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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5-06, 00:49:19 에 amharez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역사의 계승과 단절 : 3김 시대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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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김시대가 가고 있다.
김종필이 “지는 해는 서산을 붉게 물들인다”고 말 했지만,
화력한 낙조를 뽐내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김씨는 JP가 아니라,
노무현의 도움을 받을 DJ와 YS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양김 중에서 DJ에게 좀 더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지역적 영향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사람의 상반된 정치 스타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정치에 대해 조금의 관심만 있는 사람이라면,
DJ가 전형적인 햄릿형 인간이고 YS가 돈키호테형 인간이란 것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모든 것을 심사숙고하고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고도의 지적 능력을 소유한 DJ,
그리고 3당합당과 같은 전광석화와 같은 일 처리에
모든 정치적 결정을 감에 의존하는 보스형 정치인 YS.
한 시대를 풍미한 거인답게 두 사람은 여러모로 비교가 되는 사람이었다.
DJ를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도 그의 지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을 보면,
이와 같은 분석이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 판단이다.
DJ보다 YS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YS의 화끈함에 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영남인들이 경상도 특유의 호방함을 자랑할 때면
나는 언제나 YS의 화끈함을 떠올리곤 하였다.
기자들에게 돈을 줄 때도
YS는 지갑에 있는 돈을 세지도 않고 모두 꺼내 주며 빈 지갑을 훌훌 털어 보이고,
DJ는 뒤로 돌아서서 꽁생원처럼 돈을 일일이 세어서 준다는 일화는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둘의 성격 차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DJ는 언젠가 거짓말을 잘하는 정치인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하여
“자신은 약속을 안 지킨 것이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강변하여
사람들의 입방아에 두고두고 오르내린 적이 있다.
약속위반과 거짓말의 차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DJ를 보면서,
그의 마음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다가도
안해도 될 소리를 굳이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었다.
사실 멀리 87년 대선 불출마 선언과 95년 정계은퇴의 번복이
약속위반이지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타당한 이야기였을지 모르지만,
반DJ인사들은 물론 국민들에게까지 씨알도 먹힐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YS는 거짓말도 화통하게 하는 습성이 있다.
3당합당 당시 내각제 합의 각서를 써 놓고서도
그런 일이 없다고 딱 잡아 떼다가
‘김영삼’이란 그 이름만큼이나 찬란한 친필 싸인 각서가 공개되자,
YS는 비공개 약속을 깨뜨린 상대방을 신의없는 사람으로 몰아가며
정치적 위기를 타개해 나갔었다.
이후 YS는 두 번 다시 각서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고,
결국 분명한 거짓말을 하고서도 사람들의 뇌리에는
특별한 기억의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한마디로 거짓말조차 화끈하게 넘어갔던 것이다.
여기에 92년 대선 당시 벌어졌던 부산 복국집 사건은
YS 특유의 엉뚱한 정치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YS는 노골적인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 있었던 부산 복국집 사건을
자신을 낙선시키려는 음모라고 주장하여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하게 하였다.
경상도가 고향인 자신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영도 다리에 빠져 죽자’ ‘우리가 남이가’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지역감정을 조장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해를 한단 말인가?
그러나 YS는 그 특유의 돌파력으로 위기를 극복하였고,
후에 자신의 낙선을 기획한 음모라고 주장하였던 부산 복국집 사건의 주인공들은
모두들 문민정부에서 고관대작을 거치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런 YS와 DJ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수많은 흠결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이후 중소자본을 중심으로 한 성장전략과
남북한 동시 UN가입, 4대국 안정보장 등 탁월한 역사의식을 뽐내던 공약들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 아래 DJ에게 한표를 던져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정권교체와 함께 생산적 복지 정책을 내세우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대폭적인 복지예산 증액은
정책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DJ에 대한 강한 애정의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군사정부 시절에 대학시절을 보낸 젊은이로서
좌파적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는 세대적 특징도
YS보다는 DJ에 더욱 다가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요인이었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수구언론들이 DJ를 향해 좌파와 친북이라는 색깔 덧씌우기를 하면 할수록
그것은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미워도 다시 한번’식의 DJ를 향한 강한 지지율을 다지는 역할을 한 것이다.
