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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4-22, 16:54:15 에 icaruskj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대구사시는 형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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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가 아는 어떤 분이 영남의 지역주의에 대해서 통렬하게
비판하신 것을 게시판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영남분
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왠지 마음이 서글펐습니다.
사석에서는 '형님' 혹은 '히야가?' ( '형이야?' 에 해당되는 경북
사투리)라고 부르는 그 분에게 드렸던 글입니다.
비타민 씨 형님께.
마음이 좀 찹찹해져서 무슨 말씀부터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이었지요?
형님들을 처음 뵈었던 것이, 작년 5월 어느날 안타깝게 돌아가신 많은
넋을 찾으러 오셨을 때 나갔던 마중이 형님들과의 첫 대면이었습니다.
그때 형님들은 처음 인사로 '동토에서 온 사람들'이라시며 스스로를
소개하셨고 내내 미안함을 내보이셨습니다.
그때 줄곧 떠나지 않는 생각은 '왜 이렇게 애꿎은 분들이 사과해야하지?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였습니다.
가끔은 이런 허공에 뜬구름 잡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구분이 확연하다면 머리 아플 것 없이 조금 더
속편하게 사람들은 외칠 수 있을 텐데'
'착함과 올곧음이 항상 승리하는 세상이 된다면 조금은 더 마음이 가벼
울 수 있을 텐데'
라고, 어릴 적 즐겨 보던 로봇 만화영화처럼, 동화책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게 실타래가 얽혀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웅이라고 자처했던 그 옛날 서양의 누구처럼 단순하게 그
어려운 매듭을 잘라버릴 수 없는 이유는 실 한올 한올이 귀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한 가지 더 더욱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모순 중에는 공교롭게도 지역의 형태를 띤 나머지 정작
착한 사람들은 더욱 미안해하고 정작 나쁜 사람들은 힘없고 아직 진실
을 모르는 많은 분들을 앞에 내세워 방패를 삼으면서 더더욱 뻣뻣히
고개를 들고 다닌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유치한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롭기에 충분히 할 수 있는 말도
자칫 오해를 사는 것이 또 행여 문제를 더 악화시킬까 두려워 근신하며
고개를 숙이기만 합니다.
서로들 말조심하면서.
한 편으로는 솔직히 우습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사실 서글픕니다.
사실 해당 지역 보통 사람들의 편견, 오해, 감정에 있어 해당 지역 출신
의 '진실을 알게 된 분들'의 비판과 설득이 더 중요하고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못난 동생의 지론입니다.
잘 아시다 시피 무슨 보이지 않는 금기(禁忌)때문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 쪽 문제는 그쪽이 해결해라. 이 동네도 버겁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는 더더욱 아닙니다.
자칫 타지역 사람들 ― 좁다란 땅덩이,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 이런 표현
이 조금 스스로도 우습긴 합니다만 ―의 입바른 소리보다는 '사실 우리끼
리 말인데 ........ .'하는 지역내 자성의 형식일 때 보다 효율적일 것 같다는
기술적인 면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깨놓고 이야기하자면 '어짜피 모두가 반성하고 그 누구도
허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아직 턱없이 멀었다'는 것은 두 말할
것 없는 사실이지만 계층이나 신분이 아닌 지역으로 나누어 보았을 때 영남
분들이 '마음의 양보'를 조금은 더 해야 할 것 같다는 것 또한 못난 동생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사실 어줍지 않게 이렇게 복잡한 세상 한 발짝 물러나서 위선에서 자유로운
척 도인(道人) 흉내내는, 구체성 없는 양비론 읊어 대는, 핵심은 회피하면서
은유법, 과장법, 풍유법 등 동원해 가면서 본질은 적당히 얼버무리는 종류의
지식인들은 역겹기도 합니다.
그게 먹물들의 한계지요.
하지만 그러한 역겨움만큼 충분히 떳떳하고 그 누구보다 당당한 분들까지
보다 열렬히 위선과 모순에 맞섰던 분들까지 미안해하는 것은 안타깝고
송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어떤 것도 쉽사
리 희생하지 못하는, '함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자'며 고교시절 교원노조를
위하여 같이 외쳤던 친구가 졸업 후 나름의 정의를 외치며 젊은 날을 희생
할 때 '난 너와 생각이 달라' 라는 편한 핑계로 자신을 위안하면서 어떤 다른
방법 찾아보지도 않으면서 영어사전을 뒤졌던 녀석이, 자기는 조금도 양보하
지 않으면서 편한 말 몇 마디로 얼버무리는 속물이 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게 이치라고는 하지만 형님처럼 자신의 보다
많은 부분을 희생하는 분들 앞에서는 일단 주눅부터 드는 것은 아마 일말이라
도 남아 있는 염치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참 미안한 기억이 있습니다.
언제였던가 대구에서 사시는 어떤 분과 토론을 넘어서 설전(舌戰)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1987년 당시 야권 분열에 있어 DJ와 YS의 도의적인 책임을 묻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리고 화살은 DJ와 당시 호남의 열렬한 지지 성향으로 옮겨갔습
니다.
