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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1-03, 13:07:37 에 youall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기타] 네티즌이 대선을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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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21]
TV토론 뛰어넘는 인터넷의 쌍방향성, 정치권에 강력한 위협이 될 것인가
오지랖 넓은 게 네티즌들이다. 요즘 세상에 이만한 간섭꾼도 다시 없다. 끼어들어 나대지 않는 곳이 없다. 어디로 튈지도 알 수 없다. 도무지 삼강오륜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가는 곳마다 기존 질서를 흔들어놓는다. 점잖은 축의 눈에는 인터넷이라는 신식 장난감을 갖고 노는 철부지쯤으로밖에 안 비칠지 모른다. 그런데 이 악동들이 2002년 대통령선거를 ‘접수’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사이버 예비선거, 어떻게 할 것인가?
낯익은 선거만 치러온 부류에게는 성가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성가시다고만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칠지 모른다. 정치권에 아주 현실적인 위협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수롭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공존한다. 그러나 골리앗을 쓰러뜨린 건 다윗의 손에 들려 있던 작은 돌멩이였다. 지역감정으로 중무장한 기성 정치권이 인터넷을 쥔 네티즌들 앞에 무릎꿇지 말라는 법도 없다.
‘www.○○.or.kr.’ 대학생 ㄱ씨는 ○○당의 대통령후보 사이버 예비경선 사이트에 들어간다. 후보자들 얼굴사진을 클릭한다. 저마다 정견과 공약을 담은 홍보물이 가득하다. 이번엔 토론방송으로 들어가 후보들끼리 벌이는 격론을 지켜본다. 그리고 예비경선 유권자 신청란에 클릭. 인적사항과 아이디, 패스워드를 입력한다. 일주일 뒤 ○○당에서 선거인단에 선정됐다는 이메일이 날아온다. 정해진 날짜에 다시 사이트를 찾아들어가 마음에 둔 후보를 클릭한다. 오후 6시 투표 마감. 불과 2분 뒤 결과가 발표된다.
가상 상황이다. 그러나 공허한 공상만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 12월12일 민주당 개혁파 모임인 ‘쇄신연대’의 공청회에서 허운나 의원이 제안한 내용이다. 이날 공청회 주제는 ‘사이버 예비선거,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공청회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현행 정당법도 걸림돌로 지적됐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모임에서 제안되고 토론이 이뤄질 만큼, 사이버선거는 하나의 유력한 개연성, 있을 법한 얘기로 떠오르고 있다.
낯선 선거가 다가온다. 인터넷은 우리의 선거환경을 낯선 세계로 이끄는 핵심 에너지다. 선거캠페인 매니지먼트 전문업체인 ‘이윈컴’ 김능구 대표는 “다가오는 대선은 인터넷 캠페인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인터넷 인구 2500만명, 초고속통신망 설치가구 700만 가구…. 세계 1위를 달리는 인터넷 기반으로만 볼 때, 이제 네티즌은 가장 규모가 큰 인구통계학적 무리(군)로 자리잡았다. 김 대표는 “사이버 공간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네티즌은 가상의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의견과 반응은 곧 현실이다”라고 못박았다.
현실 정치인들에게는 인터넷이 가져올 선거환경의 변화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먼저 다가온다. 국회의원들의 연구모임인 ‘가상정보가치연구회’는 지난 12월7일 전문가들과 함께 포럼을 열어 ‘인터넷 캠페인 활성화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에서는 인터넷 캠페인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전망이 엇갈렸다. 일부 정치인의 네티즌에 대한 심사는 복잡해 보였다. 뭔가 와글와글하는 현실적 힘은 인정하겠는데,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분위기도 엿보였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달리 전문가들의 전망은 훨씬 명쾌했다. 인터넷에 의한 정치환경의 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변화의 폭발력이 매우 크고 강력할 거라는 데에도 이견이 없었다. 다만 지금은 폭발적인 에너지가 억눌려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억누르는 힘은 인터넷 자체나 네티즌이 아니라, 인터넷 캠페인을 제약하는 선거관련법과 뒤떨어진 정치문화, 정치인들의 인식과 의지 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었다.