여기에 YS의 참을 수 없는 무식의 가벼움도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문제였다.
IMF사태를 앞두고 경제현상에 대하여 YS에게 설명하였더니
너무 어려워도 하고 지겨워하기도 해서 자세히 보고할 수 없었다는
어느 문민정부 경제 관료의 회고담은
절망을 넘어선 답답함과 짜증을 나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
1987년 관훈토론회에서 ‘전술 핵무기’를 못 알아듣고
‘원자로’가 아니냐는 동문서답을 했던 일화는
두고두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YS를 자근자근 씹는 안주거리로 사용되고 있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대통령으로선 도저히 할 수 없는 망발을 태연스럽게 주장할만큼,
YS는 그렇게 무식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YS는 대통령을 지냈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을 만들어 낸
민주화 운동의 선봉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보다도 무식한 머리를 세계 만방에 유감없이 뽐내며
IMF사태를 불러오긴 했지만,
적어도 나같은 범인이 상대할 수 없는 거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가끔 DJ와 YS라는 역사적 거물들과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대적 행운을 타고 났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들이 존경스런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역사에 이렇게 드라마틱한 경쟁자를 보기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춘추전국 시대의 항우와 유방,
후삼국 시대의 왕건과 견훤,
고려 말의 이성계와 최영 장군 등에 비길만한 역사의 라이벌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우리 시대를 사는 행운으로 생각된다는 뜻이다.
1971년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불어닥친 신민당 경선에서
DJ가 당내 입지의 취약에도 불구하고 YS에 극적으로 역전승을 거둔 이래,
두 사람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한국 정치를 이끌어왔다.
이제 이러한 영욕을 남긴 그들의 시대가 노무현의 등장과 함께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3김의 시대가 끝나가면서 우리는 역사의 계승과 단절을 생각해야 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언제나 계승해야 할 역사를 강조하고,
개혁가들은 청산해야 할 역사를 강조하는 경향이 역사의 일반적 속성이다.
그러나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아니라도
역사에는 완전한 계승도, 완전한 청산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나간 시대의 역사는 우리가 아무리 지우려해도
흉터를 남기는 생채기처럼 남아 사람의 아픈 마음을 건드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은 그가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으며,
청산해야 할 역사와 계승해야 할 역사를 구분할 줄 아는 혜안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역사의식 없는 3김청산과 세대교체 주장에 너무나 많이 휘둘려 왔다.
92년 버버리 코트를 휘날리며 3김청산을 주장하며 등장했던 박찬종,
97년 세대교체를 주장하며 경선불복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인제.
역사 의식 없는 공허한 말장난이 민주주의와 역사에 주는 해악을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역사를 되풀이해야야만 했었다.
박찬종이나 이인제는 모두 3김청산과 세대교체를 주장했지만,
청산해야 할 역사와 계승해야 할 역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역사 인식의 부재로 인해 박찬종은 청산의 대상인 김영삼에게 백기 투항을 하였고,
이인제는 김대중의 훌륭한 정책은 계승하지 않고
도리어 청산해야 할 구시대적 정치행태의 산물인 동교동 구파라는 조직만 이어받으려 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김영삼에게서 받은 지역적 기반으로 호남을 소외시킨 것이 아니라,
그 어느 호남 출신 정치인보다 호남의 소외를 이해하고 마음 아파 했으며,
DJ와 함께 정치를 해왔지만 DJ의 구시대적 정치행태와 조직은 배제하고,
오직 탁월한 정치적 노선과 정책만을 이어받으려 했던 것이다.
노무현은 부산민주화운동 세력의 영입 케이스로 YS에 발탁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YS와 노무현이 정치를 같이 한 것은 2년 남짓,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노무현은 DJ와 함께 정치를 해왔고,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로는 누구보다도 DJ개혁의 전도사로서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
그동안 3김청산을 이미지로만 승부하는 어설픈 정치인들이 수없이 주장해왔지만,
진정 3김식 정치행태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명분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은
오직 노무현 뿐이다.
그러나 3김정치의 유산을 온전히 단절할 수 있는 힘은 노무현에게 없을뿐더러,
세계 어느 역사에서도 지나간 시대와의 완벽한 단절은 혁명이 아니고는 불가능하였다.
