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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7-30, 12:35:30 에 amharez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근원의 모순에 대한 의식적 외면 (이문열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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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글은 이문열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제가 노하우에서 주로 글을 쓰고 있어서, 이곳에도 글을 옮겨 놓습니다.*
80년대 이문열의 소설들이 폭발적 인기를 끌어올 수 있었던 요인들은
무엇보다 80년대가 낳은 무겁고도 진지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이른바 386세대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상아탑을 다니고 있을 대학시절이
이미 그 시대 이후에 대학시절을 보낸 사람에게는 신화가 되어가고 있다.
아무리 생각없는 대학생이라도 시대를 고민하고 독재에 저항하던 시절로 ...
이문열은 그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성장한 작가이며,
소설가답게 80년대를 '이념의 과잉시대'라는 말로
자신의 문학적 자산의 대부분을 안겨준 시대를 표현하고 있다.
아마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폭발적 문학 인기 역시, 80년대라는 분위기가 낳은 소산이라는 것을 ...
그의 문학이 가진 장점은 진지함과 현학에 있다.
80년대라는 분위기와 그의 진지함은 너무나 궁합이 잘 맞았고,
그의 현학은 70년대 이른바 호스테스 소설과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리얼리즘에 있었다.
미로일지, 칼레파타칼라 등의 소설을 보면
진보나 민중을 바라보는 그의 음습하면서도 사실주의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을 바라보는 민중운동진영의 낭만적 시각이 아니라,
자기 이익에 눈이 멀고 야비하고 비겁한 민중의 모습을
그는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다.
칼레파타칼라에서 보여주는 혁명에 대한 그의 냉소는 극에 달한다.
혁명의 우연성, 감정적 동화, 혁명 이후 권력의 비차별성을
플롯으로 완벽하게 구성하며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패배감과 냉소적 시각을 강요하고 있다.
광주의 비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많은 지식인들이 민중의식에 경도되어 갈 때,
그는 반작용의 의식적 전개과정을 거쳐간 듯이 보인다.
그가 진보, 민중, 혁명에 제기하는 극도의 모순은
과장의 혐의가 농후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현실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제기되는 모순점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논박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이문열에게 제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러한 모순을 제기하는 이문열 자체의 모순을 이야기하고 싶다.
언젠가 이문열은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자신은 이념이 아닌 인간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문열과 묘한 시각의 일치를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이념보다는 인간이었다.
20세기 이전을 지배한 종교도, 20세기 이후를 지배한 이념도
그것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켰다면
분명히 중심에 있는 인간을 잊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의 결과로 볼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은 너무나 판이했다.
이문열은 87년 대선에서 노태우를 찍었고 92년에는 김영삼을 찍었다.
역사의 흐름을 보는 자기의 시각이 맞았다고 결과론적인 지식인의 우쭐함을
그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당당히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고의사구(故意死球)로 노태우 정권을 걸러보냄으로써 시간을 벌어 양측의 에너지가 함께 약화되기를 바랐다. 패퇴한 쪽의 잔여 에너지가 유혈의 역전(逆轉)을 기도함으로써 생기는 비극적 소모를 피하기 위함이었는데,그래도 간간이 떠돌던 쿠데타설은 그 잔여에너지의 작동을 느끼게 했다. 92년에 성립된 김영삼 정권은 처음 패퇴해 가는 세력의 구원투수 쯤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게 위장이었다 하더라도 이 정권보다는 대항 세력시절의 농축 에너지가 많이 희석되었을 것이라 여겨 다음 선택으로 삼았다."
이번의 이문열과 네티즌과의 사회적 공방을 일으킨
'신문없는 정부 원하나'라는 조선일보 7월 2일자 칼럼의 한 부분이다.
이문열은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원혼은 간단하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힘을 가진 사람이 계속 가지고 있어야 질서가 유지된다는
극히 초보적 시각이 그의 글을 통해 보인 것이다.
