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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1-15, 00:07:46 에 amharez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김근태와 정동영 그리고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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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의 각 신문과 방송에서 실시한 대선 관련 신년 여론조사를 보고
나는 약간의 서글픔을 느껴야 했다.
그것은 어떤 민주당 후보가 나와도 여유 있게 따돌리고 있는
이회창 총재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지지율 때문도 아니요,
이인제에 비해 현저히 낮은 노무현의 지지율 때문도 아니었다.
이인제, 노무현과 함께 민주당 내 경선의 3강구도를 형성하며
지지율이 치솟은 정동영을 보면서이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3강의 반열에 저만치 멀리 떨어져서
한화갑, 김중권과 함께 군소후보의 대열에 끼어 있는 김근태의 지지율이 낮아서일 것이다.
작년 언제였던가, 노무현이 당내 경선 판도가 이인제와 자신이 양강구도를 형성했다고 하자,
김근태는 양강구도가 아니라 3강구도라고 하면서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년 여론조사를 보면 3강구도에 정동영이 들어갈 수 있을지언정,
김근태의 이름을 집어넣기에는 지지율이 너무나 초라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의 마음 속에 노무현과 김근태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둘이 대통령 후보로서 내 마음 속을 차지하는 비율은 정확히 51대49였다.
정통성과 명분의 측면에서 내 마음의 수평저울은
노무현과 김근태가 정확히 평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역갈등이라는 망국적 분열구도를 끝내야 한다는 것과
노무현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 인지도로 인한 현실적 득표력이
결국 수평저울을 노무현에게 기울게 한 것이다.
한 방울의 물이 가득 찬 컵의 물을 흘러 넘치게 하듯이,
2%의 차이가 나를 열렬한 노무현 지지자로 만들고 있지만
김근태에 대한 마음은 편치 않은 부채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근태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2번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첫 번째 눈물은 몸서리처지는 그의 고문에 대한 기록이었다.
각종 전기고문과 물고문, 그리고 동물적 능욕을 당했던 처절한 경험담도 그랬지만,
알몸으로 바닥을 기면서 살려달라고 빌라는 요구까지 들어줘야 했다는 말은
나의 마음을 너무나 찢어지게 하였다.
그의 처절한 기록은 비록 내가 한 죄악이 아닐지라도
별로 부유하지 못한 나의 조그만 안정적 삶에마저
벗어날 수 없는 죄의식을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눈물은 우연찮게 그의 연설을 듣게 되었을 때에 흘리게 되었다.
연설내용이 감동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실망스럽게도 김근태는 연설을 참 못하였다.
강렬함이 느껴지지 않는 손동작과
강조를 주어야 할 때 올라가는 톤 속에 새어 나가는 그의 발음은
아주 재미없는 연설을 만들어 버렸다.
최고위원을 뽑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하위권인 7등에 머무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의 뒤떨어진 연설 솜씨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어나는 발음의 원인과 그것을 고치지 못하는 이유를 들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김근태의 재미없는 연설을 탓할 수가 없었다.
새는 발음의 원인은 고문의 후유증인 비염이었다.
그의 비염은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비염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을 고문하였던 고문대와 비슷하게 생긴 수술대에 올라가는 것이
김근태에게 전율과도 같은 공포감을 안겨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직도 고문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
내가 객관적 대상물로서 김근태의 연설 솜씨에 대해 평을 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죄를 그에게 진 것이란 생각에 또 마음이 불편해졌었다.
대통령을 자격으로 뽑는다면 김근태는 누구보다 조건이 넘치는 사람이다.
몇 백 명을 죽인 살인마가 앉았던 대통령의 자리에 김근태가 앉는다면,
어쩌면 대통령 자리가 김근태에게 황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야 할 것이다.
3강 구도를 형성한 정동영의 이름 석자가 슬픈 것은
아마도 김근태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정동영이 듣는다면 섭섭해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대선후보 반열에까지 오를 밑천이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기 때문이다.
화려한 언변! 세련된 외모! MBC 앵커 출신의 높은 인지도!
언론사에서 그의 놀라운 지지율 상승을 설명하는 요인들이
나에게는 도무지 마뜩치 않은 느낌이다.
엊그제인가 자신을 충청도 사람이라고 밝힌 어떤 케이블 TV의 PD가
정동영에게 호감이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호남 출신이라 득표력에 한계가 있지 않겠냐는 나의 의견에
그는 정동영은 호남의 이미지를 벗어난 사람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정동영은
영남지역에서 김근태는 물론 이인제의 지지율을 넘어서고 있다.
전주 지역구에서 재선을 한 정동영에게서 호남이미지를 벗게 한 것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MBC 앵커를 지낸 화려한 경력일까?
