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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펜이 울고 갈 ‘극우파 해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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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昌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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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5 10:24:46 from 211.210 조회수 9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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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경 기자 choemg@chollian.net
대한민국,
르펜이 울고 갈 ‘극우파 해방구’
유시민
헬무트 콜 총리가 16년 장기집권을 한 1990년대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은 로만 헤르초크였다. 독일은 의원내각제 국가여서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불과하다.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서명을 한다든가 외국 국가원수가 왔을 때 영접하는 것 정도가 하는 일의 전부다. 그래서 국민이 직접 뽑지 않고 연방의회 의원과 지방의원 등 선거인단이 선출한다. 연방과 주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기 때문에 집권당이 추천하는 인물이 형식적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존재는 아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정치적 쟁점이나 잘 해결되지 않는 국가적인 과제가 있을 때 대통령이 던지는 말은 적지 않은 무게를 가진다. 예컨대 극우파가 외국인을 테러하는 사건이 벌어지거나 기업인들이 임금이 싼 나라로 산업시설을 대규모로 이전하려고 할 때 대통령이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위협하는 행동의 자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 언론과 시민사회는 그것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로만 헤르초크는 연방헌법재판소장을 지낸 명망 높은 법률가로서 보수 기민연(CDU; Christlich-Demokratische Union 기독교민주동맹)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당연히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유럽의 보수는 대한민국의 자칭 보수와는 큰 차이가 있다. 헤르초크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벼운 텔레비전 토크쇼에 나왔을 때 젊은 진행자가 물었다.
“당신은 나라를 사랑하십니까?”
헤르초크는 대답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이 엉뚱한 대답에 진행자와 방청객들은 모두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헤르초크가 한 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폭소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독일 보수의 양식을 한 눈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독일은 극우파 정권이 두 차례나 전쟁을 일으킨 나라다. 나찌는 6백만 유태인을 학살했다. 보수 또는 우파 정치인들은 극우파로 오해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언행을 조심한다. 애국심은 그들이 매우 중시하는 가치이지만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은 자칫 극우적인 냄새를 풍길 수 있다. 극우파는 국가를 절대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독일의 보수-아내를 사랑하지만 결혼 제도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결혼 제도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 말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이렇게 된다.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낸 삶의 양식과 문화를 사랑하지만 국가라는 제도 또는 민족이라는 집단을 숭배하지는 않는다.” 이런 것이 바로 유럽 보수의 기본적인 양식이다. 이 양식을 파괴하는 우익은 보수가 아니라 극우로 분류된다.
얼마 전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극우파 국민전선(FN; Front National) 르펜 후보가 결선에 진출한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는 물론 유럽 사회 전체가 시끄러웠다. 우리 언론도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프랑스의 지식인과 청년들은 이것을 ‘공화국의 수치’로 규정하고 수십 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무슨 큰일이 벌어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르펜은 1차 투표에서 겨우 17%를 얻었을 뿐이다.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정치세력이 모두 우파 시라크를 밀었기 때문에 결선투표에서도 르펜의 득표율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선거가 끝난 뒤 프랑스 사회는 평온을 되찾았다. 좌파들은 분열과 무관심이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파국을 초래할 수 있음을 절감했고, 프랑스 언론은 범죄를 무책임하게 보도함으로써 극우파 등장의 사회심리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자기반성을 내놓았다.
르펜에 비추어본 한국
우파든 좌파든 극단주의 세력은 민주주의를 해친다. 없으면 좋은 집단이다. 그러나 있어도 그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다. 국민들이 그 위험성을 알고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 세를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위험한 상황은 극우파가 무엇이며 왜 위험한지를 모를 때 발생한다. 대선을 앞두고 우리나라에서도 좌우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같은 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에서도 상대방을 극좌로 몰아치는 비난전이 벌어졌다. 과연 대한민국은 어느 정도 좌익적 또는 우익적인 사회일까? 프랑스 극우파 르펜의 주장 몇 가지를 참고삼아 판단해 보자. 논쟁을 참고삼아 우리 사회의 좌경화 또는 우경화 정도를 한 번 짚어 보자.
르펜과 국민전선은 외친다.
“모든 불법 체류자를 즉각 추방하자.”
프랑스에서는 이런 게 극우적 견해다. 정상적인 우파와 좌파는 되도록 너그럽게 대하자고 한다. 르펜이 한국을 알면 ‘형님!’ 하며 90도로 절을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불법체류자를 적발하면 예외 없이 추방하는 법률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악덕 기업주들은 불법체류 외국인의 임금을 착취하고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구인난 해소를 위해 눈을 감아준다. 대한민국은 르펜이 울고 갈 정도로 극우적인 나라다.
“강력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사형제를 부활시키자.”
이것도 프랑스에서는 극우파의 주장이란다. 정상적인 좌우파는 모두 사형제에 반대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사형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다수 국민이 사형제 폐지를 반대한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면 급진적인 정치인으로 찍힌다. 프랑스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확실한 극우파 국가다.
극우와 정상적인 우파, 극좌와 정상적인 좌파를 나누는 기준은 관용(寬容)의 유무다. 자기의 것과는 다른 견해를 법률과 제도와 폭력으로 말살하려 드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파는 극우가 되고 좌파는 극좌가 된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극우와 극좌의 전형이다.
극우파가 50년 동안 지배한 탓인가. 대한민국 국민과 문화는 너무나 극우적이다. 국가를 숭배하는 것이 애국으로 통한다. 한국 프로야구 팀끼리 경기를 할 때에도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국제적으로 이름난 르펜도 주권자인 국민들이 공공장소에서 국기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도록 강요하겠다는 야심을 품을 만큼 무모하지는 않다.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법률을 만들자고 하지는 않는다.
이젠 ‘이념검증’이라는 헛소리 좀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르펜보다 훨씬 더 극우적인 정치집단과 언론사들이, 자기와는 다른 모든 사상적 경향을 ‘좌익’으로 몰아 ‘사상검증’의 칼을 들이대는 불쾌한 코미디도 그만 보고 싶다.
아, 극우는 정말 싫다!
(국제민주연대 발행 '사람이사람에게' 2002년 5,6월호 게재)
2002/07/15 오전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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