그러한 권력자들이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면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권력이 교체되어 나타났을 때의 부작용보다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아마 이문열의 시각을 사회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모든 권력의 교체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때 사법고시를 준비했다는 이문열은 법적 안정성을
상당히 신봉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남의 밭을 빼앗아도 그것이 일정정도의 시간동안 아무런 이의제기가 없을 경우에
그 밭은 빼앗은 사람의 것이 된다는 것이 법적 안정성을 설명하는 대표적 법률이다.
이것은 정의를 희생하고 사회생활의 안정을 추구하려는 법의 이념이다.
그런데 이 이론을 이문열은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논리적 억지를 부리고 있다.
미안하지만 밭을 뺏긴 사람이 아주 오랜기간동안 이의제기가 없어야
법적 안정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정권을 뺏긴 국민이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이의제기를
5공정권 성립 이래 계속 해왔다는 사실을
이문열은 애써 외면하면서 5공정권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무리하게 법적 안정성의 이론을 끌어다 댄 것이다.
지식인들이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민중을 현혹하는 대표적 사례가
이문열을 통해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문열의 더 큰 모순은 그의 행적에 있다.
신문없는 정부보다는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던 이문열이
지난 정권의 언론탄압을 비판하는 것을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설마하니 이문열이 언론탄압의 강도가 5공정권보다
지금이 더 강했다고 강변할 정도로
균형감각이 현저하게 상실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애써 지난 정권의 모순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러한 모순이 이문열에게 나타나는 것일까?
이문열은 자신이 중시하는 것은 이념이 아닌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강변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에게 전 문학을 통해서 관통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고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근원'은 뿌리라고 할 수 있으며,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지나간 것에 대한 향수로 볼 수 있다.
어느 평론가는 이문열의 극우편향을 좌익운동을 하였던
아버지에 대한 부정으로 해석하였다.
그가 '시인'에서 김삿갓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도
할아버지를 조롱하는 시를 써서 평생을 유랑하였다는 소설적 모티브는
작가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같은 소설 역시 아버지가 망쳐버린
고향의 이전모습을 그리워함으로써 아버지를 부정하는 그의 태도를 반영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 부정하기'로 그의 소설을 바라보는 것이 유효하기는 하나
이념적 잣대로 바라보기 힘든 소설의 경우 적용하기 힘든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제기하는 것이 '근원'인 것이다.
그가 근원에 대해 가지는 집착은 집요하다.
그에게 명망을 안겨준 '사람의 아들'은 근원을 추구하는
이문열의 소설적 경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젊은날의 초상'은 근원탐구가 몰고 갈 수 있는 죽음이라는 극단까지 가고 있다.
문제는 근원에 대한 신성시가 지나친 나머지,
그가 가진 사회과학적 지식이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는
근원의 모순을 외면해 버린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근원에 대한 의식적 외면'은 이문열의 소설 전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사람의 아들에서 주인공이 다시 기독교 신앙으로 회귀를 한다.
이문열에게 있어서 신에 대한 탐구 역시 근원탐구의 일환이다.
주인공은 기독교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파헤쳐가지만 결국은 기독교로 회귀한다.
소설적 구성이 탁월한 이문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을 아무리 자세히 읽어봐도
그의 회귀가 갖는 논리적 필연성이 어느 곳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스리슬쩍 기독교의 근원적 모순을 외면해버리고 근원으로 회귀해 버린 것이다.
'젊은 날의 초상' 역시 마찬가지다.
또다른 근원 '인생'의 모순을 그가 '그해 겨울'의 여행을 통해 해결하지 못했음에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잔을 받아 마셔야 한다고 아주 간단하게 고민을 끝내버린다.
아주 실망스러웠다.
이문열은 '인생'이라는 근원의 모순과도 적당히 타협을 해버린 것이다.
신마저 구원하기를 포기하고 떠난 인생의 모순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심적 고민을 간단히 해결한 것이다.
'금시조'에서도 이러한 외면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림을 통해 보고자 했던 금시조를 주인공은 작품을 태우는 불길에서 발견한다.
