서 이번 대선에서도 이회창을 밀 것이다. 이들 '구주류'가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공개적으로 발설하면 대중의 반감을 사기 때문에 '공공연한 비밀'로 남겨두어야 한다. 이회창 후보는 기밀 누설이라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양김은 집권에 성공했으나 새로운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 김영삼은 이회창 후보의 '구주류(舊主流)'에 일부 개혁세력과 PK기반을 덧붙였다. 김대중은 호남과 충청 지역연합에 일부 개혁세력을 결합했을 뿐이다. 양김은 임기 5년을 안정적으로 지탱해 주고 퇴임 후 자기가 이끈 정당이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존속하게 해줄 새로운 주류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들의 리더십으로는 변화된 사회 환경에 어울리는 대안을 조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안이란 독자적 비전과 정책 패러다임을 의미하며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안을 체계화해야 한다.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정치적, 조직적 대안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정당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대안을 조직화하지 못하면 유권자의 집단적 참여를 유발할 수 없다.(정상호, '노무현 현상에 대한 정치학적 분석', www.knowhow, 베스트뷰, 글번호 53821)
'노무현 바람'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반영한다. 노무현은 독자적 비전과 정책적 패러다임을 완전하게 체계화하지는 못했지만 그 가능성을 보유한 새로운 리더로 떠올랐다. '노무현 바람'의 진원지와 지지층의 특성을 뜯어보면 한국 사회에 일찍이 없었던 신주류(新主流)가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주류는 앞서 언급한 '합리적 개혁세력'이다. '개혁의 중단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와 보다 효율적인 개혁을 기대하는 시민들의 집합'이다. '신주류'는 '구주류'와 기존의 정치적 리더들이 만들어 놓은 지역주의 정치구도와 특권적 권력문화, 제왕적 리더십을 거부하고 불신한다. '노무현 바람'은 기존 지도력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만들어낸 정치 현상이다.
'노무현 바람'은 기성정치의 사각지대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 이후 올 봄까지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노무현은 연령별으로는 20대와 30대, 학력별로는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층, 소득계층으로는 월수입 2백만원 이상, 성별로는 남자, 직업별로는 화이트컬러와 전문직 유권자들에게서 처음부터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으며 출발했다. 이들은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하며 투표율이 낮은 집단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정치 거부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보다 효율적인 개혁'에 대한 그들의 열망의 표현이었다. 그들은 이 열망을 지속적으로 배신한 낡은 정치를 거부했을 뿐이다.
이들이 노무현에게 높은 지지를 보낸 것은 그에게서 새로운 대안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반면 '저학력, 저소득, 고령층, 생산직과 서비스직'의 서민들은 국민통합과 민족화해, 권력문화의 혁신과 새로운 동북아 질서 구축 등 그가 내세운 정치적 가치와 목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서민후보를 자처하는 노무현이 아니라 귀족 이미지를 가진 이회창이 서민층의 지지를 받는 역설은 이렇게 해서 발생한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지역 변수가 크게 약화될 것이다. 정당의 지역적 기반과 후보의 출신 지역이 어긋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다른 변수가 승패를 좌우할 것인가. 국민일보 서영석 기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대선은 전례 없는 세대간 대결이 될 전망이다. 그는 이번 대선이 기본적으로 노무현에게 유리한 싸움이라고 본다.(서영석, '심층분석, 노무현 제대로 가고 있나(2)-연령대별 지지가 고착화되고 있다', http:du0280@kmib.co.kr, 6. 12)
그 결정적 근거는 연령별 지지도의 고착화 현상이다. 그는 논의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론조사업계의 리더인 갤럽과 MBC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노무현에 대한 지지도는 이렇게 변했다.
▲ 노무현 후보 지지도 변화 추이
같은 조사에서 이회창 지지도는 다음과 같이 변했다.