아니면 전라도 같지 않은(?) 세련된 매너와 외모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일까?
물론 동교동계의 전횡에 도전하고, 당정쇄신에 앞장 선 그의 노력이 인정받은 탓이겠지만,
김근태 역시 쇄신파에서 활동한 것을 생각하면 이것만이 주요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아버지의 고향이 호남인 나 역시,
정동영에게서 전라도의 냄새를 맡지는 못하고 있다.
정동영의 고향은 전라북도 순창이라고 한다.
순창 고추장으로 유명한 이곳은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가 돼서야
전기와 버스가 들어갔다고 한다.
어렸을 때 기차에는 선풍기만 있는 줄 알았다가
경부선 열차에는 에어컨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나,
경부고속철이 건설되고 있는 21세기가 되어서야
호남선 복선화 공사가 완공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을 때,
전라도 깡패정권을 심판하겠다고 외치며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홍준표 의원의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던 전라도의 이미지와 정동영은 확실히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 마땅치 않아 보이는 모든 것들이
국민 사이에 정동영의 이미지를 키운 자산이 되고 있으니
공연스레 정동영이 싫어지려는 마음까지 들고 있다.
사실 정동영은 칭찬 받아 마땅한 정치인이다.
비단 정치경력 뿐만 아니라
정동영은 서울대 재학시절 유신반대 데모로 옥고도 치렀고,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군에 강제징집까지 당한 사람이다.
비록 김근태만큼은 아니지만,
군대에서 보안사에 끌려가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은 경험이 있는 정동영도
분명히 나 같은 범인이 부끄러워할 만큼의 고초를 겪었다.
그렇지만 과연 이러한 사실을 아는 국민은 얼마나 되며,
또 이것으로 정동영을 좋아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는 탓에
정동영이 호남의 이미지를 벗어났다는 어느 PD의 말에 숨겨진 이면적 의미를 분석하다가
나도 모르게 심술이 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동영이 전라도 사람이라
천만다행이게도 내가 지지하는 노무현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이중적 사고방식도 스스로를 경멸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정동영은 대통령이 되기에
그가 보여준 이력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몇 해 전, 택시 합승을 한 김근태에게 같이 탄 여학생 2명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혹시 이근안 선생님 아니세요?"
김근태를 '김근태가 고문한 이근안 선생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여학생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그나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아는 축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근태 본인도 그렇고, 주위의 사람들은
김근태에 대해 알기만 하면 능력과 자질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내 주위에는 김근태라는 이름 석자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어쨌든 결국 개혁진영의 후보로
노무현과 김근태, 정동영이 국민참여경선에 참가하게 될 듯 하다.
언제부터 국민참여희망자 접수를 시작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집이 시작되는 첫날에 지원을 할 작정이다.
행여 운이 좋아 나에게도 소중한 한 표가 주어진다면,
3명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한 명씩을 지워나가게 될 것이다.
제일 먼저, 아직 남아있을 많은 기회에
나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하길 기원하며
정동영을 탈락시킬 것이다.
두 번째로 ... ...
이성적 선택을 끝내고 난 뒤에
남아 있는 감성적 괴로움을 느끼며 김근태를 탈락시킬 것이다.
결국 제일 선호하는 후보로서 노무현을 써넣게 될 것이다.
선호후보 2위와 3위는 차례차례 김근태와 정동영을 써넣겠지만,
내가 지지하는 노무현은 1위가 될 것이기에
2위 이하로 써넣은 후보의 이름은 무의미한 표기로 남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의 생각과 다르게
김근태를 제1로 써넣을 표도 있을 것이요,
정동영을 써넣는 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제1선호 후보의 자리를 각자 호감이 가는 바에 따라 할지라도
2번째 선호 후보는 반드시 노무현을 써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끼리 갈려서 싸우다가 이인제가 민주당 후보가 된다면,
그 다음에 올 역사적 실망감은
87년의 양김 분열에 따른 선거패배보다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명분이 약한 정동영이 이번에는 양보해주고,
지지율이 너무나도 낮은 김근태가 대승적 차원에서
노무현을 밀어주길 바라는 나의 마음이 너무나 큰 욕심이 될까?
아직 대통령의 몫은 정동영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요,
김근태가 가져가기에는 너무나도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율피아누스는 정의를
"각자의 몫을 그에게 돌리려는 항구적인 의지"라고 표현하였다.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숨쉬기를 바라는 내 마음 속에
노무현과 김근태가 자기 몫으로 대통령의 자리를 가져가는 것은
지극히, 너무나도 합당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내가 각자의 몫을 돌릴 능력만 있다면 둘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겠지만,
정의가 승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정동영에게는 당당히 양보를 요구하면서,
김근태에게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양보를 부탁하는 나의 심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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