제시 벤추라의 눈부신 성공사례
정치인들이 인터넷을 마냥 외면하는 건 아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평가한 2000년 말 국회의원 홈페이지 보유현황은 59%에 그쳤고, 내용도 부실했다. 그러나 1년 만에 디자인, 편리성, 정보전달 기능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쏟는 정성은 남다르다. 나름대로 다양한 콘텐츠와 이벤트를 만들어 올리고 있다. 앉아서 방문자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방식을 벗어나 이메일을 이용한 적극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성과는 적지만, 인터넷 정치자금 모금도 벌인다.
몇몇 대선주자들은 온라인에서 팬클럽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선두주자는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이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에는 현재 1만명 안팎의 사이버 후원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회원 수 목표를 10만명으로 잡고 있다. 한화갑 민주당 상임고문도 ‘한화갑과 함께 하는 사람들’(한사람)을 운영한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도 최근 ‘창사랑’이라는 모임을 꾸리기 시작했다.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도 팬클럽인 GT클럽 "희망" 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대선주자들도 인터넷 캠페인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은 눈치다. “가장 중요한 홍보전략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값도 싸면서 대규모로 할 수 있는 홍보가 인터넷이다. 그러나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 대선주자 진영의 인터넷 홍보 담당자는 “네티즌이 정치 무관심층이어서 그들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올지 자신이 없다”며 “전례가 없는 홍보방법이어서 전략도 막연하고 예측도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엉거주춤한 자세에 견줘보면, 외국에서 이뤄지는 인터넷 캠페인의 성공사례는 더욱 눈부시다. 지난 98년 미네소타 주지사로 당선된 프로레슬러 출신 제시 벤추라는 정당이나 공식 선거조직 없이 유명세와 인터넷 하나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메일을 통한 정책홍보와 온라인 자원봉사자 덕이었다. 또 2000년 대선 공화당 예비선거에서는 존 매케인 후보가 돌풍을 일으켰다. 인터넷으로 640만달러를 모금하고 자원봉사자 142만명을 모집한 그는 몇개 주에서 부시를 눌러 자신의 존재를 성공적으로 알렸다.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지난 6월부터 주 1회씩 이메일 매거진을 발간하고 있다. 그의 이메일 매거진은 첫 발간 보름 만에 100만명이 구독을 신청해 최단기간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 9월에는 이미 200만명이 넘는 네티즌이 수신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수신인의 규모보다는 섹스나 스포츠가 아닌 정치를 주제로 한 콘텐츠가 이처럼 관심을 끄는 것에서 인터넷 캠페인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메일에 매우 솔직한 화법으로 자신의 심경을 담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열악한 전자정치 소프트웨어 구축실태
우리나라에서 아직 뚜렷한 캠페인 성공사례가 나오지 못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직 한번도 제대로 된 인터넷 캠페인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캠페인에 필요한 노하우도 취약하다. 정치정보제공사이트 ‘PIB코리아’의 임재식 대표는 “세계 1위의 인터넷 이용률에 비해 우리의 전자정치를 위한 소프트웨어 구축은 이란, 페루와 수준이 비슷한 세계 50위권인 것으로 조사됐다”며 “선거법 정비, 정치인들의 의식 변화,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정치과정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고 진단했다. 인터넷이 올해 선거의 주요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런 현실인식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인터넷을 주요 변수로 꼽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근거를 찾는 것일까. “97년 대선에서는 주로 피시통신을 통한 캠페인이 부분적으로 이뤄졌다. 그런데도 방송 캠페인과 맞물려 유세비용이 크게 줄어들었다. 올해 대선에서는 인터넷 등을 이용한 홍보 비율이 50% 가까이 올라갈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폴앤폴’ 조용휴 대표는 정치권에서의 변화 가능성을 내다봤다. 3김처럼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재래식 조직선거의 여지가 줄어든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변화의 진원지는 따로 있다. “변화는 정치권이 아니라 네티즌들이 주도할 것이다.” 이윈컴 김능구 대표는 “미국에서는 인터넷이 주로 정치자금을 모금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수단으로 쓰인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후보검증 수단으로 쓰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네티즌과 인터넷, 그리고 정치의 결합은 행복하다. 이런 궁합을 가능하게 하는 건 무엇보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이다.
