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문중에 갇힌 한국사회의 비극 끝장내야"

☞ "학벌타파 운동은 정치적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는 운동"
☞ "노무현 고문은 비로소 정정당당하게 할 말을 시작한 정치인"
☞ "지식인들이여, 추상적 권력에 비판의 화살을 쏘지 말라"

우리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의 사무처장 김상봉 철학박사의 말을 들으면 그것이 허상임을 깨닫게 된다.

한국 사회는 OECD에 가입한 선진국이 아니라 '18세기 외척문중정치에 좌우됐던 조선말기를 답습한 학벌 문중 사회의 연장'임이 드러난다. 한국사회는 이른바 S·K·Y(서울대·고대·연대) 출신의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법조인, 학자 등이 사회의 시스템을 지배하는 소위 'S·K·Y의 사회·여론지도층'들이 지배하는 학벌 공화국이다.

김 사무처장은 이런 낡은 학벌 문중에 갇힌 한국사회의 비극을 끝장내고, 학벌공화국을 해체하고자 나선 이단아다. 김 사무처장이 열린 철학강좌를 진행하는 인사동의 철학아카데미에서 그를 만났다. 그와 2시간 동안 학벌타파와 정치개혁, 언론개혁, 철학을 화두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담을 통해 김 사무처장은 서울대를 비롯한 메이저 대학의 학벌주의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적 불평등을 심각하게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극소수의 서울대, 연대, 고대 등 메이저 대학의 출신 정치인, 경제인, 법조인 등이 우리사회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의 문중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다수 민중은 도리어 마이너리티로 전락해 사회적 자아의 평등한 실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서울대 등이 불러온 학벌사회를 타파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위권 대학부터 대학들을 단계적으로 평준화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한 구체적 대안으로 서울대학교의 학부를 개방하고, 특정 대학 출신이 공직자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공직자 할당제를 도입하고, 수능시험을 더욱 쉽게 출제해 학생들을 입시경쟁의 압박에서 해방시켜야 함은 물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나갈 수 있도록 국가가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와 같은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김 사무처장은 정치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정치는 공공성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며 이러한 문제 역시 우리사회의 학벌체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해방 이후 한국은 서울대라는 학벌문중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IMF였을 뿐이다. 이제 서울대가 망친 이 나라의 정치, 사회, 경제를 평범한 민중의 힘으로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벌 문중의 이익을 위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뜻과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사무처장은 여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이며 언론개혁에 대한 강한 소신을 밝혀온 노무현 민주당 고문과 관련해 "노 고문이 도덕성 순수함을 바탕으로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는 깊이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탄탄히 다진다면 국민에게서 큰 신뢰와 지지를 얻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언론개혁과 관련해 "민주주의는 여론에 의한 정치이다. 그런데 여론이 왜곡되면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며 "조선일보처럼 거짓말을 일삼으며 여론을 왜곡하는 신문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악이므로 반드시 근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일침을 가했다.

그는 족벌언론이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주범의 하나라며 "언론이 특정 학벌신화를 조장하고, 입시 수능시험 위주의 교육관련 보도형태를 보이는 것은 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현재 학벌없는 사회 활동 이외에도 인사동 한빛은행 네거리에 위치한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한다. 또한 최근 민예총의 문예아카데미 교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다음은 김 사무처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했다. 

☞ "학벌타파 운동은 정치적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없애는 운동"

- 현재 하시는 일을 소개해 주십시오.

철학도 가르치고 가끔은 그리스 비극 같은 고전문학도 강의하고, 그리스어 라틴어도 가르칩니다. 그리고 제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배움을 세상에 환원하는 또 다른 통로가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이지요.

- 학벌철폐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대학교수를 그만둔 뒤에 우연히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란 시민단체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가 교육문제, 그 중에서도 학벌문제를 본격적으로 건드리게 되었지요. 한동안 <함께하는 시민행동> 내에서 활동하다가 아무래도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좋겠다고 생각해, 거기서 독립해 나와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은 어떤 단체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학벌 없는 사회,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모임입니다. 우리는 학벌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차별, 지역차별, 장애인차별, 인종차별 등 사람에 대한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합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나이, 학벌, 고향을 묻지 않고 여자와 남자, 연장자와 연소자가 대등하게 모임을 꾸려나갑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 전체가 그렇게 변화되도록 학벌문제를 공론화 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 학벌 없는 사회 운동의 사회적 의미가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운동은 첫째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한 정치 경제적 운동입니다. 우리사회에서 학벌이란 곧 사회적 신분계급입니다. 따라서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지 않고서는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을 없앨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교육을 살리는 운동입니다. 나라의 미래는 학생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학벌에 따른 불평등이 점점 더 심화되어가면서 우리나라의 보통교육은 이제 완전히 입시경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셋째는 반봉건문화운동입니다. 학벌은 현대판 문중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진보적 운동이 실패를 거듭해온 것도 이처럼 학벌주의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혈연에 의한 유대는 많이 완화되었고 지역감정에 대해서도 많은 비판이 있었으나 학벌에 따른 패거리문화가 야기하는 문화적 봉건성에 대해서는 거의 문제제기가 없었습니다.

- 정치, 사회, 경제권력의 핵심에 있는 서울대 등의 메이저 대학의 학벌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의 예를 들지요. 얼마 전에 검찰 고위직에 대한 인사가 있었습니다. 고검 차장 이상 검찰 고위간부 총 42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무려 31명, 73.8%입니다. 비단 법조계뿐만 아니라, 국회와 행정부 그리고 경제계와 학계 언론계 가릴 것 없이 우리 사회의 각종 권력은 서울대 출신에 의해 장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연대와 고대 같은 상위권 대학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불평등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울대학의 독점적 지위를 타파하고 대학들을 상위권대학부터 단계적으로 평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최근에 서울대 물리학과의 장회익 교수께서 충정 어린 제안을 하셨는데, 그것은 앞으로 10년 정도 한시적으로라도 서울대의 학부를 모두에게 개방하고 더 이상 서울대가 학부신입생을 받지도 말고 졸업생을 배출하지도 말자는 겁니다. 이를 통해 서울대의 독점적 지위를 해소하고 상위권 대학들이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 현실적으로 학벌이 짧은 기간 안에 완전히 없어지기란 어려운데요.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제도적 대안은 없을까요?

