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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11-02, 13:07:11 에 abornife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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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버스안에서 신문을 넘기다가 눈길이 멈췄다. 어떤 카메라 전면광고였는데, 중앙에 큼직하게 강하고 간결한 카피하나를 새겨놓고 있었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일순간 전율이 흘렀다.그것은 그럴 듯 하고 합당한 진리를 발견했을 때의 것과는 다른 어떤 공포감을 연상시키는 그런 느낌이었다.
1984년. 정책과 숙청의 합리화를 위한 쉴 새 없는 기록의 조작이 떠올랐고, 그것에서 말하는 기록의 조작이 결국 사람들의 기억을 결정하고, 현재의 가치관을 규정하는 것을 접했던 그 느낌이 솟아올랐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군살없이 차가운 한마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기록은 보관되어 있으나 대중은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기록에 접근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다만, 기록에 대한 해석을 접하며 현재의 것을 판단할 뿐이며, 심한 경우엔 현재의 판단까지 제공하는 기성 정보를 습득하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은 필요에 따라 조작되어지고 있다. 지금 이순간도.
기억을 부정하는 반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5.18에 대해서, 4.3에 대해서, 여순반란사건에 대해서, 노근리에 대해서.. 남겨진 기록은 우리의 기억을 다시 규정한다. 한번 기억된 것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 있고, 새롭게 제시된 기록을 바탕으로 기억을 재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나또한 내가 사는 오늘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글들이 오늘을 기록한다. 현실적 필요에 의해 곡해된 오늘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먼훗날이라도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중에 먼먼 역사의 안목을 가지고 그날의 기억과 그날의 가치관을 위해 오늘을 기록하는데 있어 경계의 눈초리와 생각의 거듭된 검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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