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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04-25, 23:44:46 에 oblige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
| 모국어,참을 수 없는 노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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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일 하니리포터에 실린 글입니다.
모국어,참을 수 없는 노여움
한겨레신문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가 막혀서 "그래 한글이 한자보다 어렵지!"하고 받아넘기곤 한다. 흔히들 말해 우리말하면 쉽다는 머리말을 갖다 붙인다. 그렇다고 쉬운 말만 우리말이라고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다. 생활 속에서 자취를 감춘 말은낯설기도 하거니와 우리에게 익숙해진 타국어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타고난 문학 게릴라 장정일의 [독서일기]에는 '활달한 토속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 이야기꾼' 김소진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 평론가는 김소진에게 "생생한 생활어를 개성적인 문체 속에 아우르고 있다"는 평을 했다. 이에 대하여 장정일은 "김소진의 어떤 말은 생활어가 아니라 소설에서나 쓰이는 문학어에 가깝다"고 받아친다.
장정일이 김소진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불러낸 우리말들은 정말이지 생활어로 자리잡은 한자 아니라 영어보다도 뜻 모르는 말들이다. 장정일은 「"꼭 뒤를 자르듯", "왠지 수꿀한 생각이 들어", "한동안 우두망찰 맥손을 풀었던 기억이 있었다" 같은 말을 사전에 의지하지 않은 채 읽어낼 독자가 몇 있을까?」하고 묻지만, 설사 국어사전을 뒤적인다고 해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 말들이다. 그것은 김소진의 문학사전에 터잡은 말이었다.
90년대 한국문학에서 순우리말을 가장 잘 갈고 닦아 쓴, 비실비실 죽어가는 어휘를 자신의 문학작품 속에 둥지를 내주고 보살핀 작가는 김소진이었다. 문학평론가 서영채는 김소진이 국어대사전을 베껴가며 어휘력을 기른 남다른 노력의 소유자임을 증거해주었다. 문학작품의 중요한 의무는 모국어를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영국의 섹스피어가 그랬고 독일의 괴테가 그랬다. 한국의 서정주도 모국어를 풍부하게 한 공로로 훼손된 문학정신을 가까스로 만회한다. 미당에게서 모국어는 죄사함을 받게 한 면죄부나 다름없었다. [토지]의 박경리 선생도 모국어 사전을 두툼하게 한 작가로 기억할만 하다.
우리 90년대 문학을 구제한 김소진에게 모국어는 '토속어와 촌스러운 순우리말'이었다. 그러나 순우리말이 이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복잡하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잘 안 쓰기 때문이다.
독일의 피히테는 <독일국민에게 고함>에서 "살아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에게서 위대한 민족이 형성되며, 반대로 살아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한 국민의 경우에는 교양 있는 계층이 민중과 분리되어 민중을 자신의 계획을 위한 맹목적인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고 했다.
우리 한말글은 살아있는 언어일까 아니면 죽어가는 언어일까? 우리민족은 위대한 민족인가 그렇지 못한 민족인가? 지식인들의 작풍을 생각하면 우리는 죽어가는 언어의 위대하지 못한 민족이다. 그저 중국이 득세할 때는 한자, 일본이 식민통치할 때는 일본어, 미군정 이후로는 영어를 유행처럼 쫓는다.
줏대 없이 유행에 편승한 세계화는 이 3자-영,일,중-가 대면하는 빈곤한 세계화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고보면 지식인들의 기회주의 족보는 참 역사가 깊은 모양이다!
내가 이미 한글의 땅에 고이 잠든 영원한 문학청년 김소진을 존경한 이유는 문학성보다는 감칠맛 나는 우리말글 쓰기였다. 나는 김소진을 문학으로 만나지 못하고 문장으로 만나고 있다. 그에게 감사한다. 그로하여 90년대 우리문학의 영토는 누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말글을 가꾸고 보존하는 일은 누가 앞장서야 할까? 그건 말글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조폭신문들이 등장하기 이전에 신문의 원조격인 순한글 독립신문이 있었다.미국 유학파 서재필선생이 귀국하여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어 대한제국으로부터 4400원을 지원받아 1896년 4월 7일에 창간한 신문이다.
현대국어학의 창설자로서 한글 전용을 주장하고 스스로 실천한 주시경 선생과 배재학당 시절 스승이었던 민주주의자 서재필 선생이 합작하여 만든 이 신문은 한글을 진정한 민족의 문자로 만드는데 이바지하였다. 현대 한글쓰기는 독립신문을 통해 시작된다. 한글학자 주시경이 한글 전용을 고집하는 것은 당연했겠지만, 구한말의 관료 출신 사주 서재필이 한글 전용을 전면적으로 실시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닛스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 거슨 샹하귀쳔이 다보게 홈이라...」
서재필 사주는 빈칸 띄어쓰기, 국어사전 편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선구성을 자랑하기도 했다. 나는 여기서 행동파 서재필 사주에게 주목한다. 그는 한글전문가가 아니었지만, 독립신문을 통하여 현대한글을 탄생케 하였다.
이 무허가 한글선생 오늘날 한글의 위기를 몸소 느끼는 바, 한글문장사 제도를 도입하여 겨레의 한글을 한치의 훼손됨 없이 옥체만강하게 길이길이 보전할 길을 모색하라고 당부드린다. 잘못된 글의 복제창고이기도 하고 제조공장이기도 한 관공서, 언론사, 광고홍보회사, 각 기업체 홍보실과 같이 문서와 글을 만들어내는 제작 현장에는 잘못된 문장을 바로잡고 다듬는‘문장사'를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하자는 뜻이다.
일정한 규모 이상의 산업현장에 산업안전관리사를 의무적으로 고용하듯 우리문장이 만들어지는 곳에는 문장사를 꼭 배치해야 무분별하게 우리말글을 망치는 작태는 바로잡힐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특히 관공서는 지식과 정보가 생산되는 1차 공장이다. 정부부터 먼저 한글문장사를 고용하라. 한글단체들은 이 법의 제정을 위해 나서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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