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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4-30, 13:59:49 에 eesti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모든 노동자, 모든 아버지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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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세가 예순 일곱이신 저의 아버지는 반평생 시내버스와 관광버스, 그리고 렌트카 회사를 다니셨고 지금도 "용돈 버는 셈" 치고 운전을 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을 "Old good days"로 생각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병을 얻어 시내버스 회사를 그만두시고 -쫓겨나시고- 수년이 지나 그때는 관광버스를 운전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경동시장에 외식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날 이후로 두 번 다시 입에 대지 않은 도가니탕이라는 끔찍한 음식을 억지로 먹고 시장 골목을 빠져나올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마주 오는, 당신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사내에게 굽신 인사를 하셨습니다. "어이쿠, 조합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버지께서 예전에 다니시던 회사의 "조합장님"에게 그토록 굽신대는 모습이 싫었습니다. 여하튼 저는 완곡하게나마 진짜 노동조합이란 무엇이고 진짜 노조위원장-"조합장님"이 아니고-과 진짜 노동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아버지께 일장연설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무렵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에서 이종환은 손님들의 팁에 기생하는 관광버스 기사들의 파렴치함을 Hey Jude와 The saddest thing 사이에 양념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조간신문 배달원의 월급 두 배를 넘지 못하는 기형적인 임금 체계를 강요하는 관광버스 회사 사주들의 파렴치함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품위 없는 일을 저지르고 미국으로 줄행랑을 친 이종환의 파렴치함도 생각했습니다.)
엊그제 TV에서 대구 시내버스 노사의 임금협상이 타결되고 노사 대표가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저는 오래 전 경동시장 골목을 떠올렸습니다. 높으신 분들을 뵈올 때면 언제나 그렇게 하듯, TV 화면에 비친 노조 대표는 악수를 나누는 오른손 밑에 왼손을 가져다댈까 말까 엉거주춤하고 있었습니다. "동지"들 앞에서 더할 수 없이 의연했을 그가 사용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대우자동차 노조원들에게 가해진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이 TV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비쳐지던 날, 뉴스를 보시던 아버지께서는 "미친놈들." 한마디 내뱉으시며 묵묵히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셨습니다. 여쭙지는 못했지만 궁금했습니다. 경찰을 두고 하신 말씀일까, 아니면 노동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일까? 전자의 경우라면 아버지는 이제 노동의 황혼에 극적인 각성을 하신 것이고, 후자의 경우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으신 것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쫓아내면 나오고, 시키는 대로 하고, 파업은 빨갱이들이 하는 짓이라 생각하고, 노조위원장을 "조합장님"으로 떠받들고, 사용자를 파트너가 아니라 마땅히 윗분으로 모시는 것이 몸에 밴 아버지는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는 못 되십니다. 그러나 평생을 운수 노동자로 일해 오시면서 자식 넷을 공부시키시고,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일할 힘이 있으므로 일하신다는 아버지는, 의식화되지 못한 것이 죄라면 죄인 진짜 노동자이십니다.
내일은 노동절입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면 어버이날입니다. 대우 자동차 노조원들, 우리 아버지, 그리고 우리 모든 아버지들이 진짜 노동자이며 좋은 아버지로서 저마다 작은 소원 하나씩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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