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노하우 사이버보좌관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뉴스트림을 찾아 간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새 희망을 찾고 새로운 세력의 당당한 자기 목소리를 들어본다.그 첫 인물로 조선반대시민연대 활동을 활발히 벌이는 시인이자 상지대 부교수인 김정란 교수를 자택에서 만났다. (2001. 04. 24)

▶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김정란
▶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가족 그리고 일일 감옥 체험
▶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시 그리고 문단권력
▶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안티 조선 운동
▶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정치인 노무현
▶ 새 희망을 기다리며
▶ 거대한 거짓말의 벽을 두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내미는 진보성의 위선을 의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문단에서 소외된 지 오래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도 여과없이 그 말을 수용했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나의 물음표는 이때 등장하지 않았다. 사회적 위치로 보자면 적어도 그는 주류계층을 따라 부유할 수 있는 쁘띠부르조아였다.

어쩌면 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서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람의 가장 불우한 모습과 그 사람의 가장 어두운 목소리로 그를 판단하고 간접적으로 가학적 악의를 드러내며 자기 자신의 결함을 합리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정란 교수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나는 김정란에 관한 이런저런 평에 귀기울이는 대신 가능한 한 그가 쓴 글을 많이 읽으려 애썼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그의 속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김정란

"유약했던 어린 시절. 늘 힘센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살았다. 비겁했고, 늘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자기완결성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사춘기 시절 문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면서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반항심이 깨어났다.

...그리고 90년대 말, 나는 발언하기 시작했다. 전선을 설정하기 어려운 미시 권력과의 힘겹고 위험한 싸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말하면서도 집단의 일원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문화 권력자들의 속내 드러내기. 이 길은 어디로 나있는 것일까?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길은 외길인 듯하다.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아웃사이더)

▶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가족 그리고 일일 감옥 체험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그의 가족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활동과 관련되어있는 그의 글 [어미](한겨레 21) 이야기를 슬며시 내밀었다. 그 글에서 그는 매우 강한 모성적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남편은 방송통신대학교 불문과 교수예요. 큰 아이는 서울대 4학년이고, 작은 아이는 두레고등학교 2학년. 두레 고등학교 아시죠? 대안학교지요. 둘째가 기존 교육 시스템을 잘 못견뎌 했거든요. 내가 가족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이유는, 제가 지식인으로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지식인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가족 이데올로기에 얽매여서는 안되죠. 대중 앞에 나서서 말하게 된다고 해서 자신의 가족을 뭉뚱그려 신비화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가족 이데올로기는 순기능도 있지만 가문을 중시한다거나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역기능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의 가족 이야기는 어느새 일일 감옥 체험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음...[어미] 얘기를 하셔서 말인데... 그 글이 아주 사나운 [어미]의 입장에서 쓰여졌거든요. 의문사를 당한 어미들의 마음은 어떨까. 저는 도저히 그분들이 마음에 이를 수 없지요. 그러나 두 아들의 어미로서 짐작해 볼 수는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명동성당 앞에서 했던 일일감옥 체험이 생각나네요. 처음에는 일일감옥 체험이 이벤트의 성격이 강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망설였어요.. 하루 동안 그 체험을 흉내내어 본다고 내가 갇혀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는가, 라는 의심이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그것을 일종의 생을 담보로 한 연극 체험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응했어요. 현실에 가장 가까이 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연극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거지요.

 그런데, 그곳에 나오신 어머니들을 뵙고, 내 마음이 그분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어요. 어머니들의 마음이 너무나 잘 느껴졌어요. 직접 체험을 하니까 그 분들의 감정을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고 국가 보안법에 대해서도 훨씬더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어요. 나중에 내가 우니까 어머니들이 손수건을 주셨어요. 그걸 징표로 삼고 싶어서 내가 일부러 돌려 드리지 않았어요. 어머니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싶었거든요. "

▶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시 그리고 문단권력

 내 시를 두고 <귀족의 언어>로 쓰여졌다고 못마땅해 하는 평자가 있기도 하지만 저는  사실은 언어의 빈민입니다. 제 말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의 말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아무런 힘도 없는 소수자의 목소리라는 것이지요. 가끔 별로 문학적 교육도 받지 못한 여성들 중에 내 시를 어떤 평론가보다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해하는 분이 계세요. 오랫동안 자신들의 영혼을 들여다본 분들이지요."

 - 문단에서 '마녀교의 종정'이라고 불린다는데...

  "제가 문단에서 미움받은 지는 오래 됐어요. 남성들이 뽑아준 작가를 추인하지 않고 내가 나의 주체적 문학관에 의거해서 작가들을 발굴하고 비평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해 왔거든요. 그때부터 마녀라는 소리를 하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는 문단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말을 이어갔다.

