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성 함께 쓰기를 감히 비판하다

  요즘 들어 부모성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4자의 이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처음의 부정적인 반응이 많이 누그러진 듯 합니다. 이를테면 "쓸 사람들은 써라"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페미니즘적인 성향을 가진 이가 3자의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의아하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저도 부모성 함께 쓰기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의 고민 끝에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부모성 함께 쓰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긍정적 가치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에게는 허점투성이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개인 신상 정보의 공개 - 정상적인 가정에게만 이상적인 부모성 함께 쓰기

  성이 이름 앞에 반드시 붙게 됨으로써 불필요하게 개인의 신상이 공개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엄마와 자녀의 성이 같을 경우, 아빠와 자녀의 성이 다를 경우, 형제자매끼리 성이 다를 경우, 일반적으로 "의심"을 해 보게 되겠죠. 단지 아빠의 성과 이름만 가지고도 이렇게나 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셈입니다.

  부모성을 함께 사용하게 된다면? 이제 경우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납니다. 엄마와 자녀의 성이 다를 경우, 형제자매의 모의 성이 다를 경우가 여기에 포함이 되어버립니다. 기존의 케이스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복형제의 경우가 주로 해당이 되는 셈입니다.

  지금처럼 아버지의 성만을 따를 경우 아버지의 성과 자식들의 성이 같기만 하면, 외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던 것이, 부모의 성을 함께 쓰게 됨으로써 아주 골치 아픈 지경에 빠질 우려가 생기는 겁니다.

  부모성 함께 쓰기의 첫 번째 맹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발상은 지극히 "정상적인" 가정의 경우에만 이상적인 케이스라는 겁니다. 이혼과 재혼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형제자매라 해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부모성 함께 쓰기는 이러한 가정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 때문에 결혼할 수 없어요 - 강씨가 간씨를 만났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결정이 된 사실입니다. 그 사실 때문에 내 이름 중 2자가 이미 결정이 되어버립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이 2자로 구성되니까, 성까지 합해서 보통 4자가 됩니다. 4자의 이름 중 2자가 이미 "출생 당시부터" 결정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이름 중에서 절반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는 것. 이것이 초래할 부정적인 영향은 의외로 큽니다.

  유머란에 가끔씩 올라오는 내용 중에, 좋은 이름인데 성을 붙이면 이상한 연상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들을 정리한 글들이 있죠. (주로 박씨에 많더군요. --;) 부모성을 함께 쓰면 이러한 케이스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제 단지 성과 이름의 조화만이 아니라, 성과 성의 조화도 고려해야 한다는 끔찍한 사실입니다. 그동안 많이 지적되어 온 부분이니까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지는 않겠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강씨와 간씨가 결혼을 했을 때군요. --;)

  이건 거의 폭력 수준입니다. 동성동본의 결혼을 막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폭력입니다.

  부모성 함께 쓰기는 페미니즘의 대명사?

  그러나, 제가 부모성 함께 쓰기를 거부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몇 가지 허점 때문들이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제가 비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보사에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신문사에서는 매주 월요일 신문을 발행합니다. 월요일에 리뷰 회의라는 것을 하는데, 이번에 나온 신문을 두고 "무시무시한 철퇴"가 내려지는 시간입니다.

저희 학교의 모 교수님께서 올해 미스코리아 대회의 심사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그 학과 학생들의 반응을 스케치한 기사를 저희 신문에서 다뤘습니다. 이 때, 학생 2명의 멘트를 땄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부모성 함께 쓰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이러한 평가가 나왔습니다. "멘트를 딴 사람 모두 부모성을 같이 사용한 이름이 신문에 실렸다. 이를 본 독자들은 대부분, '아 여성운동하는 애들의 얘기구나'하고 생각할 것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학생들의 반응을 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의 멘트만을 땀으로써 편파적으로 기사가 작성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들게 한다."

  글 맨 처음에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페미니즘적인 성향을 가진 이가 3자의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의아하기까지 할 정도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수준은 여기를 넘지 않을 겁니다. 아직까지는 "부모성 함께 쓰기"는 페미니즘의 대명사입니다.

  부모성 함께 쓰기 하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커밍 아웃을 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고 봅니다. "나는 페미니스트야". 

  사람이라는 동물이 묘해서, 이성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 큰 폐해 중의 하나가 "선입관"이라는 거겠죠. 그 사람의 말하는 내용보다는 그 사람 자체를 보고 평가하는 경향.물론, 잘못된 판단입니다. 정말로 정당한 행위는 그 부당함을 알려내는 것이라는데 이의제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마초주의자를 싫어할 뿐이지,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상당부분 동의할 수는 있습니다. 그에 동조하는 발언을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의 행동도 할 용의가 있습니다.

  덧붙임 - 姓은 고정불변의 개념인가?

  호주제와 부계중심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부모성 함께 쓰기가 의미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긍합니다. 같은 목적이라면, 차라리 저는 지금의 제도보다는 일본식의 가족동성제나, 자녀가 부모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그래도 여자가 결혼해도 자기의 성을 지킬 수 있지 않느냐"면서 고개들을 많이 내젓는데 말이죠. 부부동성제, 혹은 가족동성제가 우리나라의 제도보다 후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처럼 "성씨", "가문"에 대한 집착이 강한 전통에서, 가족 중 유일하게 엄마만이 다른 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어쨌거나 하나의 가족, 하나의 가문을 이룬 집단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부부동성제, 가족동성제의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가족동성제는 가족이 동성이어야 한다고 규정할 뿐, 반드시 아내가 남편의 성을, 자식이 부의 성을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이 정도의 가족동성제라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혼해도 자식이 전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습니까?

  아니면, 유림님들께서 그렇게 좋아하시는 "전통"과 "역사적 맥락"도 있는 제도, 즉 자식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줄 수도 있게 하던가요. (김수로왕이 자식들 중 3명에게 허왕후의 성을 물려주었다는 얘기는 다 아실 듯.)

  아무튼, 요지는 "姓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사고"하는 것을 버렸으면 한다는 겁니다. 부모성 함께 쓰기는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