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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4-08, 13:46:04 에 경산인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정치] 현직기자의 충언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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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보셨으리라 믿으며 아마 저 밑에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지만(바빠서 확인 못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한개 더 남겼습니다.
오늘자 조중동의 사설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울화통이 차던 중에 이 글을 보았습니다.
노짱께서도 부디 읽고 숙고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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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후보님.
저는 현재 모신문에 근무하는 현직 기자입니다.
인천경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느라 하루종일 마음 조렸습니다.
다행히 선관위원장의 '1022표'라는 발표와 함께 울려퍼진 함성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지만
여전히 가슴에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노풍의 위력에 대단히 낙관적이었지만 최근 잇달아 노후보님이 발을 헛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근거없는 색깔론'은 더 이상 노풍의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자명합니다. 최병렬이 이인제에게 훈수를 둘 만큼, 이인제에겐 자충수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론 발언 파문'은 궤를 달리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전선이 노후보님의 언론관이 어떻느냐가 아니라 '거짓말을 하느냐'의 문제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중동이 노리고 있는 것은, 노후보가 이런 이런 말을 했다더라가 아니라 '노후보가 이런 이런 말을 해놓고는 이렇게 말을 자꾸 바꾸고 있다'는 쪽에 있는 것입니다. 이 수법이 바로 그렇게 숱한 정치인들이 그동안 걸려들었던 진정한 악질적 덫인 것입니다.
언론이 딴지 걸기할 때 제 일의 무기로 삼는 것이 바로 도덕성입니다. 명백한 범법 행위야 사법당국이 관여할 몫입니다. 언론이 수사관이 아닌 다음에야 범죄행위를 밝혀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범죄행위에 관한 부분은 의혹제기 선에서 그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언론이 순수하게 독자적인 판단과 심판을 내리는 것이 가능한 부분이 바로 도덕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 도덕성은 또 어려운 취재 과정이 딱히 없더라도 기사로 만들기도 쉬울 뿐더러 국민 감정에 직접적으로 파고듭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회창 총재는 호화빌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몰매를 맞았습니다. 손숙씨는 기업인에게 금일봉 좀 받았다고 물려났습니다. 도덕이란 것이 추상적 가치에 의존하기 때문에 원래가 좀 애매합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입니다. 계층위화감을 조성한다느니, 공직자로서의 본분에 어긋난다느니, 복지부동한다느니 등으로 몰아부치면 한정없이 걸려들게 마련인 늪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언론이 자기 입맛에 맞게 여론 몰이를 할때 강력한 무기로 삼는 것이 도덕성인 것입니다.
이 도덕성 중 언론이 가장 단골로 삼는 소재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거짓말입니다. 이 테마야 말로 언론에겐 신성한 무기와도 같습니다. 이것이 도덕성의 칼날 중 가장 날카롭고 강력합니다.
그것은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호한 추상적 가치는 다양한 반론과 해석이 뒤따를 수 있지만 이것은 질이 다릅니다. 사실관계의 판단만으로 심판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회창이 호화빌라에 산다는 것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여운이 뒤따를 수 있지만 거짓말은 전혀 다른 종류의 도덕성입니다. 신문의 또하나의 속성인 '팩트' 와도 절묘하게 맞아뜨러지는 것입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노후보님이 취중에 폐간이니 국유화 발언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대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중 발언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말바꾸기 혹은 거짓말에 대해서는 극도의 염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염증 자체가 도덕적 깊이에서 연유했다기 보다 우리 언론의 도덕성 제단 방식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사태가 어떠했든 노후보님이 이번 건에 대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취중에 농담조로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에 없지만 만일 그랬다면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이 컸던 탓에 사주의 전횡에 휘둘리는 동아일보가 안타까워서,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혹여 그 발언으로 동아일보 직원들에게 상처가 됐다면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 하지만 내 언론관은 확고하다. 대통령이 신문사를 폐간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등등" 이라고 했다면 문제는 한결 수월해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단순히 노후보님의 언론관 문제에 대한 공방으로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짓말 논란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조중동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보고 악착같이 물고 늘어질 것입니다.
노후보님의 심경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래전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황에서 자신의 평소 신념과도 맞지 않는 발언을 했다고 하니 황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술에 취해서 억한 감정이 들면, 대개는 심한 말 많이 합니다. 때려 부수겠다느니 하며 일종의 욕설 같은 비유을 쉽게 씁니다. 이회창의 창자론 같이요. 즉, 그런 발언들이 기억의 뒷켠에 묻혀 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참석 기자들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현재 그런 발언의 나왔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술김에 튀어나온 표현 가지고 트집잡느냐, 그래 한번 해보자라는 심경이라면, 이것은 매우 잘못된 전략입니다. 이것은 말그대로 전쟁입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로 천당과 지옥을 가름해왔던 저 노회한 꾼들에 끝없이 말려들 뿐입니다. 프로의 자세로 맞서야 합니다.
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신문사 압력' 부분에서도 왜 정확하게 대처하지 못했냐는 것입니다. "신문사가 노후보에게 압력을 가한 것" 자체가 향후 대대적인 정치적 이슈로 부각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신문사의 도덕성을 공격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압력의 근거, 팩트가 뭔지가 중요한 대목으로 부상할 수 밖에 없는데, 처음부터 조선일보는 과장 확대보도, 동아일보는 소유지분 제한 견해 추궁, 이렇게 명확하게 출발했으면 아무 문제없이 명쾌하게 전선을 이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둘을 대충 한꺼번에 묶는 바람에 다시 말바꾸기가 된 꼴이어서 오히려 역공의 빌미를 남긴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이 부분까지 보면 참모들이 지금 제대로 보좌하는 것인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혹여 노후보님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뭐 중요하냐, 나의 전반적인 행적과 신념과 정책을 보라고 항변하실지 모르지만, 언론들은 그 쪼짠한 말 한마디 한마디의 변주속에서 말 바꾸기 사례와 거짓말의 포인트를 짚어내고, 곧바로 도덕성과 연결시켜버립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사람들엔 도덕성, 쥐약입니다. 거짓말은 더욱 살인적입니다. 노후보님이 이 점에 대해 혹시 방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노파심에서 글을 띄운 것입니다.
노후보님은 이제 개인의 운명을 떠났습니다. 이 나라, 이 땅의 역사와 미래라는 점, 각인하시기 바랍니다. 노후보님의 승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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