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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7-30, 11:53:42 에 amharez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북방정책과 햇볕정책, 그리고 색깔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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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버지가 회갑이시라 해외여행을 보내드리자고 동생들과 의견을 모았다.
여행지로 동남아, 호주, 중국 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부모님은 중국 쪽으로 가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치셨다.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을 비롯한
유구한 역사적 유물에 대한 욕심도 있으시겠지만,
무엇보다 백두산 등정을 통해 천지를 관광하실 수 있다는 이점으로
중국관광에 호감을 느끼시고 계시는 것 같았다.
불현듯, 우리 아버님이 중국 여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준(?)
제6공화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떠올랐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중국은 중공이라고 해서 나라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죽의 장막에 싸여 있는 무시무시한 나라로 인식이 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해낸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노태우 후보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제시하였다.
80년대라는 엄혹한 군사정권의 시대에 공산국가이며,
그것도 한국전쟁 당시 서로 총부리를 겨눈 적국이었던 중국과의 수교를
여당 대선후보가 공식 국가명을 호칭하면서 공언하고 나선 것이다.
지금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시 공산당이라면 뿔달린 빨갱이를 연상하던 시대 분위기에서
당선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수교 공약은 엄청난 충격파를 몰고 왔다.
일반 국민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이요,
무엇보다 상해임시정부로부터 이어온 가장 오래된 우방 중화민국(대만)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 정부를 남조선이라고 호칭하면서 불편한 심사를 드러내었다.
그 즈음에 한국에서 개최되었던, 종목은 기억나지 않은 스포츠 국제대회에서
국기 문제로 중국과 대만이 갈등을 빚자,
우리 정부는 중국의 입장에 섰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자존심이 상한 대만이 선수단을 철수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귀국하는 공항청사에서
화교들과 어린 선수들이 울음바다를 이루었던 사실은,
냉엄한 국제정치질서를 이해하고 있던 나로서도 너무나도 가슴아픈 일이었다.
노태우 후보가 제시하였던 중국과의 수교로 대표되는 외교정책은
바로 6공화국이 최대 치적으로 자랑하는 북방정책으로 연결이 되었다.
노태우의 북방정책은 중국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로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만큼이나 놀라왔던
한중 정상회담, 한러 정상회담 등을 성사시키며
공산권 수교의 외연을 넓혀 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노태우 대통령의 치적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노태우의 북방정책은 대통령의 대단한 정치적 식견으로 이루어낸 성과라기보다는
시대가 요구하고 세계사적 흐름을 거스리지 않은 정도의 능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개인적 판단이다.
물론, 남북화해라는 절호의 호기를 무식한 외교정책으로 날려버린
김영삼에 비하면 너무나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파격적인 노태우 정권의 외교적 행보에 대한
이른바 반공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수층의 반응이었다.
그들의 인식으로 본다면,
우리 나라를 이렇게 반쪽으로 갈라 놓은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 소련과의 수교에 대하여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혹이 드는 것이다.
소련이 어떠한 나라인가?
김일성을 꼭두각시로 세워 북한을 공산화시킨 장본인이다.
그것뿐인가?
KAL기 폭파사건은 비무장민항기에 대한 폭격이란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비인도적 사건으로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사건의 피해자들은 시신도 거두지 못하고 물고기밥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또 어떠한가?
한국전쟁 당시 거의 다 이루어놓은 통일의 길을 막은 원흉이다.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는 자랑스런 국군의 사진을, 통탄하며 바라보게 한 장본인이
바로 100만 대군의 인해전술을 펼친 중공군이 아니었던가?
지금 국립묘지에는 중공군의 총에 죽어간 다수의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한중수교 당시 중국의 지도층은 한국전쟁의 참전을 주도했던 지배세력이
고스란히 살아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시기이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보수반공세력은 찾아보기가 힘이 들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분단된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한 사실이다.
엄연히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우리의 우방으로 존재하는 중화민국이 존재함에도,
분단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중국을 유일합법 정부라고 승인을 한 것이다.
어쩌면 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마저 부인할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일 수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와 공산국가로 대치되는 분단국 중에서
공산 국가를 유일합법정부로 인정한다는 발상은 누가 뭐라해도
보수 반공의 시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국기문란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에서 엄청난 세력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세력 중에 제대로 이러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 "어떠한 우방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엄청난 취임사를 배경으로 등장한 문민정부는
김일성 사망에 이어 '아쉽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통해
김영삼 대통령의 무식한 머리를 외교정책에 그대로 드러내며
중대한 민족사적 전환기를 허송세월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다.
