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는 "괜찮다"는 영화들이 정말 많이 개봉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는 많은데 혼자 영화보는게 싫어 못 보고 있는 영화가 산더미 같다는… --;)

  흥행과 비평은 영화의 양칼날입니다. 흥행성이 좋은 영화는 비평가들의 혹평에 시달리기가 일쑤고, 비평가들에게 좋은 말 듣는 영화가 흥행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흥행에도 성공하고 평도 좋은 영화. 정말 만들기 힘든 그런 영화들이 올 여름에는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슈렉」입니다.

 「슈렉」을 보면서 정말 간만에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그러나, 세간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슈렉」을 보면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정한 영화라면서 그렇게 칭송했던 영화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키작음에 대한 조롱 - 키작고 용기 없고 쫀쫀하기까지 한 파콰드 영주

  시쳇말로, 여자는 외모, 남자는 키라고 합니다. 여성의 평가에 미치는 외모의 비중에 비교해 볼 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요소가 남성에게는 키입니다. 키작은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수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대놓고 얘기하는 영화로는 「찜」이 기억나는군요. 여자로 변신한 안재욱에게 김혜수의 애인이 키 작은 남자의 부정성에 대해 열변하죠. 안재욱은 여자로서는 큰 키일지 몰라도 남자로는 작은 키에 속했구요.)

  피오나 공주와 슈렉의 추한 외모에 대해서는 무한에 가까운 관용을 베풀면서도, 파콰드 영주의 작은 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조롱을 퍼붓습니다. 파콰드 영주의 높은 성에 대해서는 콤플렉스라고 평가하고, 피오나 공주와 파콰드 영주가 같은 키처럼 보이게 해놓은 결혼 케익에서 파콰드 영주의 장식물을 케익 깊숙이 박아 넣어 작은 키를 두드러지게 합니다. 작은 키에 대한 "직접적"인 조롱이 판을 칩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파콰드 영주라는 캐릭터의 설정 자체부터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악역 캐릭터인 파콰드 영주를, 작은 키에 용기도 없고 쫀쫀한 성격까지 겸비한 최고의 악당으로 설정한 것 자체가 "키 작은 남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비평들이 이미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슈렉」의 이러한 이중적 가치관은 정말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슈렉」에 대한 이러한 못미더움은 피오나 공주와 슈렉의 사랑마저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못생기면 어때? - 남성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슈렉

  피오나 공주는 결국 파콰드 영주 대신 슈렉을 선택합니다. 이 영화의 구성상 당연한 결과일 겁니다. 그런데, 한번 「슈렉」을 삐딱하게 보기 시작한 저는, 이 부분에서도 그 순수성을 의심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피오나 공주가 슈렉을 기피했던 것은 그의 추한 외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도 비슷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죠. 그런 부분을 이해하게 되면서 피오나 공주에게 슈렉의 추한 외모는 더 이상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추한 외모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슈렉과 파콰드 영주를 비교해 봅시다.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영화에서 파콰드 영주는 작은 키에, 용기도 없고, 성격도 쫀쫀하고 비겁하게 그려집니다. 그에 비해 슈렉은 어떻습니까?

  우선 피오나 공주보다 키가 큽니다. 몸집도 좋죠. 자신보다 키가 작은 파콰드 영주에 비해 훨씬 그림이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키 큰 여성들이 자신보다 작은 남성을 기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그대로 반영되는 부분입니다. 어차피 슈렉의 추한 외모가 크게 핸디캡으로 작용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자신보다 작은 키의 파콰드 영주보다는 키 크고 몸집 좋은 슈렉을 선택할 동기는 충분해 보입니다.

  또한 파콰드 영주에 비해 슈렉은 훨씬 "남자다운"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괴물로부터 자신을 구해 줄 용기와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좀 소심한 것이 탈이라면 탈이겠지만, 그것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였을 뿐, 본래의 성격은 아닙니다. "남자가 쫀쫀하게스리…" 이거 남자들한테는 최고의 욕이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피오나 공주는, 키 작고 용기 없고 쫀쫀한 파콰드 영주대신 키도 크고 몸집도 있고 용기도 있고 체력도 좋은, 다시 말해 생긴 것만 좀 이상할 뿐 "남자답기 그지없는" 슈렉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요? 너무 억측인가요?

 결국 사랑을 책임지는 것은 남자? - 슈렉의 선택만을 기다리는 피오나 공주

  뭐, 이 부분은 너무나 많이 얘기되는 부분이니까 대충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슈렉이 구해줄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이후 정치적 각성을 통해 "강한" 모습을 유감 없이 보여준 이후에도(매트리스 패러디 부분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유독 "사랑"에 관한 부분에서는 한없이 수동적입니다. 슈렉이 좋으면 스스로 잡아 끌 일이지, 왜 기다리는 걸까요? 결국 사랑에 관한 최종적 선택권은 피오나 공주에게는 없었던 겁니다.

  (이 점에서 저는 「엽기적인 그녀」가 더 좋습니다. ^^;)

  예쁘다는 말 한마디에 혹해 버리다 - 당나귀에 반해버린 용

  정확한 이유야 어찌되었던, 용은 피오나 공주를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기사들이 용 앞에서 죽어나갔습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용을 "말 한마디"로 제압한 녀석이 있었으니, 바로 당나귀 덩키입니다.

  진심 어린 말도 아니었지요. 그냥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해보기 위해 예쁘다는 말 한마디 던진 것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버립니다. 아니, 무슨 놈의 용이 그렇게 지조가 없는 겁니까. --;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이 지키던 성마저 버리고 "사랑을 찾아" 덩키가 사는 곳까지 쫓아옵니다. 커다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이죠. "여성의 일과 사랑"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 아닙니까? 자신을 예쁘다고 말해주는 단 한 명의 남자를 위해(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일과 사는 곳을 버리고, 무작정 남자를 쫓아 나서는 분홍색 용.

  아… 정말 암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도 「슈렉」에 대해서는 많은 말과 글들이 나와서, 똑같은 내용의 글을 또 하나 추가한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아무튼, 외모 - 그것도 정확히는 얼굴에 대한 부분은 정치적으로 공정할지 몰라도, 그 외의 부분에서는 여전히 사회적 편견을 넘지 못하는 「슈렉」을 보며, 그 정도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참 슬펐습니다. 재미는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