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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7-30, 12:39:24 에 amharez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조선일보'편가르기'비난기사가 가지는 자가당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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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7월 18일자부터 긴급진단이란 명목 아래 '위기의 지식인 사회'라는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리즈는 "동지 아니면 적, 극단적 편가르기"라는 서문 아래 18일자에는 "자기무덤 파는 양극화"라는 제목의 이진우 교수(계명대 철학과)의 글과 19일자에는 "공존 파괴하는 언어 폭력"이라는 제목의 조규익 교수(숭실대 국문과)의 글이 연달아 실렸다.
조선일보는 지식인 사회를 자기들 입장에서 위기라고 진단하고 대표적 위기의 징후로 '편가르기'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언론개혁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회적 논쟁들을 바라보는 조선일보의 시각이 드러난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문은 서문기사를 통해 지식인 사회가 "정권과의 거리에 따라 대립과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주류를 부정과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에 "차라리 입다물고 말지라는 냉소주의가 싹트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한 예시로서 작가 이문열의 홈페이지에 쏟아진 욕설들과 강준만 교수의 실명 비판을 들고 있다. 또한 이진우 교수의 글에서는 패러디 문화가 부정적 냉소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조규익 교수는 언어폭력의 심각성을 제기하며 "관용과 공존"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기사가 갖는 문제는, 극단적 편가르기의 증거로 내세우는 예시들이 편견에 가득찬 시각이거나,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만 크게 보는 형상에 있다.
일제시대 이봉창 의사를 테러분자로 묘사하거나, 광주시민을 폭도로 몬 20여년 전의 일도 과거지사로 지나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한완상 부총리나 최장집 교수에게 몰아부친 색깔론의 시비는 과연 조선일보가 언어폭력의 문제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이문열의 홈페이지에 쏟아진 욕설 이전에, 이문열이 시민단체에게 홍위병의 혐의를 뒤집어 쒸운 것은 언어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홍위병이라는 단어로 덮어 씌울 수 있는 오명의 크기가 결코 작지 않음을 색깔론을 제기하는 조선일보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색깔론의 제기 자체가 이미 다양성의 포기를 뜻하는 것이다. 빨갱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는 주홍글씨와 같은 천형인데, 언론개혁과 같은 이념과 상관없는 분야에서까지 친북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과연 상대방을 인정하겠다는 발상인지 조선일보에게 묻고 싶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 당연히 용인이 되고 받아들여지는 진보의 목소리를 좌익이라는 혐의를 걸고 인정치 않은 조선일보가 '극단적 편가르기'를 개탄하며 '관용'을 강조하다니 황당함이란 이런 때를 두고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작가 이문열씨의 신문기고에 대해 정치인이 '곡학아세한다'고 비아냥거리고 '가당찮은 X'이라는 상욕까지 서슴지않는 요즈음이다"라는 글로 추미애 의원을 짚고 넘어간 부분이다. 술자리 사석의 이야기까지 기사화한 기자의 무례는 차치하고, "너희 국민신당과 국민회의는 이번 18일 투표가 끝나면 싹 죽어. 까불지마. 내일 모레면 없어질 정당들아...."라고 외친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극언과 "창자를 뽑아버리겠다.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한 이회창 총재의 말이 상대방을 인정치 않는 극단적 편가르기의 예시로는 훨씬 더 타당하다는 것을 조선일보에 가르쳐주고 싶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편가르기'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하든 간에 사회학적으로 편가르기 자체가 나쁜 것일 수는 없다. 편가르기는 사회의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그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필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편가르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치 않는 다원성과 관용의 부족,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공정한 룰의 부재에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중의 하나가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문화가 부족한 것이다. 사회적 이익의 배분을 두고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대결의 모습을 보여왔다. 이에 대한 책임의 대부분이 군사정권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군사정권 하에서 우리사회가 분출했던 민주화의 요구와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인정되지 않았고 폭력으로 억압되어 왔음은 한국 현대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한 억압으로 인한 역사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합리적인 조정의 문화를 축적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총화단결이라는 미명 하에 많은 국민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와중에도 국가적 단결이 잘 이루어지는 것처럼 포장하고 살아온 것이다. 이것의 부작용이 현재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지 못하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오히려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현재 보수의 목소리가 탄압을 받고 있는 듯이 주장하지만, 조선일보가 진보의 목소리에 보냈던 탄압은 '차라리 입을 다물지'수준에서 머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비판의 목소리를 학살로 끝내버린 전두환 정권에 취한 조선일보의 태도는 무엇이었던가?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목소리를 고문과 투옥으로 억압하였을 때 색깔론으로 보조를 맞추거나 오히려 앞장서는 모습까지 보인 것은 조선일보가 '다른 쪽'을 아예 타도대상으로 삼았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편가르기나 갈등의 분출 자체는 사회가 발전하는데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분출하는 목소리를 억압하고 폭력으로 진압했을 때 나타나는 질서 있는 사회보다 오히려 건강한 사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조선일보는 세무조사를 하지 않고 언론사의 탈세사실을 덮어두거나, 그들이 수호하는 기득권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아서 자기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꿈꾸고 있는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현재 조선일보가 연재하고 있는 '위기의 지식인 사회'시리즈에서 나타나는 언어폭력과 극단적 편가르기의 모든 비난은 고스란히 조선일보가 받아들여야할 몫이다. 이회창 총재가 언급하여 국민을 이분법적으로 분열시키는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은 '주류'라는 말을 당당하게 연재기사에 써넣고, 극단적 편가르기를 개탄하는 조선일보의 무논리는 이제 접었으면 한다. 사회적 공기로서 그 책무를 다하고 싶으면 뼈를 깎는 자성의 자세를 먼저 보이는 것이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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