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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7-30, 12:37:02 에 amharez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신문 1면에 실리는 죽음과 밀려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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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1면에는
약속이나 한듯이 수도권 기습 폭우 관련기사와
동부간선도로에서 물결에 휩쓸린 차량 사진 옆으로
동아일보 명예회장 부인의 투신 소식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조선일보는 관련기사를 3개면에 걸쳐,
그리고 중앙일보는 2개면에 걸쳐 실음으로서
이번 죽음을 어떠한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메이저 신문사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신문이 한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나는 그 옛날(?), 신문 1면에서 떠밀려 나간 한 사람의 죽음을 떠올리며
작금의 언론개혁과 관련한 신문들의 현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된다.
91년 5월이 벌써 10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90학번이나 91학번들이 바라보는 91년 5월의 의미는
386세대가 87년 6월항쟁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이나 남다르다.
대한민국 민중운동사에서 폭발적 민중시위의 전형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며 사그라든 불꽃.
90학번과 91학번은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 1학년 혹은 2학년 시절에
그 사건을 겪어야 했다.
꿈 많던 대학 2학년 4월의 막바지인 어느날,
늦잠을 잔 탓에 평소에 꼼꼼히 읽던 조간신문도
1면 머릿기사를 지나가던 눈길로 흘려보고 허둥지둥 학교로 뛰어갔다.
평온한 4월의 봄기운을 느끼며 교문을 들어서자
왠지 모를 살기가 캠퍼스의 분위기를 휘감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늦어진 강의시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는 대자보 주위는
이왕 늦어진 강의시간에 대한 나의 마음을 더욱 여유있게 만들어버렸다.
91년도만 해도 80년대에 비하여 많이 완화되기는 하였지만,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자보에 대한 대학생들의 신뢰도는
방송과 신문보도의 신뢰도를 더블 스코어로 앞서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높은 신뢰도를 가진 대자보에는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가
전경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어갔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실려 있었다.
"신입생이 맞아 죽었다"
눈이 뒤집히는 분노였다.
그리고 바로 넘어간 5월의 한달 동안
나는 그렇게 늦어버린 강의를 끝으로 강의실 대신에 거리를 쏘다니며
최루탄과 화염병 사이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보낸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죽음을 떠나 보내야 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그 죽음만큼이나 커다란 슬픔과 절망을 떠안아야 했다.
10여명이 넘는 넋들을 떠나보내며 한편으로 드는 불안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죽음 앞에서 그 어떤 것도 보상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살아남은 자들이 해주어야 할 역사적 몫은 있어야 할터인데 ...
그러나 역사적 몫은 고사하고 1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울분과
정권교체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절망감을 안겨주며 그해 5월은 떠나가고 있었다.
떠나가는 5월의 그림자는 조간신문의 1면을 통해 나에게 다가왔다.
한겨레신문을 제외한 거의 전 신문의 1면을 도배한,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가 외대 학생들로부터 받은
밀가루와 달걀 세례에 범벅이 된 사진.
그때까지도 나는 그것이 5월의 투쟁을 떠나 보내는
마지막 장송곡인 줄을 깨닫지 못했다.
아직은 어린 대학 2학년의 순진한 머리로는
밀가루와 계란은 어이없게 스러져간 젊은 넋들과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참교육 선생님에게 해직의 칼날을 보낸 당사자이자
강경대를 맞아 죽게 만든 정권의 국무총리.
그에게 계란과 밀가루는 너무나도 약한 응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은 바로 다음 날부터 눈 앞에 펼쳐졌다.
그렇게 많던 수십만의 시위 인파들은 단 하룻만의 천단위로 떨어져 버렸다.
"계란이 폭력이면 최루탄은 살인이다"고 고래고래 외쳐대고 다녔지만
이미 5월의 대세는 저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신문 1면이 가지는 엄청난 파괴력을 혹독하게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대학 신입생이 공권력에 의해 매 맞아 죽은 사건이
1면이 아닌 사회면으로 밀려난 언론의 음험함이 머리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문의 1면이 신입생의 꽃다운 젊음을 앗아간 쇠파이프보다
아무런 위해도 입히지 못한 계란과 밀가루를 더 큰 폭력으로 바꿔치기 할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현실 판단과 함께
편집의 장난으로 펼쳐질 수 있는 엄청난 부조리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이후 신문의 1면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신문은 언제고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것을 반전시켜버릴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구나!
1년이 지나고 학교 한 구석에 마련된 강경대 1주기 분향소에서
사무치는 슬픔과 어설픈 묵념 속에서도
그해 5월을 앗아간 신문1면에 대한 분노가
전혀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고 여론이 민중운동진영에 유리하게 흘러갈 때도
매일 아침 조간신문의 1면을 볼 때마다 별 기사가 없이 넘어가면
나 홀로 안도의 숨을 쉬고 넘어갈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10년이 지나도 신문 1면이 가지는 독기는 아물지 않은 생채기처럼
잊어버릴만 하면 섬뜩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던 동아일보 1면 기사를 보았을 때도,
세무조사가 '김정일 답방 정지작업'이라는 1면 머릿기사도
추미애 의원의 욕설파문을 1면에 실은 조선일보도
10년 전의 치떨림과 분노, 그 섬뜩함이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임을 계속 경고하고 있다.
이제 그해 5월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87년 6월항쟁의 기억을 갖는 386세대에게는 번데기 앞에 주름이 될 수 밖에 없고,
산업화의 축복을 고스란이 받은 92년 이후 학번에게는 전설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짜릿한 승리의 기억은 커녕 스승을 때린 패륜아로 매도당하며 그해 5월은 떠나갔다.
그렇지만 나는 강경대에게 살아남은 부채의식마저 차마 있다고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그 부채를 감당할만한 정신적인 자산이 이제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나에게 마지막 남은 것이라곤 그렇게 강경대를 떠나보내게 만든
신문1면에 대한 분노 속에 그해 5월이 준 흔적이 약간 남아있을 뿐이다.
오늘 한 사람의 죽음을 1면에 보도하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보면서
10년 전, 강경대의 죽음을 1면에서 몰아내며 축소하였던 신문들의 전략과는
정반대인 부풀리기 전략의 혐의를 보게 된다.
마치 김병관 회장 부인의 죽음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실시한 정권의 탓인 마냥 ...
조선과 중앙 그리고 동아에 감히 부탁하건데
고인의 죽음을 욕되지 않게 하고 싶으면,
정치적인 여론을 왜곡하려는 의도를 거둬 치우기 바란다.
끝까지 김병관 회장 부인의 죽음을 가지고 언론사 세무조사를 호도하려 한다면
부득이 언론개혁세력은 그의 죽음을 두고 명백하고도 냉철한 비난을
시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10년 전, 공권력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어간 꽃다운 학생의 죽음을 외면한 신문이
탈세라는 명백한 범죄혐의를 호도하기 위해 한 사람의 자살을 이용한다면
그로 인한 부도덕의 비난은 모조리 신문사가 독차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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