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2001-07-30, 11:50:19 에 amharez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유시민이 부러우면서도 좋은 이유
|
나는 가끔 나의 고향이 호남이 아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때는
전라도 출신이라고 은근한 경계의 눈길을 받게 되는 경우도 아니요,
전라도 사람에게 사기만 당해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아니다.
나름대로 치열한 사고의 과정을 거쳐 얻어낸 정치적 결론들이
"너 전라도 사람이지!" 한마디에,
그 동안의 논리적 전개가 일거에 감정적 뒤집힘을 당하는
참담함을 경험하게 될 때이다.
몇 년 전, 김영삼이 일본으로 출국하다가
페인트가 든 달걀세례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김영삼은
"이것은 김대중 독재자가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다.
계란에 든 페인트는 단순한 페인트가 아니라
고도로 화학처리된 특수 독약이 들어있었다"는 요지의
음모론을 제기하였다.
사태를 수습하고 김영삼과 수행원들이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고
기내에서 김광일 전 국회의원은 기내 승객들을 향해서
페인트 계란은 독재자 김대중이 김영삼을 죽이려는 살인음모였다고
엄청 선전을 하고 다녔다.
물론, 고개를 끄덕이는 승객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일부분은 IMF사태에 대한 책임도 모르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떠든다고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예기치 않은 역습을 당한 김광일 의원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일거에 분위기를 역전시켰다고 한다.
"말투를 들어보니 전라도 사람인 것 같군요"
정말이지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어떤 거대한 정치적인 철학과 논리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상식마저 여지없이 무너져버리는 참담함을 경험하게 한다.
그 참담함은 문명사회였다면 도저히 벌어질 수 없었던 살인극의 주인공을
직선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역사적 비극을 잉태하였고,
살인자보다 거짓말장이를 더 미워하는 이성의 아노미 상태를 불러내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이러한 참담함을 논리로 극복하고자 애를 써보았다.
그러나 사람은 이성의 동물이기에 앞서 감정에 지배되는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거꾸로 당신의 아들과 딸, 부모 형제를 아무 이유없이 처참하게 죽인 살인자를
대통령으로 뽑자고 한다면, 아니면 그러한 사람과 결탁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자고 한다면
그래도 그것을 올바른 일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감정에 호소를 해보기도 했지만,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솜방망이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가끔, 아주 가끔 나의 이러한 논리에 경상도 사투리가 실린다면
아주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정말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질없는 생각 때문에, 영남이 고향이면서 나와 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너무나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게 된다.
그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지 않았으니,
사고의 논리를 전개하는데 얼마나 자유를 느낄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러한 부러움의 최고봉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이
현재 MBC 100분토론의 사회를 맡고 있는 유시민이다.
그는 "항소이유서"라는 대한민국 운동권이 낳은 최고 명문장의 주인공이자,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스테디셀러의 작가이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시절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사회시간에 형식적으로 배웠던 케인즈 이론에 기초한
수정자본주의를 온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연표를 달달 외는 주입식 세계사 시간에는 도저히 배울 수 없었던
모택동의 대장정이 왜 농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는지와
볼셰비키 혁명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가 영남지역의 지역감정을 두고
집단적인 정신질환이라고 매몰차게 몰아쳤던 사실이다.
아마도, 양심에 대한 부끄러움이 많다고 고백하면서
운동권적 고결함을 잃지 않고 있는 유시민이
만약에 대구지역에서 대부분의 성장기를 보낸 경상도 사람이 아니었다면,
위와 같은 단도직입적인 논리를 들이대지는 못하였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내가 유시민의 용기에 대해 놀라와 하면서도
지역감정이라는 괴물 앞에 당당히 자신의 논리를 펼칠 수 있는
그의 태생적 축복(?)에 대해서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에게 놀라움과 부러움, 아니 그 이상의 감정으로 박수를 보내게 하는 것은
이 사회의 진보와 자유를 향한 그가 가진 치열한 운동가적 기질 때문이다.
운동권 시절의 그가 행한 전력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작년 4.26총선 당시, 안정적 시사평론가로서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음을 무릅쓰고
선거법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에서 출마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지켜보겠노라며 동아일보에 기명 논설을 기고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이름을 파는 단순한 시사평론가가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해 행동하고자 하는 운동가임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노무현의 상대측 후보였던 허태열은
이것을 빌미로 유시민을 검찰에 고소하였지만,
유시민은 당당하게 실정법을 어긴 것이 있다면 벌을 받겠다고
당당하게 검찰 조사에 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시민을 고발한 허태열 후보는
정견발표회에서 김대중 정부 들어서서 잘 살게 된 분 있냐고 물어보고 나서,
"저기 몇 분 계시는군요, 혹시 전라도 사람 아니십니까?"라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고 한다.
물론 그 다음에 "하하 농담이었습니다."라는 말로 음흉한 저의를 숨기기는 했지만,
이미 연설회에서 목표로 한 성과는 충분히 이룰만큼 이룬 뒤였던 것이다.
아마 유시민은 실정법 상에 법을 어긴 잘못은 혹여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양심의 법에서는 누구보다 당당했기에 노골적인(?) 노무현 지지의 글을
동아일보에 싣는 파격을 감행하였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 유시민이라는 위대한 논객을 만나게 된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일 것이다.
나는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MBC라는 공중파 방송의 시사토론 사회자로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가진 진보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유시민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칭하고 있다.
나는 그가 이 시대가 소중히 아끼고 가꾸어 나가야 할
소중한 자유인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유시민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년 대선 직전에 방송되는 MBC 100분 토론에서 토론을 마무리하는 멘트를 할 때,
노무현을 지지하는 멘트를 한마디 넣어 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다.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
|
▶▷▶ 이 칼럼에 대한 짧은 의견들
|
|
Cyber Webz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