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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9-01, 11:29:26 에 amharez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김일성과 하느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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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일! 성!
이 석자는 한반도 남단에서 무시무시한 금기의 이름이었다.
김일성의 사진이나 활동이 TV화면에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김일성은 '똘이장군'이란 만화에서 탐욕스런 돼지로 묘사되기도 했고,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이란 과격한 표어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일성은
일제시대 항일운동가를 사칭한 가짜라는 이야기를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사실 학교에서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다면,
일제시대에 김일성이라는 그렇게 유명한 항일무장투쟁가가 있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약간 삐딱성의 기질을 타고났는지
혼자서 이런 의문을 잠긴 적이 있다.
북한의 김일성이 가짜 김일성인 것은 알겠는데,
그럼 북한의 김일성이 이름을 사칭할 정도로 유명한
진짜 김일성에 대한 일대기는 왜 가르쳐주지 않을까 하는 아주 사소한 의문이었다.
머리가 크면서 북한의 김일성이
실은 전설적 명장 진짜 김일성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자라났다.
사실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김일성 가짜설의 허구는 금방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국사교과서에서 항일운동사 최고의 명장으로 소개하고 있는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의 나이가 31살이었다.
만주벌판의 혹독한 겨울추위를 이기며
정규 군사훈련을 받은 일본 정예군들과 대결하는 독립군들의 수장으로
이순신 장군과 같은 큰 칼 옆에 차고 흰 수염 길게 날리는 50대 노장을 떠올리는 것은
영화 속의 멋있는 한 장면으로서는 어울릴지 몰라도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서는 김일성 가짜설의 중요한 논거로
언제나 평양군중대회에 나타났던 김일성 장군의 33살 나이가 제시되었던 것이다.
남한 사회에 팽배했던 김일성 가짜설은
우리 지식인 사회의 무책임과 비겁함,
그리고 대중들의 사회과학적인 지식의 미성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분단 이후 남한 사회는 김일성이라는 이름만 갖다 붙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 버리는 독재의 도깨비 방망이였다.
민주주의를 외치면 김일성이 좋아한다고 탄압을 했고,
통일을 외치면 김일성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자가 되었다.
이제 보수적 학자들 중에도 김일성을 가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김일성의 일제시대 항일투쟁의 전과가 북한의 말대로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아니면 남한 보수학자 주장대로 별 볼일 없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천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그 김일성인 것만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일제시대에 보천보 전투를 보도했던 신문기사를 순금으로 떠서
98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로 바쳤다고 한다.
해방 이후 최대 민간교류인 이번 8.15행사는
또다시 김일성이 남한 사회에 가지는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다.
김일성이 주창한 연방제 통일방안을 상징한 기념탑을 참관하고
그의 생가인 만경대의 정신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구속수감이 되야 하는 현실은
우리가 냉전의 광기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한 재야인사는 "김일성 조문 간다. 길 비켜라"라고
써 놓은 종이를 들고 판문점으로 향하다가
바로 경찰에 잡혀 구속 수감이 되었던 적이 있다.
해프닝이랄 수밖에 없는 사건이
해프닝이 될 수 없는 나라가
오늘 냉전의 광풍이 몰아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몇 년 전, 사람을 죽이기 위해 쥐약을 음식에 넣은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아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요즘 쥐약은 독약으로 쓰이지 못하도록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성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의도에 살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죽일 수 없는 객관적 상황 하에서는
불능범이라 해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 엄격한 법 논리인 것이다.
마치 무식한 바보가 설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음식에 설탕을 탔다고 해서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김일성 조문 간다고 길 비키라고 팻말을 들고 있던 늙은 재야인사에게
과연 지뢰밭과 철망이 가로막혀 있는 휴전선을 넘어 갈 능력이 있었을까?
만경대 정신을 쓴 강정구 교수나
3대헌장 기념탑 앞에서 북한 주민들과 어울려 춤을 춘 방북단의 행동은
분명 경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해프닝이었다.
세상 어느 나라 법이 해프닝을 구속하면서 처벌한단 말인가?
백 보를 양보해도 불구속입건이면 충분할 일이었다.
남한 땅에서 북한의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최초로 학술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현재 세종연구소에 있는 이종석 박사로 알고 있다.
이종석 박사의 연구 논문은 많은 주사파 학생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학술적으로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실 이종석 박사는 북한 체제에 대하여 상당히 비판적인 사람이다.
다만 김일성의 항일운동 자체가 사실이므로 그것을 기술했을 뿐이다.
그런 이종석 박사는 늘 국가보안법 저촉의 위험에 시달렸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상식적이지도 교양적이지도 못한 나라인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한 학자를 두고
모두들 자기 편한 대로 재단을 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좌익의 광란이 아니라
무식과 몰상식의 광풍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사실과 공정함이 힘을 얻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행위나 고무찬양죄에 해당하지 않는지
솔직히 많은 위축감을 느끼고 있다.
이종석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자료로 복사했던 북한의 자료들은
꼼짝없이 이적표현물 소지죄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나를 국가보안법의 고무찬양죄로
잡아넣지는 않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정신'은?
아무도 강정구 교수의 속마음은 모른다.
그의 저술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그가 진보적 학자라는 것은 확실하나
친북인사라 규정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보지 못했다.
검찰은 강정구 교수의 행위에 적을 이롭게 할 의도가 있다고 구속기소하였다.
그야말로 유시민이 이야기한 하느님 게임이다.
보여지는 사람의 행위가 아닌
사람의 속마음을 넘겨짚어 빨갱이로 몰아가는 독재정권의 행태를 두고
유시민은 하느님 게임이라고 명명하였다.
하느님이 아니고서야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사람의 마음은 신의 영역이다.
양심의 자유는 신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는 우리나라 헌법조문이다.
검찰은 지금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장세동은 "주석님의 민족애와 조국애에 평소에 경의를 갖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뵈니까 감개무량하고 뜨거운 민족의 정을 느낍니다.
그 동안 항일투쟁을 비롯하여 40년간 김주석께서 북녘땅을 이끌어 오시고
그 동안 평양의 우뚝 솟은 의지를 보고, 이러한 발전을 위하여
심려해 오신 점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다시 드립니다." 고
김일성에게 최대의 찬양을 바쳤다.
그런데 강정구 교수는 '만경대 정신'이란 말 하나로
구속 수감이 된 것이다.
검찰은 하느님처럼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장세동은 이적행위의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하고,
강정구는 이적행위자로 낙인을 찍어 버린 것이다.
"아버지의 것은 아버지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쥐약을 먹인 사건처럼 이념과 상관이 없는 것에서는
잘 작동하고 있는 법과 상식의 잣대가
유독 국가보안법과 관련이 되면 냉전적 사고의 광풍으로
부조리와 몰상식의 잣대로 변해버리는 사법당국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이러한 말로 돌려주고 싶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법의 것은 법에게"
냉전이 벌이는 하느님 게임의 망령을 이제는 역사의 유물로 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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