그림이라는 예술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근원을 그 예술을 부정해버림으로 해서
근원에 도달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하는 예술이 근원을 담을 수 없다는 모순을
이문열은 또다시 불태워버리는 외면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해버리는 비겁한 방법을 소설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모순점을 직설적 화법으로 설명하는 경우까지 있다.
'변경'에서 꼬마 주인공은 힘센 아이의 위협을 모면하고자
지나가는 상여 위에 귀신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귀신을 보았다는 거짓말에 사실확인을 위해 동네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갔다.
거짓말을 한 꼬마 주인공은 예기치 않은 사태 전개로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당연히 쫓아 간 상여 위에는 귀신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단의 동조심리에 의해 상여 위의 귀신이 모든 아이들에게 보인 것이다.
귀신은 근원을 뜻하는 것이고
모든 아이들이 그 근원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 심리는 작가인 이문열의 심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와
'황제를 위하여'에서 동시에 써먹은 수법은
이러한 이문열의 모순을 스스로의 입을 통해 드러내면서
또다시 스스로를 변명하는 지식인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압제에 호통을 쳤던 유림의 촌로가 일본 순사들이 어이없어서 풀어준 사건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촌로의 당당함에 순사들이 감복하고
기가 죽어 풀어주었다는 식으로 신화화된 사실적 해석을 소설에서 이야기하면서,
나이가 드니까 신화적 해석에 도리어 신뢰가 간다는 말을 덧붙여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지식인인 본인은 엄격하고 냉정한 시각을 견지할 줄 알지만,
그래도 신뢰는 신화적인 해석에 간다는 것이다.
'근원의 모순에 대한 의식적 외면'을 하는
이문열의 태도가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여성운동에 대한 모순을 실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여성들의 인권을 현저하게 무시하였던 조선조의 모순은 애써 외면해버리는
'선택'이라는 소설은 이문열에게 있어서
유교가 무시할 수 없는 근원적 존재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변경'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광주대단지 항쟁에서 죽어간 결론은
철저하게 다른 근원과 모순되는 아버지라는 근원이 가진 모순마저 무시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외면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문열의 문학을 의식적 외면의 모순성으로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네 인생이 모순에 가득 찬 것이고,
문학이라는 것은 그러한 모순을 안아가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 모순을 문학적으로 훌륭히 형상화 했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다른 지향에 있다 하더라도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그의 문학을 단죄하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이문열은 우리 시대의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며,
개인적으로 노벨상에 가장 추천할만한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그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잡문이라 일컫는 신문의 칼럼은 별개의 문제이다.
소설 속에서 보이는 모순은 예술성의 범위에서 용인이 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칭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모순성을 현실의 세계에까지 끌고 온다면
그 모순은 허구로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문열은 그가 속한 근원이 계속 선택한 정권,
아니 스스로가 선택한 지배질서의 모순을 대중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소설이라는 자신의 공간에서는 소유권이 이문열에게 있을지 모르지만,
이 사회의 소유권은 이문열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적 안정성'이라는 실정법의 이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문열이라면
조세 정의가 법률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결코 작지 않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정부는 홍위병을 동원하고 있지 않다.
실정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정부가 대중을 동원하여 어떠한 무력의 행사를 하고 있다는 혐의는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
극우이데올로기를 통한 여론재판의 혐의가 지난 정권이 써온
유력한 무기 중에 하나였음을 이문열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문열은 이에 대해 애써 침묵하여 왔다.
한 쪽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
다른 쪽의 커다란 모순은 외면해버리는 작태는
소설 속에서는 용서가 될지 모르겠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커다란 죄악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던
시가 너무나 아름다왔는데,
그 시가 주인을 잘 못 만났음에 나는 너무나 안타까와 했었다.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든다던 싯구절을 그냥 아름답게만 감상할 수 없게 만든
시인 서정주의 친일과 독재가 너무나 내 마음을 서글프게 하였었다.
그 아픔이 이문열을 통해 재현되지 않기를 바란다.
근원의 모순을 애써 외면하려거든, 다른 쪽의 모순에 대해서도 침묵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문열이 근원의 모순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다면,
나는 지금 이문열이 제기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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