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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4-30, 13:58:54 에 abornife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부평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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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잘라' 버려야한다고 점잖게 말하는 정장차림의 은행원, 피흘린 노동자,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경찰, 표밭을 향해 달려가는 정치인, 조작과 음모를 의심하는 정치인2, 그리고 이제 누구 적이고 동지인지를 헷갈려 하는 사람들, 무엇이 정답인지 아닌지 말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 영화를 찍었으면 상 몇개 받을 뻔 했다.
더럽고 치사하고 억울하면 돈벌어라. 서울방면 지하철 1호선을 타면 부평은 이제 먼나라 이야기처럼 듣고 말할 수 있다. 지옥을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단돈 1000원이면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교통편이 마련되어 있고, 해방의 열차를 기다리면서 거스름돈으로 커피한잔 뽑아서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지하철 공사가 정리해고와 임금동결 따위로 파업하지 않는 한 당신을 위한 비상구는 열려있다.
허나,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버려야한다. 서울에 내리면 몸을 팔아 먹이를 연명하든지, 내키지 않으면 서울역을 중심으로 노숙할 자유를 만끽할 수도 있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다. 노동자의 이름을 부정할 것인지 아닌지를, 그리고 창녀, 노숙자의 또다른 이름을, 아니면 굶어죽던가 말던가. 이 땅은 자유로운 경쟁과 선택의 권리를 손에 주어주었으니까. 이 얼마나 공정한 게임인가. 얼마나 자유로운가.
아니, 당신은 이미 진짜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무슨 노동자인가. 당신이 생을 맡긴 대우자동차가 아작난 순간부터 당신은 진작에 자유로운 경쟁에서 탈락한 불쌍한 짐승일 뿐이었다. 뭐? 잠깐만..? 닥쳐. 변명하지마. 김우중이가 돈을 들고 튀어서 어쨌다구? 그동안 권력과 붙어먹으면서 부조리를 키워온 것을 왜 당신이 책임을 져야하냐구? 그동안 기업의 부조리를 감춰두고 지들끼리 히히덕거리던 은행과 언론과 경영진과 회계사들은 뭐하고 있냐구?
닥쳐. 변명하지마. 자유경쟁체제에서 패자는 구구한 변명을 해선 안돼. 굶어주고 얼어죽는게 순리야. 당신이 핑계삼고 싶어하는 그들은 승자야.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그들은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거나 그동안의 치부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훌륭하신 분들이야. 당신같은 패자의 변명을 위해서 언급되서는 안될 훌륭한 분들이지.
게다가 자넨 서울방면 플랫폼을 꿈꾸는 순간부터 그들을 핑계삼을 이유가 없어. 그순간부터 자넨 정말로 마지막 한조각까지 노동자가 아니야. 자넨 혼자만의 구원을 위해서 부평을 떠나고 싶어하는 거야. 아니, 이미 부평을 떠나서도 노동자로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거야.
그래, 당신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돌아가. 당신이 그대로 노동자일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 당신의 이름을 스스로 부인하지 않게 돌아가라. 노동하면서 행복을 추구하고, 존중받는 세상으로 돌아가라. 당신은 지금 지옥을 벗어나올 수는 있지만, 당신이 노동자라는 이름을 지키고 싶다면 이땅 어느 곳도 지옥이 아닌 곳은 없다. 돌아가라. 속으면서, 속은 척 하면서 살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국엔 싸우게 되어있다.
돌아가서 노동을 빼앗긴 노동자로 소리쳐라. 노동자가 노동을 빼앗긴 순간부터 온세상이 지옥이 된다는 것을 소리쳐라. 떠나간 모든 이들에게 그것을 일깨워라. 빼앗겨선 안될 노동을 되돌려달라고 소리쳐라. 이 나라에 진정 노동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노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일신의 구속과 억압없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소리쳐라. 모두 함께 하나의 이름으로 소리쳐라.
떠나온 이들도 돌아가라. 전망좋은 방에서 지옥을 내려다 보지말고, 당신의 시작이 쟁기를 가는 거친 손이었고 뻑뻑한 볼트를 죄는 몽키스패너였다면 돌아가라. 지금 이순간에도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당신의 안락한 생활을 지탱하는 정체가 무엇인줄 안다면 돌아가라. 떠나온 당신을 태운 승차감 좋은 차를 타고서 다시 돌아가라. 부평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를 놓치지 마라. 당신 혼자만의 구원은 세상을 외면하고 등진, 이름을 버린 껍데기일 뿐이다. 먹물로 쓴 자본주의 세상이 아닌, 피와 땀으로 쓴 인간의 세상을 보고싶다면 돌아가라.
세상에는 노동하면서 살아가는 사람과 노동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의 이름은 노동자가 아니면 껍데기일 뿐이다. 난 노동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에 속하니까.
부평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당신의 이름을 확인하는 마지막 선택이다. 진정 당신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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