 "문학이라는 건 '잠수함의 토끼' 같은 존재입니다. 잠수함 내의 공기가 안 좋아지면 토끼가 제일 먼저 반응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토끼를 데리고 잠수함에 탄다고 해요. 모든 것이 다 타락을 한다고 할지라도 문학만은 순수의 바로미터로 남아 있어야 해요.

저는 70-80년대 상황에서 '문학과 지성사'와 '창작과 비평사'라는 양대 문학 진영이 사회와 대항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확보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점을 높이 평가하고, 그 점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경의를 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7-80년대에 쌓아올린 정당성을 권력으로 포장하고, 그 결과를 민주적으로 확대했어야 할 시점을 놓치고 이 사람들이 정당처럼 붕당화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문학적 가치보다는 그 집단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문학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더욱이 90년대 들어와서 문학이 상업주의에 침윤당하면서 더 나쁜 현상이 생겨난 거죠. 저는 지금 우리 사회는 심층 근대성을 구현하는 문학이 등장해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 동영상 보기 】

▶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안티조선운동

80년대 프랑스에 유학을 갔을 때만 해도 나는 정치적으로 개안되지 않은 상태였고 삶을 낭만적, 관념적으로 파악하고 있었어요. 당시에도 저항적인 멘탈리티는 있었지만, 당시에 저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상지대학교 문제로 학교와 싸움을 하면서 내가 움직이는 만큼 역사는 변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 나는 권력이라는 것이 이제는 정치적 거시 권력이 아니라, 문화권력의 미시 권력 층위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강 교수의 작업을 보면서 바로 이거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분이 제시하는 방식이 효율적이고 옳은 방식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혼자 싸우게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치 않게 [조선일보를 아십니까?](개마고원) 원고청탁을 받게 되었고, 원고를 집필하면서 반조선일보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지요. "

- 왜 안티 '조선일보'인가?

"많은 사람들이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도 (문제가) 있는데 왜 조선일보만 가지고 그러냐고 오해를 해요. 그게 아니라 조선일보를 특히 가지고 그러는 거죠. 왜냐하면 가장 문제가 많고 가장 영향력이 크고 그리고 다른 신문에 비해 너무나 뻔뻔스러워요.

저는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 3가지 정도로 나누어서 판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거짓말의 역사를 청산하는 문제예요. 두번째는 멘탈리티의 문제입니다. 조선일보는 어떤 올바름을 위해 투신하는 삶을 비웃게 만들고 결과주의적이고 성공지향주의적인 기회주의 이데올로기를 퍼뜨리는 신문이죠. 그 다음에는 냉전극복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이 문제는 단순히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상은 옛날처럼 딱딱한 구획 방식이 아니라 아주 부드러운 구획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그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죠. 그런데 조선일보는 냉전주의적인 퇴행적 전근대적 사고 방식을 부추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문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정란 교수는 안티조선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가슴 속에 푹푹 썩는 젓갈 단지 하나 담아두고 있다며 "5년 걸릴 일이 내가 애써서 4년 364일 걸린다면 계속 언론개혁 운동을 위해 애쓰겠다"고 덧붙였다.
【 동영상 보기 】 

▶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정치인 노무현

"제가 생각하기에 노무현 고문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고문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자질을 어떻게 발휘할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가 있구요. 그리고 노무현 고문의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이나 청문회 스타로서의 이미지보다는 구체적으로 한국사회를 이끌고 나갈 정책적 대안이라는 걸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정치인을 흉내내지 말고 참신한 이미지로 승부했으면 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도 바로 그렇구요."
【 동영상 보기 】 

▶ 새 희망을 기다리며

김정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 대한 오해를 조금씩 걷어 냈다. 그의 진실성을 의심했던 것은 매스컴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에서 비롯된 노파심이었던 것이다. 그는 소박하고 진실했다. 김정란 교수가 자신의 계층적 한계를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는 것, 그것이 그로 하여금 사회를 향해 힘찬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기준점을 가지고 쫙 펼쳐지는 줄부채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는 시인, 문학 평론가 그리고 시사평론가라는 다면적인 모습을 가진 포스트모던한 존재이지만 그 중심에 '홀로/함께 살고자 하는 좋은 인간'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김정란 교수가 건네준 그의 시집 [스.타.카.토 내 영혼]을 펼쳐보았다. 첫 장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새 희망을 기다리며" 그의 말처럼 현재 우리 사회는 새 희망이 절실하다.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문인인 김정란 교수가 뉴스트림의 한 사람으로서 '새 희망'을 펼치기를 기대해 본다.

글 / 노하우 사이버보좌관 sweetmoge
사진 / 노하우 사이버보좌관 leehow70
*김교수의 일인시위 사진의 출처는 안티조선시민연대 사이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