내가 노무현을 지지했던 것은
그를 통해서만이 DJ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으며,
노무현만이 DJ의 훌륭한 정책들을 완벽히 계승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노무현이 YS를 찾아간 것에 있지 않다.
관건은 노무현에게 단절해야 할 역사와 계승해야 할 역사를 구분할 줄 아는
역사의식을 가졌느냐에 있다.
나 역시 누구보다 YS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전라도를 고립시켰던 3당합당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가장들을 거리로 내몰리게 한 IMF사태는
누구도 YS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이 YS를 찾아간 것은 백번 천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노력을 할지라도 속 좁은 YS를 달래서 그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부마항쟁의 자랑스런 민주화운동의 정통을 가지고 있는 PK지역에서
민주화 세력을 다시금 복원하는데에 있어서 YS의 도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YS를 온전히 청산하고 민주화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다면,
혹여 그럴 능력이 있는 역사의 초인이 있다면 그를 불러오기 바란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노무현은 초인은 아닐지라도 그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1992년 YS를 지지하고, 그에게 온갖 아부를 다하던 정치인들이
노무현이 YS를 찾아간 것을 두고 온갖 비난을 해대는 것을 보노라면,
메스꺼움을 넘어 장 끝에서 올라오는 토악질을 참을 수 없는 심정이다.
YS가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일말의 저항 한번 해본 적 없던 사람들이
민주화세력의 통합과 정통성 회복을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을
어떻게 좋은 눈으로 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붙잡으려 해도 3김시대는 가게 되어 있다.
지금 노풍과 함께 화려하게 떠오르는 YS의 주가는
서산에 지면서 마지막 낙조를 불태우는 태양을 상징한다.
이제 그의 시대는 갈 것이며, DJ의 시대도 임기와 함께 끝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적 책무는 이 역사적 과도기를 성공적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지금 노무현은 이러한 역사적 책무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치인이다.
노무현은 계승과 단절을 위해서 김영삼을 찾아간 것이다.
노무현은 YS에게서 부산 민주화 운동의 정통과 지역적 유산을 물려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YS에게는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세울 기회가 될 것이다.
이인제를 앞세워 DJ의 부정적 유산을 고스란히 계승하려 했던
동교동계 구파는 노풍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가고 있다.
한 시대가 마감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김대중의 시대를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노무현이 김대중과 어설픈 차별화를 시도할 사람이라면
애시당초 그를 지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노무현이 김대중을 밟고 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에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낼 수 있었다.
자기가 죽은 후에 묘비에 ‘김대중 선생 비서실장’만 쓰면 된다고 말하던 권노갑마저
해외로 떠나라는 DJ의 말에 반기를 들며 이인제를 앞세워 권력을 창출하려 했다.
핵심 동교동계 가신마저 주군의 말을 듣지 않는 정치판에서
가신도 아니며, 고향도 틀리고 번번히 반기를 들었던 노무현에게
김대중을 지켜줄 것이란 완벽한 신뢰를 나는 보내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완벽한 김대중의 계승자인 동시에
완벽한 청산자가 될 것이다.
작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던 부산 후원회가 끝나고
“연청을 상속받고, 민주산악회를 인수하겠다”고 호언했던
노무현의 워딩이 지금도 내 기억에는 생생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언젠가는 노무현이 YS를 찾겠구나라는 추측을 했었다.
역시 노무현은 후보가 되기 전에 사석에서 YS를 언젠가는 찾아갈 것이란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나 그 시점은 민주당의 후보가 된 이후가 될 것이라고 분명한 못을 박았었다.
이것은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이전에는 YS를 찾아가지 않겠다는 자기 의지의 표현이었고,
또한 역사의 계승과 단절을 이룩할 정치인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제 돌아돌아 역사는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역사의 키는 노무현이 쥐고 있다.
이인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태종의 치세가 다르고 세종의 치세가 다르다”는 말로
DJ와의 차별성을 이야기했지만, 이제 세종대왕의 재현은 노무현의 몫이 될 듯하다.
세종이 왕자의 난으로 온갖 흠결이 많았던 태종의 시대를 넘어 성군의 시대를 구가했듯이,
노무현은 DJ와 YS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고,
그 시대가 남겨 놓은 역사적 몫을 훌륭히 해 낼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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