첫째로 공직자 할당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단계적으로 한 대학 출신이 정부기관이나 공직에 10% 이상 배치되지 않도록 하는 거죠. 학벌로 맺어진 집단은 파벌을 만듭니다. 여성할당제처럼 학부기준으로 몇 % 이상은 뽑으면 안 되는 것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굳이 서울법대 가려고 머릴 싸매지 않을 겁니다.  

둘째 수능시험을 보다 쉽게 출제해서 변별력을 낮추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수능에서 만점이 한 5만명만 나오게 출제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인원만큼의 대학은 저절로 평준화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시험이 쉬워지면 입시경쟁의 부담이 그만큼 완화될 것입니다.

셋째 교육영역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모든 교육의 목적이 대학입시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대학에 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에는 마이스터 제도가 있어서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자기가 원하는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대학 나오지 않고서도 잘 살 수 있도록 국가가 교육체계를 다원화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 "노무현 고문은 비로소 정정당당하게 할 말을 시작한 정치인"

- 서민들의 정치불신이 심각합니다. 정치를 깨끗한 것으로 복원해야 할텐데요.

정치의 본질은 공공성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치는 공공적이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 역시 학벌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절대 다수가 극소수의 상위권대학 출신들에 의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정치가 국민 모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극 소수 학벌문중에 의해 좌우됩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일과 뜻으로 만나고 헤어지기보다는 출신학벌에 따라 결속하게 됩니다. 그 결과 정치는 점점 더 공공성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도 학벌에 의한 권력독과점이 하루 속히 해체되어야 합니다.

- 대중을 위하는 참 용기 있는 새 정치인의 상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뜻과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 이런 정치적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려는 새로운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것은 말만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새 정치세력이 힘을 받으려면 적극적으로 이런 이념, 깃발을 들것이니 여기 모여라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 가운데 아직 이념을 말할 능력을 지닌 정치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그들대로 일과 뜻에 따라 모이려는 의지를 조금씩 보이고 있고, 정당 또한 조금씩 진보와 보수로 구별되어 가는 조짐이 보입니다. 지식인들 또한 그들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나아갈 길을 명확히 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 정치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 앞으로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민주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민주주의는 말의 정치입니다. 그런 만큼 민주적 리더십이란 말의 리더십입니다. 바람직한 정치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지역감정에 기대어 정치를 하려는 생각은 버려야겠지요.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시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할 줄 아는 것만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청하고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 여권의 대권주자의 한 사람인 노무현 고문에게 당부하는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노무현 고문은 우리 정치인 가운데에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자기의 소신을 말하기 시작한 정치인입니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치인은 참된 의미에서 용기 있는 정치가입니다. 대중에게 아첨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고 실천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는 노 고문이 앞으로도 인기가 아니라 원칙을 따르는 정치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저는 노 고문이 지혜로운 정치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 고문은 명문가, 명문대학 출신 정치인과 달리 인생의 고통과 어둠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것은 그 분의 큰 자산입니다. 저는 그 자산이 잘 다듬어져 현실적인 정치적 지혜로 꽃피게 되길 바랍니다.

저는 노 고문이 공부하는 정치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나라 대다수 정치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몸으로, 또는 발로 정치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 됩니다. 하루의 1/3은 읽고, 생각하고 배우는 일에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절대 조급하면 안 되고요. 멀리 내다 봐야 합니다.

☞ "지식인들이여, 추상적 권력에 비판의 화살을 쏘지 말라"

- 학벌 없는 사회는 공식적으로 조선일보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길(언로)을 왜곡하면 민주주의는 타락합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대중은 언론을 통해 사물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왜곡되어 있다면 나라 일에 대해 건전한 정치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이런 경우 당연히 민주주의도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바로 그런 사이비 언론입니다. 뻔뻔한 거짓말과 악의적인 선동을 일삼는 신문입니다. 우리시대의 심각한 사회악이지요. 이제는 조선일보를 끝까지 쫓아가 언론왜곡을 뿌리뽑아야 합니다. 양심적인 시민으로서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 지식인들이 수구언론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어떻게 나서야 할까요?

활발한 실명비판이 필요합니다. 강준만 교수가 대표적인 경우이고요. 한국의 지식인들은 이중적입니다. 불리하면 나서지 않죠. 그러나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지식인의 사회적 의무입니다. 저는 언론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올해 4월4일 한겨레신문에 저의 입장을 명확히 밝힌 적이 있습니다만, 앞으로도 언론에 대한 실명비판이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적극 나설 것입니다.

- 학벌문제와 관련해 지식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오랫동안 학벌문제에 대해 진보적 지식인들은 침묵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학벌 시스템의 수혜자였기에 사회의 모순을 볼 수 없었고, 감히 비판할 수 없었던 겁니다. 도리어 그들은 그 동안 아예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지냈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그게 뭐 심각한 문제야"라며 애써 학벌체제를 옹호해 왔습니다. 그리고 학벌문중의 권력독점은 외면한 채 추상적 권력에 비판의 화살을 쏘았습니다.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먼저 명문 대학 출신 진보적 지식인들이 스스로 학벌권력해체를 위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글/사진 사이버홍보보좌관 인터뷰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