그동안 유권자들이 정치인과 만날 수 있었던 가장 유력한 대중매체는 TV였다. 그나마 지난 97년 대선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TV토론은 시간과 횟수, 시청자 참여가 극히 제한된 일방향성, 일회성에 그쳤다. 후보들에 대한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후보자와 네티즌간 토론, 후보자간 쌍방향 토론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후보자의 실체가 여과없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악랄하게!”
물론 후보들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네티즌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투표율도 낮다”라는 통설도 과학적으로 검증됐다기보다는 정치인들의 기대섞인 전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한 것과 크게 다르다. 일단 네티즌의 주력부대인 20∼30대의 젊은 층은 지난 대선 전체 투표자의 50%를 넘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투표율은 40대 이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을지 모르지만, 70%를 웃돈다. 여기에다 선거권을 받는 나이가 19살로 낮아진다면 네티즌의 비중은 더 높아질 것이다.
네티즌의 힘이 수치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네티즌은 다르다. 그들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네티즌은 기다리기보다는 찾아들어가고, 찾아들어가기보다는 불러낸다. 그럴 경우 칼자루는 그들이 쥔다. 이윈컴 김 대표는 “대선기간 동안 네티즌들의 활동무대는 후보들의 홈페이지가 아니라 포털사이트나 웹진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지난해 10월 포털사이트인 ‘다음’에서 일주일 동안 ‘내가 바라는 21세기 첫 대통령’이라는 기획특집을 했는데 50만명이 다녀가고 5만명이 투표했다”고 소개했다.
네티즌들은 몰려다닌다. 이슈가 터지면 몰려가 쑥밭을 만든다. 지난해 국회의원들을 줄줄이 낙선시킨 총선시민연대 활동의 주무대도 인터넷이었고, 386 신인 정치인들의 광주 술판사건을 폭발시킨 것도 네티즌들이었다. 그러나 태풍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도 오산이다. 네티즌의 안티조선 모임 ‘우리모두’의 표어는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악랄하게… 또박또박…’이다. 네티즌은 집요하고 끈질기다. 마니아도 많다.
‘포청천’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임아무개(43)씨는 1년여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면 눈을 떠 주요 일간지 사이트에서 만평부터 살핀다. 그런 다음 만평과 4컷만화들을 모아 230개 사이트에 ‘일반찌라시와 조폭찌라시들의 만평비교!’라는 제목의 비평글을 올린다. 임씨는 “사이트를 돌아다니다보면 보편적 가치관을 따르는 네티즌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느낀다”며 “지역문제에 광분하는 특정부류나 이해관계가 있는 그룹들을 빼면 건전한 상식이 대세를 이룬다”고 말했다. 임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평범한’ 네티즌이다.
‘오마이뉴스’의 ‘오마이파워!’
이런 네티즌들이 단순한 여론형성 구실을 뛰어넘어 정치세력으로 그룹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함은 머지않아 풀릴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연중캠페인 ‘오마이파워!’를 준비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본격적인 힘을 가지고 선거과정에 직접 개입하자는 취지로 후보선출, 선거운동, 선거과정에 대한 감시를 아우르는 활동을 벌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는 “올해는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치에 대한 생각을 갖고 후보도 결정하는 본격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네티즌 20만∼30만명이 그룹화한다면 대선의 당락을 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나 2002년 대선은 네티즌과 인터넷으로 인해 아주 낯선, 새로운 선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낡은 정치와 선거를 고집하는 후보에게는 위기일 것이고, 새로운 정치와 선거를 추구하는 후보에게는 기회일 것이다. 당신은 지금 떨고 있는가, 아니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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