( 참고로 말씀드리면 비록 청춘을 바친 선배들만은 못해도 개인적으로
DJ에 대하여 비판과 지지 사이에서 꽤 방황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넘쳐 나는 비판의 방법론에 있어 많은 문제가 엿보이기도 하며
DJ에 대한 부분도 그러한 경향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호남인이라면 그를 먼저 비판하는 것이 식견을 인정받고 모양세 만드
든 데 그럴 듯 하지 않을까?' 라는 충동도 느껴지지만 '이 또한 또 다른
위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 .
남들 ― 상대방을 짐짓 자기 아래로 보고 은근히 폄하(貶下)하면서 나르시
서즘을 충족시키는 먹물들 말입니다. ―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던 말던 )
말대꾸를 시작하다가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 상황을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DJ가 양보했다면, 그리고 DJ가
YS를 지원했다면 더욱, 호남인들은 대다수 YS에게 표를 주었겠지요. 돌이키
기 힘든 상처를 준 사람을 찍어 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YS가 DJ에게 양보
했을 경우 과연 '영남인들이 DJ에게 그만큼 표를 줄 수 있을 까'는 참 의문입
니다.
'그러하다면 더욱 DJ가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만약 YS측이 호남인의 아픔을 그 만큼 자신을 지지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등 정말 해도 해도 않되었을 때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는 말이라면
모를 까, 사실 그러한 민중들의 오해를 은근히 즐기는 것은 아닌가요?
민중들의 말못할 사연은 모르는 척 하면서 결국 '내가 대통령 먼저 되고 나서
너 대통령 되는 것은 나중에 생각해 보자. 어지간해서는 내 지지 기반의 사람들
너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어야 한다. 일단 보스는 내가
하고 아쉬우면 그 만큼 더 매달려라, 칼자루는 내가 쥘련다' 는 속 보이는 심보
가 아니냔 말입니다."
그 분이나 저나 오히려 지역감정 같은 것은 없기에 차라리 깨놓고 할 수 있는
대화인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쯤에서 멈추었으면 좋았을 것을 ...... .
"그리고 그렇게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면, 그냥 안찍어
주면 그만 아닙니까? 그냥 재껴 두고 DJ와 YS 둘 중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 찍어 주면 그만이지 정작 그 사람에게 표를 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 않는 겁니까? 예? "
그리고 그 분은 묵묵부답이셨습니다.
무슨 죄지은 사람인 냥 고개를 푹 숙이면서.
저는 다른 분들의 화제(話題)에 뛰어 들었고 한 동안 그 분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화장실을 가려는 도중에 바깥에서 홀로 계시는 그
를 보았습니다.
여전히 바뀌지 않는 어두운 표정으로 텅 빈 허공을 맥없이 하얀 담배 연기로
채우는 그 모습을 한동안 들키지 않게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돌이켜보면 그는 당당하게 DJ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정치인에 대한 한 사람의 투표권자' 라는 형식논리는 두 말할 것도 없고 무엇
보다 지금 보다 더욱 암울했던 시대에 저항하며 얻어내었던 결실을 고스란히
그저 얼떨결에 한 배를 타게 되었던 당시의 기성 정치인들에게 기꺼이 양보했던
이들 중 하나였으니까요. 같은 나라에 태어난 알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
하여 동료들과 함께 고통과 희생을 감수했던 분이었으니까요.
자신은 어물쩡 한 발짝 빼놓고 상황 보아 가면서 '말하기 편한 비판' 정도로 그
치면서 '무슨 떡고물 떨어지는 것은 없나?' 게눈으로 살피는 먹물들하고는 질적
으로 다른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분에게 적당히 자신을 지켰던, 그 정말 가장 치열했던 시대는 청춘을 가까
스로 비껴 지나가 버린, 한창 나이 때 그 상황을 만났더라면 스스로 어떤 모습
일 지 모를 속물 후배 녀석이 무슨 권리로, 정말 무슨 권리로 ...... .
그리고 저에게는 부끄러운 모습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저는 좀 독특한 호남인입니다.
낳아 주신 부모님은 각기 강원과 경북 출신이시며 어릴 적부터 자라기는 이 곳
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가족외에 혈연은 없고 부모, 형제 이외에 가
장 가까운 핏줄은 어머니 쪽으로 대구, 선산, 포항에 계십니다.
( 호남 민중들의 아픈 단면을 이야기 할 때라면 굳이 이런 이야기 않습니다.
공감 할 필요 없는, 결국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야기라며 '결국 뻔히
....... 인데 그냥 형식상 밑바탕 깔아 두는 거지' 라는 식의 일부 먹물들의
비아냥이 지레 싫거든요. 그래서 오기로 '그래 이런 말도 못하느냐' 면서 만용
을 부리곤 합니다. )
그리고 스스로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오해를 서로 풀어야 한다.
그게 더 효과적이다' 고 외치면서도 핏줄들을 만날 때면 자유롭게 말하지 못합
니다.
어쩌다 이따금 찾아 뵙는 성의 없는 조카가, 사촌이 핏줄간에 의의를 상할까
두려워 터무니없는 오해를 앞에 두고 비겁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형님 같은 분들 앞에 더욱 부끄럽기만 합니다.
형님들은 정말 어려운 싸움을 하고 계십니다.
상대가 보이지 않는 유령이기에 더더욱 어려운.
아시죠?
형님들은 그 누구보다 당당한 분들이라는 것.
그리고 아세요?
이 못난 동생은 형님들을 알게 된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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