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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8-28, 23:54:30 에 icaruskj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여자친구, 남자친구, 애인,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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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영어권 사람들과 펜팔을
하려는 학생들에게 하셨던 주의가 떠오른다.
" 행여 이성(異性)의 인물과 펜팔을 하게 되면, 섣불리 상대를
' 여자친구 (girlfriend) ' 라 부르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관계가 불편해 지거나 절교되는 일화가 많은 이유는,
영어에서의 그러한 표현은 여성인 친구가 아니라 곧 사랑하는 사람,
애인을 뜻하기 때문이다 " 라는 말씀이.
우리말에서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라는 낱말은 본디
친구의 성별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 쓰였을 뿐
' 이성교제 ' 를 뜻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쓰임새가 넓어졌고 오히려 영어식 표현대로
' 사랑하는 사이 ' 라는 어감이 더욱 강해져 버렸다.
사람끼리의 어울림 그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엄격히 구분되던
그래서 더 마음 한편에 호기심이 일렁이던 그 시절 친구라는 낱말 앞에
이성을 의미하는 ' 남자 ' 혹은 ' 여자 ' 라는 관형어가 한 짝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 ' 순수했던 시절의 야릇한 설렘 '을 뜻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그저 친구라고 하는 수줍음을 담아내기도 했다.
그래도 사전적인 의미는 여성인 혹은 남성인 친구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말에서도
' 서로 사귀는 사이 ' 임을 명확히 밝히는 의미로도 넓혀졌다.
아니 그 뜻으로 더욱 자주 쓰인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하나 없으면 숙맥 ' 이라고 한다는
대량소비, 일회용 시대의 ' 가벼움 '을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중한 사랑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이
' 쑥스러운 가슴 설렘 ' 에서 ' 노골적이지만 부담 없는 가벼움 '으로
어느덧 옮겨진 것은 아닐까?
외국어 번역체 표현이 우리말의 모습을 바꾸어 온 것과
시류(時流)의 ' 궤 '를 같이 하면서 말이다.
물론 ' 남녀칠세부동석 ' 이나
' 첫날밤이 되어서야 겨우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는 식의
유교적 성도덕을 숭상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어인 일인지 소중한 것을 잃어 가는 것만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 애인(愛人) '이라는 우리식 한자어는 말 그대로 ' 사랑하는 사람 '을 뜻했다.
그런데 이 ' 사랑하는 사람 '을 뜻하는 낱말이 언제부터인가
' 불륜 '이나 ' 육체적 교감 '에만 머무르는 어감을 담기도 하며
왠지 거북스럽고 느끼한 표현이 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 사랑하는 사람 ' 그러하기에 ' 소중한 사람 ' 임을 나타내는 그 자리를
어느덧 ' 연인(戀人) ' 이라는 일본식 한자표현이 대신하기 시작하였다.
번역체 표현이 우리말의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또한 출판,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문화 엘리트들의 책임의식을 또다시 강조하면서
' 사랑에 대한 태도가 바뀌면서도 이를 속이려는 우리들 사이의
자기기만은 아닌가? ' 하는 지나치게 예민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언젠가 나에게 혈족(血族)이나 친구가 아닌 또 다른 유형의
' 소중한 사람 ' 이 생긴다면, 아직 ' 사랑하는 사람 ' 이라는 말뜻을 지키고 있는 한,
그 님을 ' 애인 ' 이라 부를 것이다.
여자친구나 연인이 아닌 애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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