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소녀의 죽음을 어이하나/ 김원웅
별다른 희망이 없어도 삶 그 자체가 희망인 나이 열다섯. 통통거리는 웃음만으로도 귀신도 무장해제시킬 그 가뿐하고 예쁜 나이에 찾아든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육중했다. 효순이와 미선이. 이름만으로도 대한의 딸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그 소녀들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늘상 오고가는 친숙한 마을길에서 미군이 몬 장갑차에 깔려 유명을 달리한 열다섯 살 소녀의 죽음은 얼마나 이상하고 낯설고 소름끼치는 것인가. 영문도 모른 채 이유도 없이 미군장갑차에 깔려죽은 무고한 우리 소녀 효순이와 미선이, 그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이 땅의 자존심이 아닐는지.
그런데 그 진상을 누가 밝히나. 미군당국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밝혀졌는가? 이 사건이 발생한 6일 후 미 제2사단이 발표했다. “한국경찰, 한국군 범죄수사대와 미육군안전부서가 공동으로 철저하게 사고조사를 실시했다”고. 그런데 한국경찰은 합동수사에 참여한 바가 없다. 미군의 발표는 명백한 허위였다.
미군쪽의 공식입장은 “미군쪽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있는데 책임있는 사람은 없다! 그 오만한 답변에 비판여론이 일자 미군쪽은 마지못해 사과한다는 말을 했다. 말뿐인 사과를.
미군 당국은 장갑차의 미군은 공무수행 중이었다고 말한다. `공무'를 강조하는 것은 공무집행중의 범죄의 재판권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군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작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에서 친구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뿐하게 마을길을 걷던 여중생을 죽이고도 문제가 안 되는 공무는 무슨 공무였을까? 전쟁이었나, 반란군 진압이었나?
법무부는 공식적으로 미군쪽에 재판권 포기를 요구했다. 그런데 신문에 난 법무부 관계자의 말이 이상하다. “일본 등 미군주둔국가에서 공무수행 중 발생한 미군범죄에 대해 미군이 재판관할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다.” 그러니 여론에 따라 재판권 포기를 요구하지만 결과는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는 우리 공무원인가, 미국공무원인가?
일본에서는 미군범죄가 발생할 경우 그것이 `공무'였는지, 아니었는지를 일본이 판단한다. 우리처럼 `공무'니까 참견 말라고 하는 미군의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시킨 행위를 공무라고 우기면서 우리 사법부의 공소장 전달마저 가로 막고, 피의자를 부소장에서 소장으로 승진시킨 미군쪽의 오만이 일본에서도 통할 수 있었을까?
지난 95년 주일미군이 일본소녀를 성폭행했을 때 오키나와 도지사는 시민들을 모았다. 이 조그만한 섬에 모인 시민이 10만명이었다. 그들은 손에 손잡고 성폭행한 미군을 규탄했고 일본소녀를 위로했다.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까지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여론이 무서운 주일미군은 훈련을 하루 중단하면서까지 반성의 날을 선포했다. 그런데 그보다 백배 더 끔찍한, 차마 말로 표현하기조차 꺼려지는 윤금이씨 살해 사건에 대해 미군은 “사소한 문제를 부정적으로 확대하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왜 같은 우방인 일본과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다른가? 왜 일본에서는 통하지 않는 오만이 이 땅에서는 통하는가?
일각에서는 미군은 우방인데 괜한 반미감정만 심화시키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모양이다. 한쪽에서는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심기를 건드릴까 전전긍긍하는 관계는 우방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그건 주인과 노에의 관계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인 것이 나는 부끄럽다. 여당이 야당을 향해, 야당이 여당을 향해 걸핏하면 국정조사를 운운하면서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침묵하는 정당들이 부끄럽다. 당대표는 뭘 하는가, 그 많은 최고위원은 뭘 하는가, 정책위의장은 뭘 하는가? 우리는 약한 나라의 불쌍한 국민인가?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대∼한민국'의 힘을 다시 보여줘야 정치권이 움직이고 미군이 형사재판권을 포기할까나!
김원웅/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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