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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4-30, 14:00:32 에 eesti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자, 따라해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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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동생은 '신기한 국어나라'의 방문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반나절에 예닐곱 집을 돈다는 것이 워낙 빡빡한지라 음식을 내오는 어머니들이 있어도 대개는 사양을 하고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짬이 좀 나서 아이의 어머니께서 준비해 주신 음식을 들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음식이 좀 짜다 싶었는데 아이가 대뜸, "엄마, 이거 쓰다." 하더랍니다. 아이는 "짜다"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자 아이의 어머니께서 친절하게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답니다. "자, 따라해본나." 이어서 어머니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쓰다가 아이고, 짭다!"
경상도 사투리를 가지고 말장난하는 저의를 의심하지는 마세요. 저는 그러니까 "깽깽이"가 아니라 "문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 그 어머니의 명언을 전해듣고는 방바닥을 떼굴떼굴 굴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어머니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 어머니의 사전에는 "짭다"라는 표제어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위의 이야기를 읽고 웃으셨다면 그것은 아마 "짭다"라는 단어를 당신의 품위있는 사전에선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므로 그 어머니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위선이 없습니다.
1987년 6월 29일, 노태우의 6·29 선언을 기억하시나요? 서슬 퍼런 보도지침의 그 시절, 노태우는 언론 탄압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고 있지도 않다" 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지난 두어 달 사이 한나라당의 사전엔 "언론자유"와 "민주주의"가 가장 자주 쓰이는 어휘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미 중의 백미는 부평에서의 경찰 폭력 진압 장면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적신 한나라당 소속 어느 국회의원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면 꼭 영화 <레옹>이 떠올라요. 스탠필드 형사(게리 올드만)가 베토벤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마틸다의 가족을 몰살하는 장면 말이죠. 베토벤과 살인이라는 두 이질적 소재가 이루는 조화 혹은 부조화가 그 장면을 그토록 소름돋게 만드는 것이었겠죠. 이어서 떠올라요. 세계 언론사에 길이 남을 언론 학살의 주인공 전두환 노태우의 얼굴, 선거 직전 판문점에서 한 편의 총격 씬을 구상하던 얼굴, 그리고 96년 여름 연세대에서 무자비하게 짓밟히던 학생들의 얼굴, 얼굴들.
오늘 뉴스에서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태인 수용소에서 세 명의 유태인을 사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60 여년 전의 독일군 병사가 오늘 너무나 안쓰러운 모습의 노인이 되어 재판을 받는 장면이 비쳐졌습니다. 역사의 심판과 단죄가 너무나 간편하게 정치보복으로 둔갑하고, 독재의 똥개들이 하루아침에 민주투사로 변모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 뉴스는 그야말로 먼나라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나라 같은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그러나 있는, 먼나라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됩니다. 일제 치하, 그리고 길고 긴 독재의 시절, 당당한 주류로 활약하며 권력의 똥구멍을 핥던 이들이 이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김대중 정권의 음모에 굳세게 맞서고 있습니다. 영화가 아니므로 그들의 얼굴에는 게리 올드만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섬뜩하고 비장한 미소가 번집니다.
이곳은 독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에겐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입니다. 조선일보와 그의 후견인 혹은 보호자들이 짠 음식을 "짭다"고 하는 건 좋습니다. 위선이나 거짓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제발 짠 음식을 달다거나 혹은 시다거나 혹은 맵다고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박하지 않다고요?
그나저나 과연 그들에게 미각은 남아 있나요? 없을 것 같다고요? 그렇다면 역사의식은, 아니 그냥 최소한의 양심 같은 거라도 ... 아니면 체면이라든가 ... 그도 아니면 겸연쩍음 같은 거라도 ... 다 집어치우고, 각자들 집에 돌아가서 아비 노릇하는 최소한의 인간성이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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