▲ 이회창 후보 지지도 변화 추이
40대 지지도의 흐름이 역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연령대별 지지도는 고착화되고 있다. 대통령 아들 비리를 비롯한 온갖 악재가 다 터진 시기에도 20대와 30대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노무현을 지지했다. '충성도'가 매우 높다는 이야기다. 50대 이상의 이회창 지지도 역시 고착되었다. 변하고 있는 것은 40대밖에 없다. 그런데 20대와 30대를 합치면 유권자의 절반에 육박한다. 게다가 이들의 노무현 지지는 '충성도'가 매우 높다. 40대의 대다수를 자기편으로 끌어오는 동시에,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이 현저히 낮은 상황이 아닌 한 이회창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뒤집어 말하면 노무현은 20대와 30대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나오게 만들고 40대 유권자를 붙들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문제는 리더십이며 대안을 조직하는 능력이다. 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에서 이들은 조중동의 집중포화 속에서도 노무현을 지지함으로써 '더 많은 민주주의와 보다 효율적인 개혁'에 대한 열망을 표출했다. '합리적 개혁세력'은 바로 이들이다. 노무현과 민주당은 김대중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공학'과 결별해야 한다.
김대중은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삼아 김종필과 연합함으로써 충청도 지역표를 얹었다. 달리 대안이 없는 비호남 개혁세력의 표를 흡수했고 정책적 우향우를 통해 보수적 유권자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렸다. 노무현은 이러한 '정치공학'을 구사할 지역적 기반이 없다. 그의 자산은 대안을 조직하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합리적 개혁세력의 기대와 열망'뿐이다. 그가 새로운 리더십을 형성하고 대안적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데 실패한다면 '노무현 바람'을 만들었던 '신주류'의 정치적 등장은 또다시 5년 후를 기약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 죽거나 혹은 바꾸거나
노무현은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다. 노무현 혼자서 리더십을 형성하고 비전과 정책 패러다임을 조직하는 게 아니라 민주당과 함께 한다. 그런데 노무현은 민주당 후보가 되고 난 다음부터 지지도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노무현 지지도의 절반 수준이다. 민주당이 노무현과 함께 집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민주당이 인정해야 하는 현실은 다음과 같다.
① 민주당은 집권당이 아니다. 다만 어제의 집권당이었을 뿐이다. 권한은 없고 대통령과 주변인물들의 비리에 대한 연대책임만 남아 있다.
② 민주당은 DJ가 만든 DJ의 당이다. 민주당에는 DJ의 인격적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다.
③ 민주당은 '지역당'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호남과 제주에서만 이겼다. 의원들의 압도적 다수가 호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거나 호남 출신이다. 중앙당과 지구당 대의원은 물론이요 일반 당원 역시 지역 연고를 가진 사람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④ 민주당은 확고한 주도세력이 없는 정당이다. DJ가 당의 지역적 외연을 넓히기 위해 영입한 국회의원과 정치인 중에는 민주당의 정책노선과 맞지 않는 인사들이 많다. 당의 중심이던 구동교동계가 전면에서 퇴각하고 최고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새로운 세력이 당의 중심으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⑤ 민주당은 정책노선의 중심이 분명하지 않은 정당이다.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 '개혁적 국민정당'을 표방하지만 DJP연합 과정에서 노선의 선명성이 퇴색했고, 집권 후에는 인사청문회와 특검제를 비롯한 중요한 약속을 위배함으로써 정책노선의 중심은 더 크게 흔들렸다. 김대중이라는 가부장적 지도자가 떠난 뒤로는 정책적으로 더 혼미한 정당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 지지도가 노무현 지지도에 현저히 뒤지는 것은 노무현을 지지하는 '합리적 개혁세력' 가운데 민주당을 거부하는 유권자가 많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원내 제2당의 기득권을 지키면서 노무현 후보를 현재의 민주당에 맞게 길들이는 것. 또는 모든 개인적 집단적 기득권을 포기하고 '합리적 개혁세력'이 갈망하는 새로운 비전과 정책 패러다임을 조직하는 것. 죽거나 혹은 바꾸거나, 그 선택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개인 지지도와 더불어 당 지지도도 올라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노무현에 대한 지지가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과 보다 효율적인 개혁에 대한 환호였다면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당내에서 실현한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보상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 초라한 '지역당'으로 남고 싶지 않다면 민주당은 어제와는 다른 정당으로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모든 개혁은 기득권을 침해한다. 민주당의 자기 개혁도 당내 기득권을 침해한다. 기득권을 허물거나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개혁은 없다. 민주당이 취할 수 있는 자기개혁의 방도는 다음과 같다.