지금은 공지의 사실이 되었지만,
노태우 북방정책의 종착역은 다름아닌 남북정상회담이었다.
그 때 대북밀사를 맡았던 사람이 박철언으로
임수경이 방북할 당시에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군중들의 환호를 받고 있던 임수경 전대협 대표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조금 과장해서 설명하자면,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80년대 이후 군사정부를 포함한 한국 외교정책의 커다란 흐름의
마지막 종착역 쯤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할시타인 원칙을 폐기한 6.23선언,
전두환의 남북정상회담 제의, 노태우의 북방정책,
김영삼의 불발된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남북관계의 변천사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특히 노태우 정권 당시, 이홍구 당시 통일원 장관의 주도로 만들어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의 3단계 통일방안을 상당히 차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김영삼 정권 시절에 북미 합의에 의한 핵문제 해결 역시 김대중의 일괄타결 방안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김대중의 일괄타결 방안을 김영삼 정권이 받아들이면서,
심히 자존심이 상한 김영삼 대통령이 영문 번역을 다른 말로 바꾸려고
무식한 머리로 무던히도 애썼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사람들 사이에 뒷얘기로 회자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햇볕정책을 둘러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층의 색깔시비이다.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면 색깔시비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한국 정치 현실을 너무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었다.
지금 김영삼을 비롯하여 많은 수구반동세력이
김정일 답방 저지운동을 펼친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에 대한 사과가 없이는 절대로 김정일의 답방을 허락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김정일 살해를 기도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내가 수구세력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무모한 반공주의 혹은 반북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진정 자유민주주의와 호국영령들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벌이는 일이라면,
설혹 그들의 주장에 과격한 면이 있고 시대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어도,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그들을 인정할 용의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철저한 반공주의자 혹은 보수주의자로서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반공과 보수를 내세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들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햇볕정책에 반대하는 논리가 진정 그들의 양심에 의한 신념이라면,
이 땅은 노태우 정권 시절에 이미 엄청난 보혁 갈등을 겪었어야 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 시절의 북방정책에는 아무 소리 없던 그들이,
유독 햇볕정책에 대해서만 뭐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나도 안 맞는 논리다.
한국전쟁에 대한 김정일의 사과는 그렇게 요구하면서,
중국 및 소련과의 수교에서는 그 흔한 데모 한번 안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중국과 소련이 이 땅의 분단사에 끼친 해악은 북한과 비교해도
질적으로 절대 뒤떨어지지 않은 죄악임을
반공세력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중 잣대의 차이는 너무 크기만 한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노태우가 하면 국가를 위한 일이요, 김대중이 하면 색깔이 의심스러운 것인가?
경의선 철로 이야기로 북방정책과 햇볕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작년 6.15선언 당시 경의선 복원을 약속한 것을 두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이 땅의 수구세력들은 북한의 남침로가 될 수 있다고
정말 끈덕지게 시비를 걸었다.
그 시비가 얼마나 끈질겼으면, 국정홍보처가 기찻길이 분명한 경의선을 두고
경의선은 기찻길이 아니고 경제라고 우겨댔겠는가?
그렇지만 경의선 복원은 김대중의 독창적 작품이 아니다.
프랑스 고속전철 떼제베를 알고 있는가?
노태우가 퇴임 직전에 고속전철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자
무리하게 기공식을 치른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고속전철은 단순히 한반도 남단의 여객수송을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니다.
북한을 넘어 중국을 지나 유라시아 횡단철도를 만들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이
알려지지 않은 정부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문민정부 출범 당시 정권의 핵심에 있었던 한 인사는
고속철의 종착은 서울과 부산이 아니라 저 유럽을 향한 원대한 꿈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하였다.
아이러니 하지만, 김대중은 92년 선거에서 고속철의 건설을
극구 반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경의선 전철의 복원을 위한 부지확보와 설계는
이미 이전 정권에서 끝나 있던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가서 합의하고 바로 복원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지난 정권이 지금의 남북관계를 내다보고 준비한 덕택(?)이다.
내일이면 6.15공동선언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 더 이상 남북화해의 물결을 가지고
구시대적 냉전사고를 들이대는 무식함은
이제 그만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길 바란다.
앞으로 10년이 지나, 아버지가 칠순이 되시면
편안하게 고속버스로 묘향산과 백두산, 명사십리 등을 구경시켜드리고 싶다.
나의 소박한 꿈이 그냥 꿈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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