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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7-30, 12:23:48 에 amharez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언론사 세무조사 그리고 순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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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논쟁이 한참이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언론장악의 불순한 의도가 있다면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하여 엄청난 맹공을 퍼붇고 있다.
아마도 이 싸움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피튀기는 전쟁이 될 것이다.
이문열은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를 보고
조선일보에다 "기관사들이여 급제동을 걸라"고 써놓고 있지만,
아마도 그 어느 쪽도 브레이크를 밟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대표적 보수 이데올로그 이문열은
양쪽에 서로 양보하라는 식으로 논지를 포장하면서
실제로는 정부에게 맹화살을 쏘아대는 얍삽함을 보이고 있다.
야당은 세무조사 자체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언론장악의 불순한 의도를 막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순수의 시대!
사춘기 시절 끄적거렸을 시구절의 하나인듯한 말이
어울리지 않게 세무조사를 두고 머리 속에 떠오르고 있다.
동기가 불순하다는 야당의 주장을 보며
사람들은 참 순수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투표권이 생긴 이래 김대중을 내리 지지해 온 나는
과연 이번 세무조사를 둘러싼 김대중 정권의 순수성을 믿는가?
나는 이 질문에 분명히 말하건데 세무조사를 하는 김대중의 순수성을 믿지 않는다.
아니 나는 지금까지 30년 이상 정치를 해온
노회한 김대중의 순수성을 한번도 믿어본 적이 없다.
야당의 주장대로 김영삼 정권 시절의 세무조사를 두고
언론탄압 음모라고 세무조사 반대를 주장하던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이 정권을 잡고 나서 세무조사를 한다는 것은 논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김대중이 만약에 언론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론개혁에 대한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갖고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IQ가 두자리거나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순진한 사람일 것이다.
정치인의 모든 행동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숨어있다는 것은
정치행태 분석의 상식이다.
언론사 세무조사의 실시에는 비판적 언론을 향한 김대중의 원한이 숨어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야당인 한나라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일 세무조사가 한나라당에 불리한 정치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그들이 언론자유를 위한답시고, 조세포탈이라는 명백한 불법사실을 옹호하는
무리수는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무조사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설마하니 한나라당이 언론자유를 위해서
저렇게 열심히 투쟁한다고 순수하게 믿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오늘날 미합중국의 역사적 토대를 닦았다고 평가받는 링컨 대통령이 떠오른다.
모두들 알다시피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을 이룬 위대한 인권대통령으로 기억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링컨 대통령이 흑백차별이 없는 만인평등의 시대를 꿈꾸는 순수한 의도에서
노예해방을 위해 애썼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링컨 개인의 순수한 가치관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노예해방의 가장 큰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링컨은 상대 당 후보의 난립으로
소수 득표로 당선이 되는 행운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가 노예해방을 부르짓고 나선데는
미합중국 북부지역의 산업자본가들의 이익이 숨어 있다.
다시말해 링컨의 취약한 지지기반을 극복하기 위하여 노예해방이 이용된 것이다.
남부지역의 흑인 노예들은 임금노동자가 될 수 있는 훌륭한 인적자원이었지만,
노예제는 그러한 임금노동자의 확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었다.
반면에 남부지역은 흑인노예의 노동력으로 대농장을 유지하고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있었다.
노예해방이 남부지역의 급속한 경제적 쇠락을 가져올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남부와 북부라는 두 지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있는 미국의 남북전쟁이다.
남부 역시 노예해방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준비기간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었고,
남부의 노예주들 모두가 '톰아저씨의 오두막집'처럼 악독한 노예주는 아니었다.
또한 노예해방 자체가 흑인노예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것도 아니었다.
공장 임금노동자로서의 삶은 농장 노예로서의 삶보다 비참하면 비참했지
결코 편하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에서 링컨이 승리하고 노예제가 폐지되자
미합중국의 남부지역 경제는 완전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링컨의 비순수성과 노예해방의 엄청난 부작용을 들어
노예제 폐지를 반대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
사람은 이기적 동물이다.
그리고 정치란 사람의 이기와 전체의 공익을 조화시키는 고도의 공학이다.
노예해방에 링컨의 사익이 개입이 되어 있다고 해서
노예해방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는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예제는 누가 뭐라해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제도이고,
노예해방은 미국의 역사적 발전을 위한 극히 올바른 역사적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언론사 세무조사로 돌아가자.
나는 김대중의 순수성을 믿지 않는다.
역시 한나라당의 순수성도 믿지 않는다.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한다는 조중동 역시 나는 믿지 않는다.
가끔 순진하다는 소리를 친구들에게 듣는 나 역시,
나 자신의 순수를 믿지 않는다.
세상의 정치에 순수는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정치인 각각의 행동 중에
공익과 조화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고 합법적인 것을 지지할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언론사 세무조사 자체가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이다.
유례가 없는 세무조사라고 불법은 아니다.
그동안 신문사에 특혜를 주어서 세무조사를 안해왔다면
지난 정권의 권언유착이 문제이지,
현정권의 사상유례가 없는 세무조사가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조세포탈범은 엄벌에 처하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신문사가 조세포탈을 했느냐, 안했느냐에 있는 것이지
김대중의 의도가 순수하냐 불순하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언론자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편집권의 독립이다.
사주에 대한 세무조사로 인해 언론자유가 위축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주의 입김에 의해 기자들의 논조가 좌우된다는 극히 언론자유에 위배되는 상황을
언론사 스스로가 자인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김대중 정부가 불법적으로 언론에 개입하여
전두환 시대의 보도지침처럼 언론자유를 위협한다면
나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김대중 정부 타도 투쟁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합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나는 뭐라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언론사에 대한 합법적인 세무조사가 현재 시민단체의 언론개혁운동에
결론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나서고 싶은 입장이다.
만약 세무조사가 언론에 위협이 된다면
정부에게 세무조사를 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언론에게 법대로 세금을 제대로 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회창 총재는 본인이 대법관으로 있을 때는 실정법의 잣대를 잘도 들이대더니,
야당 총재가 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연법주의자가 되어 있다.
이회창 역시 순수한 사람은 아니다.
만약 순수한 법치주의자라면 언론사 세무조사 역시 법대로 하면 그만이다.
"법대로"
그렇지만 이회창의 '법대로'의 순수성 역시 나는 믿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는 사익과 공익의 조화를 만들어 내는 매커니즘이다.
이 매커니즘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사익과 공익을 구별할 줄 아는 엄정한 시각과
이를 조화시킬 줄 아는 정치공학적 기술이 필요하다.
나는 이 엄정한 시각과 정치공학적 기술을
어떤 정치인이, 어떤 언론사가 가지고 있는지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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