① 당원의 인적 구성을 바꾼다. 기존의 당원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와 여성, 블루컬러와 화이트컬러, 학생과 전문직 종사자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개혁지향적 유권자들이 새로운 당원으로 가입해 지구당 위원장과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인터넷을 활용한 입당과 활동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든 지구당위원장과 현역의원들이 위원장직 유지와 공천 여부를 당원들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다.
② 8·8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자기 개혁의 전망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렇지 않으면 8.8 재보선의 패배는 자명한 일이다. 기득권을 포기하는 자기개혁의 몸부림을 되도록 조기에 가시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기에 선대위 체제를 출범시켜 8.8 재보선과 대선 비상체제에 들어간다. 한화갑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가운데는 이러한 자기개혁을 대중에게 각인시킬만한 인물이 없으므로 선대위 위원장은 외부에서 영입한다. 시민사회에서 명망이 높은 동시에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인물로서, 특히 40대 유권자들에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재보선에서 몇 석을 얻느냐 그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획득해야 할 유권자 집단의 기대에 부응하는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DJ 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인물'이 한 명이라도 포함되면 재보선 전체가 빛이 바랠 것이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그를 아웃사이더처럼 취급하는 민주당의 분위기를 마땅치 않게 여긴다. 자기의 지향을 당내에서 관철하지 못하는 노무현의 지도력과 돌파력 부족에도 실망한다. 재보선 공천을 '노무현의 힘'이 민주당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가라앉은 '노무현 바람' 다시 일으킬 수 있다.
③ '합리적 개혁정당'으로서 정책과 노선의 중심을 확실하게 세운다. 노무현 후보는 국민경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전통적 정강정책의 기반 위에서 리더십과 정책에 관한 여러 가지 비전을 이미 제시했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효율적인 개혁'을 위한 정책 패러다임을 대선 공약으로 체계화하고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경력과 다선 등 서열을 중시하는 낡은 전통을 파괴하고 '합리적 개혁세력'의 지지 성원을 받을 수 있는 인사들을 선대위와 정책부서의 전면에 배치한다. 민주당은 많은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민주당 개혁세력의 임무
노무현 후보는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대통령선거를 맞이하고 있다. 그가 민주당의 후보가 되었다는 것, 이것 자체가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의미한다. 한 시대가 끝나고 그 시대에 자기의 인격을 각인한 지도자가 퇴장할 때, 그 지도자와 운명을 함께 했던 인물들도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한 시대가 끝나고 지도자가 퇴장해도 그가 축조해 놓은 조직과 문화, 그의 시대가 남긴 기득권은 한 동안 남아 있기 마련이다. 새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유권자들은 그것을 반기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손으로 조직을 허물고 문화는 혁신하고 사람을 교체해야 한다. 기득권에 안주하며 변화를 거부할 경우 찾아드는 것은 분열과 다툼과 몰락이다. 거대한 문명도, 위대한 제국도 그렇게 무너진다. 정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민주당원과 국민들은 노무현을 후보로 선출함으로써 스스로 한 시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리더십과 대안을 조직할 기회를 민주당에게 제공했다. 민주당이 이 기회를 걷어찬다면, 이것은 그를 지지해준 유권자들과 민주당, 대한민국, 평화를 갈망하는 남북한 7천만 민족 모두에게 깊은 좌절과 슬픔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민주당 국회의원들 중에는 이것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자기 확신 없는 사람과 조직이 대중을 감동시키는 일은 없다. 지금 민주당에 가장 긴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국민과 역사에 대한 확신이며, 민주당 개혁세력의 임무는 새로운 리더십과 정책 노선의 중심을 세움으로써 이 확신을 국민들에게 '전염'시키는 데 있다.
2002/07/01 오전 12:06
ⓒ 2002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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